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코미디 앞세운 시간은 빨리도 가네

korman 2025. 1. 30. 16:16

월미도에서 바라본 인천대교

코미디 앞세운 시간은 빨리도 가네

80이 넘으신 내 술친구 한 분이 중국음식점에서 만나자고 하시더니만 첫 잔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며칠 전 미국 뉴욕엘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갔더니 타임스퀘어를 비롯하여 맨해튼 한가운데의 주요 광고전광판이 모두 일본제품에서 한국제품으로 바뀌어 있더라고 하였다. 아마 그곳에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렇게 된 게 언젠데 지난번 뉴욕에 갔다 오신지가 무척 오래되셨나 봐요?”
라고 물었더니 
“알고 있었어? 언제 가봤어?”
하고 나에게 되물었다.
내가 처음 뉴욕이라는 델 갔을 때 맨해튼 한 복판의 광고전광판엔 온통 일본제품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뉴요커들 중에는 코리아조차도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안다 하더라도 내게 돌아오는 질문이 한국인인 나에게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것들이 많았으며 어쩌다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들도 물어보는 게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였을 뿐 거기에 한국인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하여 내가 일본제품 전광판을 부러워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그 후 몇 차례 그곳을 다니다 보니 언젠가부터 그 주요 전광판들에서 우리제품이 일본을 밀어내기 시작하더니 몇 해 지나지 않아 그 전광판에 나오는 제품들은 내 가슴까지도 채워주고 있었다. 그런 결과로 한국인이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자신이 한국에 대하여 좀 안다고 자꾸 치근덕대는 사람도 생겨났다. 아마 나는 그 때 이 노인 술친구가 느낀 것과는 너무나 다른 감정이 솟구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이제 미국의 심장인 뉴욕에서 우리가 일본을 제쳤구나!”

계엄령이 발표되었다 해제되고 이틀 후에 예전 거래 관계로 친해진, 일이 없는 지금에도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 홍콩인이 연락을 해왔다. 정확히 말하면 홍콩거주 캐나다인이 되겠다. 원래는 홍콩인이었으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재빠르게 캐나다국적을 취득한 친구다. 첫 마디가 나와 내 가족들 모두 아무 일 없이 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저 통상적인 인사일수도 있겠으나 홍콩에서도 한국의 소식을 들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안부를 묻는 의도 같았다. ‘계엄이 아니라 쿠데타가 난들 나 같은 사람이 뭔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웃으며 답하였다. 
“바보 같은 000들의 코미디만 빼고 나와 내 가족을 포함하여 모두 잘 있다.”라고 대답하며 염려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후 내게 떠오른 것은 그 친구의 모습이 아니라 맨해튼의 전광판이었다. 누가 그 전광판을 바꿔 놓았을까? 000코메디언들이?

IMF를 거치며 금모으기운동이 벌어지고 나라 살림살이가 좀 안정세로 돌아섰을 때 난 런던의 한 호텔에 있었다. 아침이면 머물고 있는 방문 아래 틈으로 신문이 배달되곤 했는데 어느 날 절반이 접혀진 모양으로, Financial Times로 기억되는 신문이 문틈을 뚫고 들어왔다. 신문을 집어 들어 펼친다 한들 상세한 기사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실력과 시력이 되지 못하니 흘낏 쳐다보는데 겉장의 가운데에 사면이 10cm도 되지 않을 정도 되는 굵은 선으로 만들어진 정사각형 박스가 우선 눈에 띄었고 그 안에 많은 글자가 없었기 때문인지 확대되어 눈에 잡힌 것은 Korea라는 이름이었다. 얼른 신문을 집어 박스기사를 살폈다. 특별한 사건이나 주제를 설정한 관련기사가 아니고 단 몇 줄, 내가 느낀 그대로 해석하면 ‘상태를 보면 곧 망할 것 같은 나라, 그러나 절대로 망하지 않는 나라 한국’, 그것뿐이었다. 처음 한 줄에 대한 기분은 좀 씁쓸하였지만 그래도 FT같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문 1면 한 가운데 박스기사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기초를 튼튼하게 보는 것 같아 마음은 점차적으로 누그러졌다. 지금 나이라면 신문을 챙겨왔을 텐데 그 때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신문 값을 치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계엄령과 관련하여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생각이 어떤지 인터넷을 아무리 펼쳐 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지 관련기사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의 평가 수치에 따라 한 나라의 경제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수도 있고 국제 투자자들의 큰돈을 잠재울 수도 있으며 각 국의 차관이나 세계의 은행에서 차입을 할 때에도 큰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는 회사들 아닌가! 그러나 계엄령 때보다도 정치상황이 더 혼란해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그들의 수치는 아직 변동이 없다. 아마 그들도 그전 내가 본 FT처럼 대한민국은 시즌 원 000 코미디와 시즌 투 000 코미디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나라가 아니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000코미디를 하는 분들은 말씀 가운데 늘 ‘나라와 국민’을 생각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이고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들뿐인 것 같다. 단지 그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는 게 스스로의 입신양명과 같은 의미이고 그 가치도 동급이라 생각하시지는 마시라는 것과 맨해튼의 전광판이 다시 일본에게 점령당하는 일과 현재 움직임이 없는 신용평가사들의 수치가 달라지는 빌미를 제공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2025년 1월 말미에 다가온 설 소망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하겠지? 아무튼 국제적 코미디를 앞세운 시간은 빨리도 지나가고 있네.

2025년 1월 30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kB9ve6qB0Ww 링크

희망가 클래식기타 연주 classic guitar Finger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