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korman 2024. 5. 22. 13:10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누구나 애용하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속담이다. 그 의미야 굳이 기술하지 않아도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쩌면 나도 이 속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거론하기가 가벼운 문제는 아니지만 인터넷에 자주 뜨는 댓글들 중에 중국을 겨냥한 많은 댓글들이 늘 이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 손자 녀석이 요즈음 축구에 흠뻑 빠져있다. 축구교실도 다니고 축구시합에도 나가고 프로축구 홈팀의 경기가 홈에서 열리는 날이면 부모를 졸라 가족이 함께 매번 홈경기를 즐기곤 한다. 엊그제는 축구교실들끼리의 정식 시합에서 자기가 선제골을 넣었다고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금 한창 에너지를 발산할 데가 필요한 녀석에게 운동하며 즐길 수 있는 축구라는 영역이 주어진 것에 대해 시합에서의 부상만 아니라면 참 좋은 일로 받아드리고 있다.

며칠 전 홈경기에 간다고 하여 나도 그 시합을 TV로 지켜보았다. 결과는 원정팀에 2-1로 패하였다. 경기가 끝나고 잠시 후에 그 녀석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통상 경기가 끝나면 지던 이기던 간에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하여 일정시간 자리에 남아 있고 또 운이 좋으면 선수들의 사인을 받거나 사진도 같이 찍곤 하는데 이 날은 경기가 끝나고 아이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사건이 벌어져 무서워서 곧바로 경기장을 탈출하였다고 하였다. 나도 TV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인지 얼른 이해가 되었다.

23세이하 대표팀이 중국에서 경기를 치를 때 경기와 관련한 인터넷에는 중국에 대한 댓글들이 난무하였다. 중국팀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에게 행한 거친 파울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차마 전하지 못할 욕설도 있었고 비웃거나 깔보거나 등등. 모두 측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이었다고 생각되며 대표팀이 이기기를 끔찍이도 바라는 사람들이 올린 글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사람들은 댓글에 대한 매너는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축구에 대한 매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임에는 분명하다 하겠다.

TV를 지켜보는데 전반에 홈팀이 선제골을 넣었다. 경기장에 간 손자 녀석이 좋아서 난리가 났겠다는 생각도 잠시 그 녀석이 제일 좋아한다는 홈팀의 대표 골잡이 흑인 선수가 상대선수에게 파울을 하였다. 아니 파울이라기보다는 가격을 했다고 하는 게 낫겠다. 순간 나는 저 행위는 퇴장감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심판은 빨간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기장을 나가라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홈팀관중들의 관람태도는 이성에서 어긋난 태도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내 손자 녀석도 저 행위에 동조하고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일었다. 심판은 옳은 결정을 한 것 같은데 왜들 저러나 생각되어 순간 중국팀에 달렸던 그 많은 댓글들이 생각났다.

결과는 중요한 한 선수가 빠진 홈팀이 원정팀에 2-1로 졌다. 그리고 그 결과대로 홈팀 관중들의 이성적인 응원문화도 살아졌고 그 살아진 응원은 난동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홈팀 응원단에서 던진 물병이 경기장으로 날아들었고 원정팀의 잘 알려진 선수는 물병에 급소를 맞아 한참을 고통스러워했다. 그 물병 던지기를 시작한 곳은 객석 중에서도 좀 잘 보이는 자리를 위하여 관람료를 더 주고 경기를 즐기던 분들이 시작한 것이라 한다. 아마도 돈을 더 낸 만큼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행위를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관중석에는 부모와 같이 관람온 어린이들이 많다는 것이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돈을 더 내고 홈팀을 응원하는 분들이라면 물병을 던지기에 앞서 상대선수를 가격한 홈팀 선수를 우선 나무라야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장면은 스포츠뉴스에도 집중 보도되었다. 부모가 손자 녀석을 데리고 빨리 경기장을 벗어난 일이 참 잘한 일임을 생각하며 이런 행위를 하는 우리가 과연 중국팀을 나무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행위를 한 관중가운데는 중국팀에 예의를 벗어난 댓글을 단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랴.

2024년 5월 20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LOJxzeOjsUk 링크

Sunshine On My Shoul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