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엄마가 없어진다

korman 2024. 8. 5. 18:00

 

엄마가 없어진다

인천 신포동에서 수원방면 지하철을 타려고 역으로 향하는데 역 근처 내항에 아주 커다란 멕시코 국기가 잔잔한 바람에 적당히 펄럭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태극기라면 몰라도 저렇게나 큰 남의 나라 국기가 내항에 계양되었을까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니 그건 내항에 정박 중인 멕시코 선박의 선미에 걸려있는 국기였다. 호기심에 내항 출입구에 배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시민들을 위하여 며칠 동안 개방을 하므로 신분증만 제시하면 배에 올라 구경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내항 입구 안내실에는 하얀 유니폼을 입은 멕시코 사람이 선원들의 출입체크와 구경 온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안내실에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 목걸이를 받아 걸었다. 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현대적인 구조의 철선이 아닌 중세의 범선으로 제작된 배였다.

어찌 알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배 구경을 하고 있었다. 평일이라고는 하지만 방학 중이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들, 데이트 중인 젊은 커플들, 특히 눈에 띄는 사람들은, 모두가 멕시코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분들이 여러 명 되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야 모두 자연스럽게 선원들과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우리의 젊은 커플들과 엄마들은 그냥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안내실과 승하선용 사다리 아래 및 배 위에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선원들이 배치되어 배에 오르는 우리나라 손님들에게 미소와 더불어 영어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으나 미소로 답하는 분들 외에 말로 대응하는 분들은 보기 어려웠다. 갑판에는 멕시코 마리아치들의 아주 멋진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한 쪽에서 “맘”하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와이”하고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도 들렸다. 영어권 외국인들인가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우리나라 엄마와 아들간의 대화였다. 요새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더 이른 교육이 학원을 통하여 행해지고 있으니 ‘엄마와 아들 간의 영어회화로 시도되는 대화인 모양이라고 짐작하면서 아이들의 수줍음을 없애는 좋은 길이라 생각할 즈음 다음 대화를 기대하였던 나는 홀로 머쓱해짐을 느꼈다. 영어는 거기까지, 아이는 엄마에게 ‘선원들이 멕시코 해군인지, 이 배가 멕시코 군함인지’가 궁금하니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졸라대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의 물음에 ‘그만 가자’는 우리말 대답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멕시코 해군인지 배가 해군에 속한 것인지는 나도 궁금하였기로 안내자에게 다가가 짧게 물었다. 내 실력이 짧으니 상대가 나를 모르고 긴 소설을 쓸 수도 있기 때문에 대답만 듣고는 “땡큐 베리마치‘를 던지고는 얼른 등을 보였다.

엄마와 자리를 뜨는 아이에게 다가가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이는 자기 엄마가 들려주는 대답이 아니라 그랬는지 좀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엄마 역시 엄마대신 아이에게 들려주는 내 대답이 탐탁지 않다고 여겼는지 대꾸가 없었다. 그들이 승하선용 사다리를 통하여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아이의 궁금증을 풀어주려 괜히 오지랖을 넓혔나 하는 생각에 나도 머쓱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맘(Mom)’이라 부르고 ‘와이(Why)’라 대답했는데, 그렇다면 엄마는 ‘네이비’나 ‘네이비 쉽’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아이와 힘을 합쳐 궁금증을 풀어볼 것이지..... 그들은 배 아래로 내려가고 안내자의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에도 응답은 없었다. 통상 그 모자간의 영어대화는 거기까지였을까? Mom이라는 아이의 부름에 Why라는 엄마의 물음표 대답이 맞을까 생각하며 엄마의 용기가 아이에게는 외국인에게 다가갈 용기를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가 ‘맘’이 되었으면 ‘네이비?’ 정도의 한 단어 물음은 더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인터넷에는 엄마보다는 ‘맘’이라는 단어가 더 친근감을 보이고 있고 ‘워킹맘’이라는 잘 알려진 카페도 존재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하는 엄마들을 자연스럽게 ‘워킹맘’이라 부르고 방송에서 조차도 ‘엄마’ 대신 ‘맘’이라 칭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으며 프로그램 내용으로 보면 ‘우리 엄마’나 ‘우리 어머니’로 하여야 더 어울릴 것 같은 농촌에 계시는 어머니에도 엄마 혹은 어머니 대신 ‘우리맘’이라고 타이틀을 붙인 프로그램도 있다. 영화가 성공하였는지 실패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더’라는 우리 영화도 있었다. 그 내용 또한 마더 보다는 엄마나 어머니가 어울리는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엄마는 맘과 비슷한 발음이라 좀 친근감이 있기는 있다. 그런데 ‘파더’는 무슨 말인가? 몇 년 전에 파더라고 제목을 붙인 우리영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들은 거의 대부분 일을 하는데 그럼 그들은 ‘워킹파더’인가?

우리는 상가폴이나 인도처럼 영어공용국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인터넷은 그렇다 치고 방송을 보면 우리가 ‘영어공용국’은 아니더라도 ‘영어단어 혼용국’은 충분히 되었다고 느껴진다. 물론 우리말에도 다른 나라들처럼 외래어라는 건 존재한다. 그러나 심심하면 방송에서조차 외래어에 속하지도 않는 영어단어를 뱉어내는 행위는 왜일까? 담당 피디나 방송작가들의 우리말 능력이 모자라서 적절한 우리말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프로그램이나 기사의 말과 글의 멋을 모두 외국어로 장식하고 싶은 의도된 외국어 남용인가? 

오늘도 TV에 나오는 ‘맘' 자막에서 멕시코 선박에서 들은 모자의 대화를 떠올리며 방송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나간다면 ’엄마‘나 ’어머니‘는 곧 없어질 것이고 그 엄마가 없어지고 모두 맘으로 대체되는 날 우리말과 글도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8월 4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LeN4opl5Ng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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