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6

은행나무

은행나무 내가 늘 거주하는 방에서 창문을 열면 보이는 가로수들은 모두가 수령이 꽤 된 은행나무들이다. 창에서 보이지 않는 방향에도 물론 은행나무가 들어서 있다. 내가 사는 동네 가로수의 거의 전부가 은행나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암수가 섞여 있어 가을 초입 바람 부는 날이면 보행인들 전부는 길 곳곳에 떨어진 은행을 피해 다니느라 일반적인 보행을 하지 못한다. 은행을 잘못 밟으면, 은행 알이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하여도, 그 과피에서 나오는 냄새는 참을 수가 없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몰랐던 ‘두리안’이라는 동남아 지방의 열매나 비슷하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길가에 떨어진 은행을 봉지에 주워 담는 노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은 살아진지 오래다. 아마도 ..

내 70의 초가을처럼

더보기 내 70의 초가을처럼 여름내내 아침 눈을 뜨면 그리 신선하지도 못한 도시의 새 공기를 마시려 습관처럼 겹창을 활짝 열었다. 아마 숨쉬기 위함 보다는 새봄이 되기도 전에 애처롭게 잘려나갔던 몸통에서 그러나 그래도 가지를 키워 순초록 이파리를 잉태한 은행나무의 젊은 시간을 보기 위함이었을 테지. 오늘 아침에도 자리를 털고 간유리로 막혀버린 안창을 열었다가 어느새 한기품은 바깥 창에 멈칫 여름이 갔나 하였다. 여명이 벗겨지는 거리 은행나무 가지는 아직 초록 잎에 덮여 있는데 하늘 가까운 이파리 몇 개는 차가운 시간을 먼저 마중하였음인지 벌써 계절의 굴레에 몸을 맡겼다. 내 70의 초가을처럼. 2020년 10월 7일 하늘빛

바구니차와 전기톱에도 봄은 온다

음악 : 유튜브 (평온을가져다주는 첼로 향연 연속듣기) 바구니차와 전기톱에도 봄은 온다 이사람 저사람 이차 저차 분주히 오가는 사거리 로터리에서 사방팔방으로 뻗어진 전깃줄 전화선 가지를 머리에 이고 멋없이 긴 키만 하늘로 올려놓은 회색빛 전주 옆에서 모든 가지 싹둑 잘려 전주보다 더한 매끈한 기둥만으로 봄을 기다리던 은행나무를 보았다. 2년 전 바구니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 전기톱을 마구 휘두르며 저리 잘라내도 나무가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가지를 마구 잘랐는데 그래도 또 자를 게 남았던지 지난겨울의 끝자락에서 다시 바구니차를 끌고 와서는 2년 동안 몸통이 애써 길러놓은 그러나 아직 큰바람 맞을 힘도 없는 잔가지들을 치고 또 쳐냈다. 애처로울 정도로 잘려나간 은행나무 기둥을 바라보며 이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