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아침 커피 잔을 들고
여명 속
비오는 길거리의 흐름 따라
속절없이 내려앉는 은행잎을 보며
오늘처럼
비에 젖은 낙엽위에
혹시나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
잔을 들고 있다는 것조차
잊었다.
악마처럼 쓴 게 커피라 하였거늘
쓰다고 느끼는 것조차 사치였을까
다 식어버린 머그잔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가로등도 아직 꺼지지 않은
새벽 길거리 허공으로
부질없이
한숨만 뱉었다.
문득 30여년 전에 버린
담배 한 개비가 생각났다.
어렴풋이
흰 독방에 갇혀있는 꿈을 꾸었다.
마누라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따라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아침을 맞아 둘이 나눈 대화였다.
당사자 보다
내 마음의 두려움이 덜하였었는지
내 꿈은 흰색이었다.
CT 찍으러 혼자 기계실로 들어가는
마누라의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갑자기 어머니가 그리웠을까마는
마누라가 믿는 부처님은 있으되
내가 믿는 신은 없으니
어머니께 기대고 싶었겠지.
암센터,
불안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지정된 의사를 만났다.
CT판독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
의사 목소리가 착 갈아 앉았다.
차근차근 그러나
결코 액센트가 들어가지 않은 목소리
환자의 불안을 해소해 주려는
톤 낮은 목소리가 답답했음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 주었다.
오진이 아닌가를 되뇌우는
마누라 목소리가
보도블록에 닿는 구두 뒤축 소리를
누르고 있었다.
암!
증세의 경중이나 환부에 관계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신체적 괴로움을 떠나
정신이 먼저 지배당하는 병명!
아직 인간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두려움.
의사의 자상한 설명에도
그렇게 주어진 두려움은 컸다.
수술이 남았다.
걱정할 것 없는 수술이라 했다.
수술 후 현미경 검사가 필요하다 했다.
그래서 또 두려웠다.
글 쓰는 것조차도
불경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앞섰다.
없으면
나도 없어야 할
그대, 내 마누라여!
수술실로 들어가는
마누라가 누운 침대가
얼음침대같이 느껴졌다.
수술실 밖 모니터에
수술중임을 알리는 이름이 새겨지고
긴 시간 차마 모니터만 바라볼 수 없어
발걸음 가는 대로 병원 복도를 배회하였다.
이제 회복실로 가야할 시간 같은데
모니터는 변화가 없다.
이야기 들은 시간보다 좀 긴 시간동안
기다림을 불안함으로 바꾸고 나서야
모니터는
마누라가 회복실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잘 되었을까?
입원실 1111호
숫자의 의미가 좋다.
인간의 심리는
불안함을 별데다 해소하려 한다.
당사자에게
무슨 말인들 위안이 될까마는
험창하게 붙어있는
여러 갈래의 각종 고무호스 사이로
마누라의 손을 잡으며
애써 숫자의 의미로 위안 받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언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며
이처럼 마누라의 손을 잡은 일이 있었을까에
생각이 멈추었다.
어미를 졸라 수술 후 할미 병실을 찾은
6살 큰손녀 녀석이
자기가 평소 가지고 놀던
손가락 굴기의 고무인형을
할미 손에 쥐어주고는
꼭 쥐고 있으면 얼른 나을 거라 이야기하며
한동안 할미 손을 놓지 않고 있더니만
어미에 이끌려 병실을 나가며
끝내 눈물을 훔쳤다.
할미가 입원한 날도
할머니 혼자 두고 가면 어떡하냐고 눈물을 보여
모두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녀석이다.
손녀가 주고 간 인형이
수호천사가 되기를 바랐다.
6개월의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의사는 굳이 항암치료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환자의 심리를 걱정하여
항암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 모양이다.
완치된다는 의사의 말에도
집에 돌아와 안정을 취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당사자의 정신적 충격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
입원하는 날
8층에서 바라보이는 건물 옥상들에
하얀 눈이 깔려 있었다.
퇴원하는 날은 아예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그 순백의 향연에
애써 옛이야기를 들추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6개월의 세월이
꿈처럼 흘러갔으면.......
2015년 12월 5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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