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한.중.일 종(鐘) 삼국지

korman 2019. 4. 12. 17:15

 

글 : 곽동해

한서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종을 매다는 고리만 봐도 삼국의 특색이 나타난다. 신라는 한 마리 용으로 고리를 장식하는 반면, 중국과 일본은 두 마리 용의 형상이다. 범종의 형태와 문양 장식을 살펴보면 그 차이가 더욱 확연하게 구분된다.

종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20세기 거장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정작 작품에서 종이 울리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작가가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종소리가 가지는 상징성을 숙고한 은유의 표현인 셈이다. 종은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그런데 그 소리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오래도록 인간의 정서에 심오하게 점철되어온 것이 종소리이다.

범종梵鍾은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종이다. 종소리를 들으면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불교의 신앙의식에 사용된다. 범종 소리에는 중생의 번뇌를 씻을 수 있는 청정과 해탈의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심오한 법문法門의 의미가 담긴 종소리를 듣는 중생은 생사의 고해를 초월하여 불과佛果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한·중·일 삼국에는 많은 전통범종이 전해진다. 예부터 불교사원에서 의식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 종의 생김새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종 고리에 장식된 용과 울림통인 몸체만 구별될 뿐, 삼국 종의 형상에는 저마다 특색이 있다. 삼국 종의 조형 양식은 이미 8세기부터 고정관념의 벽을 넘어섰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각기 다른 문화적 토양에서 창의적 예술혼으로 변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서사예술의 창작조형 - 한국 종 양식

오늘날 전하는 가장 오랜 한국 종은 세장한 조형과 뛰어난 주조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상원사동종(725년)이다. 또한 성덕대왕신종(771년)은 조형미·주조 기술·종소리의 삼박자가 가장 우수한 천하제일의 명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전통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8세기의 신라 종이 가장 우수한 양식과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제작 기술에서 오랜 기간동안 많은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임을 암시한다.

한국 종의 양식 구분은 신라, 고려 전기, 고려 후기, 조선전기, 조선 후기의 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조선 전기 양식은 15세기(한중 혼합양식의 출현기)와 16세기(전통사찰 양식의 부활기)로, 조선 후기 양식은 17~18세기(한국 종의 중흥기)와 19세기(양식적 쇠퇴기)로 각각 세분된다.

한국 종의 창의적인 형상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신라 종의 절정이 곧 한국 종의 전형 양식인 셈이다. 8세기 한·중·일 삼국 종을 비교해보면 독창적인 조형감각은 신라종이 단연 돋보인다. 오늘날 한국 종이 세계적으로 ‘코리안 벨Korean Bell’이라는 학명을 얻게 된 것도 신라 종의 독창적이며 예술성이 다분한 조형미 덕분이다.

신라 종의 고리종 상부에 형성된 종 고리는 한 마리 용과 음통으로 조형되었다. 바로 이 점이 두 마리 용으로 형성된 중국 및 일본의 종과 다른 점이다. 성덕대왕신종의 고리에 조형된 용의 모습은 사실주의 조각의 절정을 보여준다.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몸통을 구부린 채 힘차게 차오르는 생동감은 마치 상상이 아닌 용의 실물을 보는 듯하다.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의 기능성을 고려하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런 동세 표현에서 참으로 감탄할 만한 조형미를 느낄 수 있다.

신라 종의 몸체鍾身는 약간 불룩한 옹기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과 같은 형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배흘림 형태의 종 몸체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양식이다. 또한 종신에는 상대上帶·하대下帶·뉴곽대鈕廓帶·종뉴鍾鈕·당초문·비천상 등 다양한 문양이 장식되었다. 이 역시 문양 장식이 별로 없는 중국과 일본의 종에 비해 크게 구분되는 점이다.

한국 종 장식 요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당초문이다. 보상화라 불리는 꽃과 이파리가 유연한 곡선의 줄기에서 돋아나 어우러진 덩굴 무늬는 풍요로움의 기상을 보여준다. 한국종 장식의 클라이맥스는 비천상이다. 성덕대왕신종에는 허공에서 방금 날아온 자태의 천인상이 새겨졌다. 유려한 천의를 날리며 화려한 영락으로 치장한 모습에서 감출 수 없는 우아미를 느낄 수 있다. 손에 향로를 들었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의 모습은 아미타 극락세계의 천인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동양 종의 발생과 전환 - 중국 종 양식


중국의 종문화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미 기원전 10세기경 청동기시대부터 고동기종古銅器鍾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용종甬鍾·편종編鍾·요鐃·박鎛 등 다양한 종류의 고동기종은 권력의 상징과 악기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종들은 근자에 춘추전국시대의 무덤에서 대량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진秦/BCE 221~BCE 206시대에 들어 급격히 쇠퇴되었으며, 기원을 전후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기원후 중국에 불교가 전파되면서 중국의 불교사원에서 본격적으로 범종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한 도교사원에서도 종을 사용했고, 궁궐이나 관청에서도 시각을 알리기 위한 도구로 종을 이용했다.

