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산타할아버지 전화번호 때문에

korman 2017. 12. 22. 15:56




산타할아버지 전화번호 때문에


엊그제 저녁 무렵 신발을 내던지듯 벗어제끼고 방으로 들어온 초등학교 1학년 큰손녀가 느닷없이 할아비에게 묻는 말이 “할아버지는 산타할아버지 전화번호 알아요?‘였다. 왜 그러냐고 하였더니 엄마 아빠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여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하였다. 나도 모른다고 대답하자 아이는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셔서 잊어버리신 것 같다고 제 멋대로 해석을 하였다. 마침 고모에게서 영상전화가 걸려오자 고모에게 되물었다. 고모도 모른다고 하자 무척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한 수 더 뜬 것은 외손자녀석이 엄마와 누나의 대화를 엿듣다가 하는 말이 ”산타할아버지 전화번호를 모르면 선물 못 받을 텐데.’ 였다.


어제 저녁, 이 녀석은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일로 또 이 할아비를 붙들고 늘어졌다. 제목이 스페인말로 되어있는 크리스마스 노래라며 학교에서 한 번 들었다고 유튜브에서 그걸 찾아달라고 졸랐다. 나도 아는 노래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를 쥐어짜도 제목은 날듯 날듯 하면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게 크리스마스 때면 늘 흥얼거리던 ‘펠리스 나비다 (Feliz Navidad)’라는 걸 생각해 낸 때는 안방 건넌방을 한 30여분은 왔다 갔다 한 후였다. 사실 아이에게 그걸 가르쳐줘야 한다기 보다는 기억력이 취약해져가는 머리를 살려야 한다는 할아비의 안타까운 행동이었다고 해야 더 좋을 듯싶다. 그 단어를 유튜브 검색창에 넣으며 제목이 생각 안 나도 노래 가사 중 생각나는 한 소절 쳐 넣었어도 됐을 텐데 하는 검색에 대한 아쉬움도 불쑥 튀어나왔다.


혼자 컴퓨터를 차지하고 유튜브를 즐기던 녀석이 또 질문공세를 폈다. 컴퓨터의 한글자판을 익힌 터라 유튜브에서 스스로 산타할아버지를 검색하더니만 산타할아버지네 집은 핀란드에 있다는데 어떻게 이 먼 한국까지 와서 선물을 주느냐, 산타할아버지는 한 사람인데 어떻게 혼자 크리스마스에 그 많은 나라를 다 다니느냐, 산타할아버지는 핀란드에 사니까 핀란드말을 할 텐데 우리나라에 오면 무슨 말을 쓰느냐, 산타할아버지는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데 유튜브에 보니까 썰매는 순록이 끌며 하늘을 날지도 못하는데 이거 가짜 아니냐, 산타할아버지는 왜 꼭 우리가 잘 때만 와서 선물을 놓고 가느냐, 산타할아버지 수염이 엄청 긴데 그거 진짜수염이냐 등등.


이 녀석의 질문을 한 가지 대답하는데도 할아비는 시간이 필요하거늘 할아비에게는 생각할 여유도 안 주고 모든 질문을 속사포로 쏘아대고 있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1학년이 된 나이에도 아직 산타클로스에 대한 동화적 이야기를 믿고 있는 순진성이 좋았던 반면 이제 산타와 관련한 허구와 사실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좀 더 크면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게 되겠지만 우선 질문에 대한 답은 해야 하겠기로, 어찌 설명을 해야 지금 이 녀석이 가지고 있는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사실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밀려왔다. 우선은 아이 스스로 산타에 대한 많은 것들을 유튜브에서 찾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 프로그램들이 나 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또 30여분을 서성거렸다. 대답에 대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한 살이 적은 작은 손녀는 언니가 이 모든 궁금증을 쏟아내고 있을 때까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몰라서 못 하는 건지 알아서 안 하는 건지 아예 그런 건 관심이 없다는 건지 그것도 할아비는 의아스러웠다. 작은 아이도 이제는 좀 알아야 할 것 같아 정리된 답을 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불렀다. 30여분을 소비한 내 생각은 허구와 현실을 섞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리된 답을 이야기 하였다.


“산타할아버지네 집은 필란드에 있다. 그러나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는 우리 동네에도 있고 시골에도 있고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다. 필란드에 있는 산타가 전 세계를 다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다른 나라나 동네에 산타할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산타를 두고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동네에 있는 산타에 전화를 걸어 너희들에게 선물을 대신 전해주라고 하기 때문에 필란드에 있는 진짜 산타할아버지는 세계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리고 전화를 필란드 말로 걸어도 다 통역해 주는 다른 산타가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없다. 선물을 너희들이 잘 때만 주는 건 산타할아버지가 너희들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 좋으라고 엄마아빠에게 전달해 주며 그렇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산타의 썰매가 하늘을 나는 것은 만화영화에서 재미있으라고 그렇게 그리는 것이지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그리고 산타의 수염은 진짜가 아니라 보기 좋으라고 만들어 붙인 것이다. 예전에 이 할아비도 산타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어린이집에서 산타 옷 입고 수염 달고 선물 나눠준 적이 있다. 그래서 할아비도 그 때는 산타할아버지였다.”


이런 설명에 큰 녀석은 “아! 그렇구나.” 한 마디 하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던 작은 녀석의 한 마디가 압권이었다.


“난 알고 있었어. 작년에 우리 어린이집에 산타할아버지 하는 사람이 못 온다고 전화가 와서 우리 선생님이 대신 산타옷 입고 선물 나눠 주셨거든.”


다른 할아비들은 손주들의 질문공세에 어찌 답변하는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산타할아버지가 내 뇌를 일깨우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에게 안겨주셨다. 

모두에게 Merry Christmas!!


2017년 12월 22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