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잡다한 이야기

남자의 도가니 - 무레요코

korman 2026. 4. 17. 16:11

260330 - 260405 
남자의 도가니 - 무레요코 - 최윤영 옮김 - 큰나무

 

책 이름에서의 첫 느낌은 남자의 건장한 힘이다. ‘도가니’ - 사전을 찾으면 여러 가지 풀이가 나온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주는 느낌은 크건 작건 특별한 힘이다. 그라운드나 공연장에서 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광의 도가니부터 최고온의 뜨거운 불을 받아들이며 강한 쇠붙이를 녹이는 도가니, 힘의 상징인 소의 무릎, 그런 무릎으로 만든 도가니탕 등등. 그래서 그런지 때때로 남자들은 그들의 뼈를 도가니라는 속어로 스스로 칭하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고 뼈마디가 여기저기 편치 않으면 도가니가 낡았다고 한다. ‘남자의 도가니’라는 책 이름에서 책의 내용이 힘으로 상징되는 남자들의 행동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난 이 책의 저자인 일본인 ‘무레요코’ 라는 작가를 모른다. 이분의 다른 책을 읽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눈에 뜨인 것은 순전히 책의 표지 때문이었지만 책을 선택한 것은 안쪽에 쓰인 ‘카모메 식당’의 저자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분의 책을 읽은 기억이 없으니 물론 ‘카모메 식당’이라는 책도 읽지는 않았다. 단지 같은 이름의 일본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이 책의 저자가 쓴 소설을 기반으로 하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영화의 제목과 책의 제목이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이 분의 책이 영화 시나리오화 된 것이 맞았다. 스케일이 큰 영화는 아니었지만 참 소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장면으로 재미를 엮어가고 있었다. 매우 여성적으로 섬세한 영화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 책의 저자는 여성이다. 여성으로서 바라본 일본의 사회상, 특히 남녀관계를 중점으로 살펴본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지금 70이 넘은 노인층에 속한 여성이며, 저자에 대한 소개나 책의 내용 중에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니 독신으로 보인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때가 2015년이니 10여년이 지난, 또 그 훨씬 이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각 단원마다 언제 적 원고라는 연도 표기가 없으니 저자의 학창시절부터 노인으로의 호칭이 시작되는 때까지의 일상을 적어놓은 것이겠지만 책의 내용 거의 모두가 학창시절부터의 남녀관계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도 ‘도가니’라는 힘의 상징에서 벗어나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일본 사회 남자들의 빗나간 행위를 도가니에 빗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남녀관계에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입장에서의 히스테리적인 요소도 가미된 듯 느껴진다.

이 책에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별로 없다. 책에 쓰인 이야기가 사실에 입각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모두 저자가 보았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남녀관계라고 하여도 저자가 평생 독신이었으니 자녀를 가진, 늘 자식 걱정을 하는, 어머니로서 관찰하고 느낀 점은 없다. 따라서 독신 여성으로서의 편견이 있을 수 있어 책에 나타나는 저자의 판단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주관이 더 큰 비중일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 책에는, 독자들의 생각에 따라서 판단이 다르겠지만, 일본 직장에서 남자 상사는 본인의 가정이 있든 없든 아래 여직원에게 여흥자리나 심지어는 나이를 불문하고 남녀 간의 데이트 혹은 잠자리도 강요한다는 오해를 심어줄 수 있는 내용도 있으며, 저자 자신이 좋게 생각하고 있는 독신 노인이 다른 여성과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는 그를 더 이상 좋게 보지 않는다고도 하였다. 나 같은 독자에게는 ‘저 여자는 되고 나는 왜 안돼?“라는 자신의 푸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하였다. 

이 책의 말미에 저자는 독자들의 성향을 간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TV에서 봤다는 조사에 ‘여자의 학력이 높은 쪽과 수입이 많은 쪽 중에 어느 쪽이 싫으냐’는 질문에 일본 남자들의 90%가 수입이 많은 여자라고 답했다고 적었다. 수입이 많은 여자들은 남자를 깔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다고 한다. 일본 남자들의 응답과 이유야 말이 안 된다고 치부하더라도 과연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우리나라에도 많은 부부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다. 나는 부부가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에 찬성한다. 그러나 노인독자층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TV에서 이런 질문을 하고 결과를 발표하고 이유를 전하는 게 과연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이득이 되며 필요한 행위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 호감이 갖는 독자는 되지 못한다. 이런 남녀의 사소한 이야기를 가지고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는 건 작가로서의 대단한 능력이지만 너무나 소소하고 사소한 남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길게 끌어나간 대목들은 많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우리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많은 것에서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보이고도 있다. 이런 시시콜콜하고 비슷비슷한 남의 이야기가 일본 사회에서는 보편적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별로 흥미롭지 못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독자마다 성향이 다르니 다른 분들은 어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나이 든 독자로서 관심을 둬야 할 책은 아닌 듯싶다.

2026년 4월 5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