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부여-보령 (4 마지막)

korman 2024. 10. 16. 12:26

대천항 저녁노을, 대천해수욕장 아침 바다, 안면도 전망대, 안*암 탑, 건너온 다라 등

 

부여-보령 (4 마지막)

산에서 새벽을 맞으면 계곡을 타고 오르는 운무가 일품이다. 비가 그친 새벽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물론 산자락에서 하루를 묵는다고 매번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산의 새벽 공기는 숨 쉬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반면 바다에 가면 누구나 수평선 위로 고개를 드는 해를 바라며 새로운 아침노을에 얼굴을 물들이고 싶어 한다. 잠시 아침 해바라기가 되는 것이다. 해가 떠오르는 수평선에 화가들이 즐겨 그려 넣는 Z자 모양의 구름이 조금 섞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서해의 해변에서도 위치에 따라 그런 해를 볼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저녁노을이다. 동해의 아침해를 바라보며 희망을 이야기 하였다면 서해의 저녁노을엔 하루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차분함이 묻어있다. 일출의 해 보다는 일몰의 해에 치유의 기운이 더 있는 것인지 가끔 언론 인터뷰를 보면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여명이 밀려나는 시각에 객실의 커튼을 열었다. 베란다로 통하는 커다란 유리문에 드리운 대천항의 가로등은 아직 꺼지지 않은 채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베란다로 나섰다. 대천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는 어디쯤에 있는지 여태 주위는 푸르스름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잿빛이라고 해야 할까 여명은 그리도 물러나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새벽에도 기승을 부리던 여름더위의 기운이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는지 새벽바다에서도 아직 선선함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산과 바다 어디서나 새벽의 공기는 가슴에서 머리로 직행하는 것인지 자꾸만 자신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게 되는 것은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산의 공기와는 다르게 바다의 아침 공기에는 내 실력으로 표현이 불가한 오묘한 냄새가 섞여있다. 설사 그게 정화되고 변형된 비릿함이라 하더라도 난 그 묘한 냄새가 섞인 바닷가를 더 좋아한다. 

객실에 놓여있는 전기주전자에 물을 부었다. 머그잔이 무거우리만큼 아침커피를 가득 채우고 다시 베란다에 섰다. 이런 때 커피 맛이 가장 좋다고 해야 할까. 영화에서처럼 가운을 입고 한쪽 손을 가운의 주머니에 넣고 먼발치를 바라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커피 잔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고 싶었는데 차려입은 게 반바지뿐이니 그런대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집시람에게 사진 한 장 찍어보라고 하고는 늘 하는 대로 편의점에서 산 작은 컵라면에도 물을 부었다. 아침에 무거운 식당밥 보다는 맵지 않은 설렁탕류의 컵라면이 간편하면서도 아침시간에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난 집사람과 둘만의 여행에서는 아침식사를 늘 이렇게 한다. 아침 밥상으로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이라면 더욱 좋지 아니한가. 서두를 필요 없으니 좀 늦은 시각에 천천히 숙소를 나섰다. 프론트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객실의 카드키를 반납하며 “잘 쉬고 갑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들은 ‘가든 말든 내 알바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무런 대꾸가 없었고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게 지방에 따른 문화적 차이인지, 물론 어디나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여에서의 식당 주인이나 보령 숙소 직원들의 묵묵부답은 여행을 마친 한참 후인 지금까지도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아침의 잔잔한 너울을 타고 모래밭에 내려앉은 포말은 봄날의 눈꽃이 땅에 닿기도 전에 봄볕에 사라지듯 쳐다볼 새도 없이 그렇게 모래 속으로 숨어버렸다. ‘게눈 감추듯’이란 표현도 포말에겐 당하지 못할 거라 생각되었다. 잠시 대천항수산시장을 구경할까하여 해수욕장에서 그리로 가는 길을 내비에게 물었다. 지도상에서는 해수욕장에서 가까운 거리라 큰길이 아니라도 빠른 길을 가르쳐주겠지 하고 생각하였는데 내비는 다시 원형로터리를 만나게 해주었다. 12시 방향 출구로 가라는 지시가 있어 로터리 반을 돌아 그 쪽으로 핸들을 돌릴 즈음 다시 1시 방향으로 가라는 안내가 계속되었다. 순간 우측으로 핸들을 돌리니 금방 보령해저터널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로터리와 해저터널 입구가 너무 가까워 잘못 진입했다 하더라도 터널을 다 통과하기 전에는 차를 돌릴 길이 없었다. 그게 내 실수였는지 내비의 실수였는지 순간적으로 터널에 들어서기는 하였지만 짜인 여정에 보령해저터널 통과가 있었으니 수산시장 구경은 포기하기로 하고 안면도로 향하였다. 70km로 제한된 터널을 통과하는 데는 10분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안면도로 향하는 그 나머지 구간은 섬과 다리로 되어 폐쇄된 해저공간에서의 운전에 지루함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 안면도 입구에는 터널을 개통하면서 세웠다는 허리가 잘록하고 둥근 항아리 모양의 전망대가 서있었다. 그곳에서는 지나온 다리와 물 빠진 앞바다의 펄이 먼 곳까지 조망되었다.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 같은 길을 가야하니 얼마 전 TV에 소개된 ‘안면도 안*암‘에 들르기로 하고 또 내비에게 길을 물었다. 내비는 한참을 직진하라고 하더니만 오른쪽 작은 길로 접어들라 하였다. 그러더니 산자락을 타고 돌아 왔던 길을 다시 가라 하더니만 또 한참을 직진하라고 요청하더니 왼쪽 길로 접어들라 하였다. 살펴보니 이미 지나쳐갔던 길인데 그 때 그곳에서 우회전 하라고 했으면 간단했을 것을 어떤 이유로 그곳을 지나친 한참 후에 산자락 작은 길로 유턴을 시켜 다시 이곳으로 오게 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내비에게도 가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었는지 모르겠다. 요즈음 매스컴들이 너도나도 보도한 “내비가 가르쳐준 대로 가다가 논두렁에 갇혔다”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그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좁고 왜소한 길을 기어가듯 통과한 후에야 커다란 ’안*암‘ 현판을 만날 수 있었다. 바닷가 넓은 지역에 탑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TV에서 본 것과 같은 감흥을 주지는 못하였다. 순간 다른 여행에서 어느 외국인이 들려준, 서양 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Picture is better than the place"라는 말이 생각났다. 역사적인 느낌도 주지 못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1998년에 지어졌다는데 경내의 길과 건물들의 관리가 다른 사찰들 보다는 소홀하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좀 더 어울리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첫 번째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막히는 길 없이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안착하였다. 집을 떠날 때 “괜찮겠어?” 라고 물었던 집사람은 “잘 다녀왔네요. 운전하느라 고생했어요.”라는 말로 여행을 마감하였다. 여행도 좋지만 집이 더 좋다는 많은 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다음은 어디가 좋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2024년 10월 14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NMjpzLu5NtI 링크

El Concierto de Aranju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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