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20 - 260423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 박건우 - 소담출판사

책을 읽던 중 제일 빨리 읽은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사이즈나 활자 크기는 통상적인 반면 두께는 좀 두꺼운 느낌이 들지만 각 페이지마다 사진이 이야기만큼이나 많아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부인이 함께 68일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대만을 걸어서 여행한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부인이 9살이나 많다고 하였고 책속의 부인은 불혹을 넘었다고 하였다. 그럼 여행 당시 40을 넘었다는 뜻인데 그 나이에 68일간의 살림살이를 등에 짊어지고 30초입의 남편과 그 길을 같이 걸었다는 데 우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경의를 표하고 싶다. 통상적인 부부는, 나 같은 은퇴자를 제외하고는, 아침에 헤어지고 저녁에 만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끼리 며칠간 같이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68일간은 아무나 감당 못할 시간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더군다나 패기지여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힘든 세월인데 (68일은 시간보다는 세월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하물며 도보여행이라면 보통 여행자들에게는 감당이나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다. 대만이라는 섬나라의 동남서북 경로를 따라 타이베이에서 출발하여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기나긴 도보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난에 가까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행은, 아무리 부부라도, 서로간의 테마가 맞아야 한다. 그게 틀리면 누군가가 자기의 테마를 포기하여야 단거리 혹은 단시일 여행이라도 즐겁게 잘 다녀올 수 있다. 우리 부부도 가끔 여행을 한다. 그러나 나는 여행지에 박물관이 있다면 그곳을 돌아보고 싶은 반면 집사람은 그 시간에 집 안에 있는 것 보다는 밖에 있는 것들에 더 눈길을 준다. 그래서 내가 박물관에 잠시 들어가 있는 동안 집사람은 혼자가 된다. 그러니 나 또한 박물관 내에서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집사람과 내가 여행을 같이하고 있지만 여행 테마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해외여행도 나는 많은 것을 보지 않아도 시간과 갈 곳과 볼 것과 먹을 것에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반면 집사람은 패키지를 선호한다. 선택관광이나 쇼핑 강요가 있을 때는 불쾌감까지 느끼면서도 시간 허비하지 않고 편리하게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이유다. 그래서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타이베이의 박물관에서도 가이드의 독촉에 관광객(관람객이 아닌)들 뒤통수만 쳐다보다 1시간도 안 돼 나와야 했다. 시쳇말로 ‘왔오갔오’가 된 것이다.
책의 내용으로 보아 대만을 이리 오랜 시일동안 걸어서 함께 여행한 이 부부는 각자 많은 곳을 여행하였지만 부부가 된 이후에는 여행도 늘 같이 한 것으로 여겨져 두 분의 여행 테마도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오랜 시일의 어려운 도보여행은 더욱 그렇다. 대만으로 떠나기 전날 서울 집에서의 추운 날을 견디기 위하여 늘 애용하던 나무밥상을 쪼개어 난로에 넣었다는 이야기로 보아 테마가 지극히 일치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로 생각된다. 이 부부는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글로벌 거지부부’라는 책을 썼다. 난 그 책을 읽지 않았으나 자칭 ‘대한민국 사회 부적응자’와 ‘일본 활동형 히키코모리(일본판 6개월 이상 방콕파 은둔형이라 함.)’라 하였으니 두 분 모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은 느껴지지만, 그래서 9살 차이를 극복하면서까지 2세를 계획하지 않는 부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대만을 도보여행하는 동안 ‘글로벌거지부부’라는 책의 대만판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지금 내가 본 이 책의 출판이 2019년에 되었으니 지금은 부인이 50을 훨씬 넘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대만처럼 긴 시일의 도보여행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은 관광가이드책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독자들도 가이드를 받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대만을 일주하였지만 경유한 곳곳에 대한, 관광이 목적인 일반인들의 여행에 도움을 줄만한 요소는 그리 많이 실려 있지 않다. 사적인 이야기나 장시간 여행 중에 있을 법한 부부간의 갈등 및 걸으면서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 같은 것에 대한 기술도 별로 없다. 단지 걷는 중에 힘들었던 평범한 이야기, 밤을 지내기 위한 자리 찾기, 여행 동안 많은 도움을 준 대만 현지인들의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내가 이들처럼 도보여행을 계획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분들의 여행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단지 아쉬웠던 것은 책 속에 관련 사진이 많았지만 종이의 질 때문인지 선명도가 낮았고 모두 여행 중에 인연을 맺었거나 도움을 받은 인물위주의 사진이었으며 각 방문지의 대표적인 자연환경이나 문화, 역사적 사진이 없었다는 것과 각 목적지를 소개하는 장에 매일의 도보루트와 목적지 혹은 도착지를 표시한 지도가 스케치형식으로라도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모르고 있었던 무료숙박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이라는, 앱이나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무료숙박시스템이다. 여행에서 하룻밤 잠자리를 원하는 사람과 제공자들이 앱을 통하여 접속하고 서로의 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 부부도 대만을 여행하는 동안 이런 장소에서 몇 번 묵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부작용도 많은 모양이다. 우선 앱을 통하여 모르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장소에서 밤을 보낸다는 게 위험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고 그 앱을 통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변질된 남녀관계가 종종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타지에서 아무리 무료숙박이 필요하다고 이런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다행이 이 부부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편하게 밤을 보낸 것 같았다.
내가 이런 분들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늘 궁금한 것은 가장 소중한 여권과 여행경비는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안전하게 보관할까 라는 것이다. 텐트나 도미토리 같은 곳에서 말이다. 어떤 책에서도 읽은 기억이 없지만 역시 이 책에도 그 이야기는 적혀있지 않다. 책의 시작과 끝에 부부의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누가 남편이고 누가 부인인지 책을 모두 읽은 지금이야 짐작이 간다. 여행 테마에서 뿐만 아니라 모습에서도 천생연분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이 부부의 많은 여행 이야기들이 출판되기를 바란다.
2026년 4월 23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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