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책인가 짐인가

korman 2007. 5. 4. 22:47

외출을 하기 위하여 손가방을 챙긴다.


그저 머리 비우고 아무 생각 없는 건성으로 하는 외출이면 손전화 주머니에 집어넣고 지하철 정거장에서 신문 한장 사 들고, 아니 무가지 챙기면 되니까 신문 살 필요도 없겠지만, 간단히 나서면 되겠지만 평일의 업무적인 외출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조그마한 가방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이 가방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필요한 것을 가지고 다니려면 그게 필요한걸. 특히 비가 오는 날의 가방은 정말 귀찮기 짝이 없다. 한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가방을 들고 우산을 쓰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낭패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이 나이에도 아이들처럼 어깨에 메는 가방을 가지고 다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면 가방이 있든 없든 무겁든 가볍든 비가 오든 안 오든 문제가 없겠지만 차를 몰고 다니면 시내에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난 사무실에 갈 때도 외출할 때도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으니 가방은 꼭 가지고 다녀야 할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 가방 속에는 내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몇 가지가 있다. 전자수첩을 겸한 전자사전이 그것이고 조그마한 명함첩과 메모를 할 수 있는 작은 노트가 그것이고 그리고 업무상 필요한 서류가 몇 장이다. 따라서 귀찮기는 하지만 가방의 무게는 그리 무거운 편은 아니다. 여자들이 핸드백에서 느끼듯이 늘 느끼는 보통 무게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게 책을 한권 넣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하루의 시간중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인천에 사는 관계로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또 업무상 외출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많이 읽는 편은 못되지만 가방 속에 종종 한권의 책은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이 책을 한권 가방 속에 넣으면 가방의 무게는 가지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거워 진다. 책의 무게가 쓸데없는 치장으로 무겁기 때문이다.


오늘도 한권의 책을 넣고 다녔다. 그런데 이 책을 들쳐보면 우선 책 표지가 있고 그 책 표지를 싸고 있는 겉장에 이어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두꺼운 백지가 2장 (4페이지)이 들어있다. 그리고 같은 두께의 백지에 단순히 잭의 제목만 적어 또 한 장이 넘어간다. 그리고 책 제목과 부제만 적힌 백지가 또 한 장, 그리고 또 쓸데없이 사용된 몇 장을 넘겨야만 본문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본문도 종이 전체를 충분히 이용한 것이 아니다. 종이의 3분의 2는 비어있다. 가끔 필요한 별도의 설명을 넣기 위하여 전 페이지를 그렇게 비워두고 있는 것이다. 별도의 설명이 쓰이지 않는 페이지도 그렇게 비워두고 있다. 만일 이 책이 각 페이지의 여백을 충분히 사용하고 쓸데없이 끼워 넣은 두꺼운 면들을 제거하고 표지를 싸고 있는 겉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책의 두께와 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책도 허울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성을 닮았는가. 어쩌다 책방에 가서 이책 저책을 들추다 보면 정말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지면을 남발하고 쓸데없는 여백을 두고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호화롭게 디자인되고 겉장을 보기에도 불편하게 두껍게 하고 책의 무게도 가지고 다니기 부담스럽게 무겁게 하였다.


일본 사람들의 경우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 그러나 그 책들의 대부분은 주머니에 쏙 들어갈 수 있는 문고판이 많다. 미국의 경우도 특별한 책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휴대하기 불편함이 없는 가벼운 재생지로 만들고 쓸데없는 지면을 넣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 무게에서부터 가방이 없으면 가지고 다니기도 힘들게 만들뿐만 아니라 누가 보아도 불필요한 페이지들을 넣어 호화롭게 치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허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변신된 것인지. 물건 값이 비싸야 잘 팔린다는 우리나라의 시장 원리에 맞게 책값도 그 허울을 쓰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너무 읽지 않는다는 소식을 종종 내 보내고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나라 출판인들이 상식에 맞게, 내용에 맞게,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게, 그리고 책에서 허영을 제거하고 적절한 가격으로 출판을 한다면, 그래도 지금과 같이 책을 읽지 않을까.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깨에 걸친 가방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내일은 책을 빼놓고 갈까. 그러면 긴 시간 심심할텐데....

 

책이 무거워

2007년 5월 네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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