오늘날에 전하는 중국 종은 용처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왕궁이나 관청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집회 또는 관례官禮를 위하여 만든 것으로 조종朝鍾이라 부른다. 둘째는 불교사원에서 의식구로 사용한 범종이며, 셋째는 도교사원에서 사용한 도종道鐘을 말한다. 그러나 명칭은 용도상의 구분일 따름이고 실제 종의 외관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다만 불교와 도교를 상징하는 문양 장식의 소재가 약간 다를 뿐이다.

전형적인 중국 종의 생김새는 한국 종과 사뭇 다르다. 종고리에 두 마리의 용이 조형되었다. 용두를 역방향으로 향하고 몸통이 서로 꼬인 조형으로 종의 고리가 형성된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 종과 같이 음통이 장식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종의 몸체는 상부가 둥글고 하부가 팔八자로 벌어진 형태로서 서양종의 모습과 유사하다.

중국 종의 가장 독창적인 특징은 종 하부에 형성된 파곡波曲형상이다. 8개의 파곡으로 조형된 것이 보통이나 6개의 형태도 나타난다. 파곡의 깊이는 크지 않지만 마치 꽃잎이 벌어진 것 같이 깊이가 심한 것도 있다. 기원후 중국 종의 양식 구분은 입면상 종구 부분의 조형 특징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제1양식은 종구부가 수평으로 조형된 것으로 시기가 가장 앞선 것이다. 주로 양쯔강長江 이남의 남부지역에서 발생한 양식이다. 제2양식은 종구 부분이 파곡波曲을 이루는 것으로 주로 북방지역에서 발생하여 유행된 양식이다. 이 양식은 오늘날 중국 종의 유일한 특징이며, 중국 범종의 전형 양식으로 발전되었다.


제3양식은 금대CE 1115~ 이후에 나타나는 것으로 제2양식의 파곡이 심화된 형상이 특징이다. 이러한 심파곡형深波曲形은 마치 꽃잎같이 벌어진 모습으로 ‘연화양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끝으로 청대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종의 요소가 결합된 새로운 양식의 종을 제4양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다무문(多多無紋)의 절제미 - 일본 종 양식


오늘날 전하는 전통종은 삼국 중 일본이 가장 많다.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은 덕에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범종이 많이 전해진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약탈해간 범종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일본 종의 가장 혁신적인 조형 특징은 종뉴의 수가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 종에는 종뉴 장식이 전무하며, 한국 종에는 36개가 전형이다. 그러나 일본 종에는 최소 60개當麻寺鍾/7C말에서 최대 144개東大寺鍾/752까지 많은 종뉴가 장식되었다.

종 고리는 중국 종과 마찬가지로 두 마리 용과 여의보주로 조형되었다. 그러나 용의 다리가 생략되었고, 몸통의 꼬임도 없는 단조로운 형태가 특징이다.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용머리가 역방향으로 향하고 중심부에 화염보주가 장식된 형상이다.

일본 종의 몸체는 마치 컵을 엎어놓은 형상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신의 상부에는 많은 종뉴가 장식되었다. 그런데 돌출된 종뉴의 형태가 아무런 문양도 없는 단순한 인뉴印鈕형상이다. 이것이 한국 종과 다른 점이다. 즉 종뉴의 개수가 많을 뿐 한국 종과 달리 연꽃이나 꽃봉오리 같은 상징적인 장식은하지 않았다. 종복鍾腹에 장식된 연꽃 형태의 당좌를 제외하고 그 어떠한 문양도 장식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다만 다수의 융기선이 가로와 세로로 구획되어 무문無紋 장식의 단조로움을 극복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불교에서 범종은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의식구로 사용된다. 따라서 극락세계와 관련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 종은 이를 과감히 생략하여 절제된 조형미를 보여준다.

현전하는 일본 종은 7세기 후반부터 출현하여 오늘날까지 1300여 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 종의 역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한국 종이 시대별로 조형의 변화가 거듭된 반면, 일본 종에서는 그러한 변천사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종신鐘身의 장식 수법에서 미약한 변화만 있을 따름이다. 일본 종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진태건7년명동종나라국립박물관을 기본으로 발달된 범종 양식이 에도시대 후기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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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2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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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7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