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3 - 260409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 수오서재

나는 집사람과 둘만이 자동차를 가지고 어디 여행이라도 갈 때면 가는 도중이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 접근하기 쉬운 사찰에 먼저 들르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불교신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절에 간다고 해서 내가 부처님께 절을 하거나 스님들께 합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지나가는 스님들과 정면으로 마주치면 그 사찰의 주인 되시는 분들이니 안녕하시냐고 기본적인 예의는 갖춘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은 대웅전 뒤쪽으로 지붕이 만나 ㄱ자를 이루는 모서리 처마에 매달린 풍경아래다. 그곳은 사찰을 찾은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조용한 곳이기도 하며, 겨울엔 제일 추운 곳이기도 하지만 여름엔 제일 시원한 곳이며, 살랑살랑 미풍이라도 불면 들릴락 말락 울리는 풍경소리가 정신과 마음을 맑게 해주어 안전운전과 차분한 여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접근성이 용이한 사찰이 있으면 들르곤 한다. 그곳에서 조용히 여정을 정리하고 여행을 어찌 기록할지 구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평소에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부처님을 뵈러가는 집사람이 대웅전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혜민’이라는 법명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지은 책이다. 에세이를 좋아하시는 독자들은 이미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 많을 것이고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분의 법명은 익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에 앞서 발간된 책들의 책명도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특정 종교인이 저술한 책은 읽지 않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 같은 무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종교인이 쓴 책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에세이는 종종 읽는 편이다. 물론 어떤 종교인은 에세이에도 자신의 종교에 관한 이야기나 우월성을 많이 강조하여 종교적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고 평온한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아주 오래전에 팔공산에서 작은 암자에 기거하는 스님 한 분을 뵌 적이 있었다. 그 분의 작은 책꽂이에는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이 꽂혀 있었다. “스님도 성경을 읽습니까?” 라는 나의 우문에 그의 대답은 “중과 신부는 옷만 다를 뿐입니다. 성경이나 불경이나 같은 것입니다”라는 대답이 있었다. 그 대답을 들은 후에 지금까지도 내가 선입견에서 가벼운 질문을 하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그건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당연한 궁금증이었다. 그 스님이 자신의 특정 종교를 앞세우지 않았듯이 불교인이 쓴 이 책에도 종교, 비종교, 타종교를 가리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정신적으로 애타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과 생활에 위안이 되는 인생살이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을 붙잡고 있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그것을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배운 것 같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좋은 논문을 쓰려고 애쓰는 그에게 지도 교수가 “좋은 논문은 끝마친 논문이고 박사 논문이 인생 최고의 책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니 그냥 써라”라고 하였다나. 이 얼마나 시원한 충고였을까. 그게 스님이 중생을 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걷다가 힘들면 반보로 걸으라고 하였다. 그리 천천히 걷다 보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걸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 그저 누구나 평소에 알고 있을 이 평범한 일도 당사자인 우리는 무언가를 성급하게 실행하는 과정에서 쉬이 느끼지 못하는 이야기 아닌가. 결혼에서도 상대방 외모에만 너무 이끌리지 말라고 하였다. 갖고 싶었던 핸드폰도 막상 갖고 나면 핸드폰 모양을 보는 게 아니라 핸드폰에서 나오는 콘텐츠만 보게 된다고.
지금은 좀 덜한 것 같지만 한 때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문장을 한 단어로 줄인 말이다. 사람들은 순간순간 작은 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지만 큰 행복을 추구하느라 주위의 작은 행복들을 놓지는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이런 소소한 행복을 강조하고 있다. 조그마한 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확실한 행복이므로 이런 행복이 쌓여서 큰 행복이 되는 것 아니겠나. 나도 잠시 잊고 있었던 이 소확행을 떠 올리며 나의 소소한 행복은 무엇으로 시작될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손녀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것이 그 첫째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독자를 위하여 혹은 누군가에게 이 책을 전달하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이런 인사말을 적어 놓았다. 책이 아니라 평소에도 세대를 가리지 않고 남녀와 상관없이 정성을 다한 인사로 기억해도 좋을 말이다.
‘어디를 가시든 보호받으시고 어디를 가시든 인정받으시고 어디를 가시든 사랑받으시길’
2018년에 처음 출판된 책이므로 8년여 세월이 흘렀지만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 중에 하나이다.
2026년 4월 9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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