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잡다한 이야기

K-민담 - 김을호

korman 2025. 2. 22. 11:56

250215 - 250220 
K-민담 - 김을호 - HCbooks

세 마당으로 이루어진 27편의 ‘옛날이야기’를 읽었다. 겨울 눈 내리는 밤중에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서 들었어야 더 실감이 났을 이야기들이다. 민담(民譚)이라 함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라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 중에서 27편을 골라 책을 만든 것이고 책을 낸 사람이 직접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지음’이라 하지 않고 ‘엮음’이라 하였다. 지금은 세계로 향하는 모든 것에 K라는 영어 알파벳이 우선적으로 들어가는 시기다 보니 민담에까지 K가 붙었다. 하여간 내가 느끼기에는 민담이라는 한자어를 쓰지 말고 그 한자를 풀어 ‘옛날이야기’라 하였다면 좀 더 친근감이 있고 나이 든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도 K라는 것을 넣기에는 민담이 어울렸을 수도 있겠다. 

옛날이야기에는 기본적으로 효(孝)와 충(忠), 그리고 보은(報恩), 청백리(淸白吏), 권선징악( 勸善懲惡) 같은 문제들이 이야기의 뼈대가 된다. 또한 이런 이야기 중에는 동물들을 의인화하는 장면도 많고 신령이 동물로 변하여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악(惡)에서 구하기도 하며 특히 호랑이는 의로운 동물로 묘사되어 의인이나 선인들을 구해주는 신령의 변장술에 자주 등용된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모두 그런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모든 이야기의 끝말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한때 흠이 많은 생활을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옛날이야기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모범적인 결말을 찾아준다. 그래서 이 책은 모든 이야기에는 착한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끝말은 없다.

이 책은 효(孝)를 주제로 첫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도 다를 바가 없지만 효가 만인의 근본이라는 개념이 엮은이에게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할머니는 주로 밤에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여름에는 부채로 모기를 쫓아주시며 빨리 잠들게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고 겨울에는 화로에 고구마를 구우시며 군고구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손자의 초조함을 누그러뜨리시느라 들려주셨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나이에도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도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설령 할머니 레퍼토리와 중복된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할지라도 내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니 옛날이야기대로라면 이 또한 불효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이야기에 의하면 한석봉은 천하의 명필이지만 그 명필이 된 데에는 참기름집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참기름집 앞의 거리에서 기름 팔라는 아이의 외침에 기름장수가 2층에서 한 방울의 흘림도 없이 길가에서 아이가 들고 있는 병에 참기름을 따라주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노력을 하였으면 저리될까 느끼고는 두문불출 노력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름을 받은 아이는 “기름 값은 외상이요”라고 외치고는 어디론가 살아졌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한석봉이 본 그 장면은 아이와 주인이 벌린,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판촉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가끔 중국의 찻집에서 주둥이가 기다란 주전자를 이용하여 멀리 있는 손님들의 찻잔에 서커스 하듯이 차를 따라주는 이벤트가 TV에 소개되는데 한석봉은 그 모습보다 더 정교한 재주를 보았던 모양이다. 또한 중국 사신단의 일행으로 먼 길을 떠난 허준이가 호랑이의 부탁을 받고 호랑이 새끼들의 상처를 치료해주고는 그 후 명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래서 옛날이야기가 이 나이에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이야기 하나하나를 읽으며 내 할머니는 내 나이에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왜냐하면 책장을 다 넘길 때에는 손주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 전편이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한편 이 할아비가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하면 아이들이 관심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믿거나말거나 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가 아이들이 현 시대의 상식과 질서에 맞게 전후좌우를 따지고 들면 그 대답을 찾느라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고 아이들은 옛날이야기보다는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최신 이야기들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주들과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옛날이야기’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과 생각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았더니 민담은 한자로 ‘民譚’이라고 썼다. 그리고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라 풀이를 하였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니 당연히 ‘민’자는 民으로 쓰겠지만 譚자는 ‘클담’이다. 글자의 의미가 크다는 것일 텐데 내포된 의미로 ‘생각 같은 것이 크거나 깊다, 빛나고 커지다, 편안하다’ 등이 담겨있다. 이야기라는 뜻은 없는데 어찌 이 단어가 ‘옛날이야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내 할머니와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고담(古談)이라고 하셨다. 이는 한자를 풀어도 오래된 이야기라는 뜻이니 궁금한 건 없다. 사전의 풀이도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하였다. 그러니 사전적 풀이만 놓고 보면 민담이나 고담이나 같은 의미이고 난 당연히 ‘담’자는 같은 한자를 쓰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다른 글자가 쓰였다. 그 차이가 뭔지 알고 싶은데 인터넷을 계속 뒤지고 있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하였다.

어릴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세대라 할지라도 보고 들을 게 너무나 많은 지금에도 옛날이야기에 아직 관심이 있을까 궁금스럽다. 요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 ‘구연동화사’라고 하던가? 다른 나라의 이솝우화 같은 것도 구연동화의 대상이 되겠지만 때로 민담이라 하는 우리의 옛날이야기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지 궁금하다. 그런 분들은 이런 책을 읽으면 활동에 도움이 많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한 지금 내 생각이라면 이 책과 책 속의 옛날이야기는 구연동화사들이나 손주들에게보다는 여의도에서 큰일 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다.  

2025년 2월 12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iP_vqB_ipVY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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