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연말의 잡념

korman 2024. 12. 18. 16:40

 

연말의 잡념

이제 2024년도 10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벌써 노인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서운한 마음으로 12월을 넘긴 세월이 적지 않거늘 그래도 연말이 되니 또다시 섭섭해지는 건 매한가지다. 아니 나이를 먹을수록 그 마음은 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아니라 세상 자체를 바꿔야 하는 날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때는 세월이 왜 이리 더디게 가냐고 세월 위에서 뛰어가고 싶은 시절도 있었고 종각에서의 행사와 종소리를 잘보고 듣기 위하여 가로수에 오르겠다고 호기를 부린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나이일 뿐 그저 할 일 없는 노인들의 팔목에서도 공평하게 돌아가는 시계를 원망하는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글을 저장해 놓은 2024년 폴더를 열어 올해의 오늘까지 몇 편의 글을 썼는지 확인해 보았다. 몇 편이라고 하는 표현조차 쑥스러운, 그저 생각날 때 그날의 일을 써내려간 아마추어의 일기 같은 기록이긴 하지만 내 생각이 가미된 글이 14편, 책을 읽고 느낌을 기록한 글이 13편이었다. 연말까지 10여일이 남았으니 그 안에 또 세월 타령하는 글이 하나쯤 추가될 수도 있겠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으니 그 책의 독서기록도 추가될 것이므로 모두 합쳐 29편은 될 성싶다. 하지만 이건 2023년 46편의 기록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숫자다. 내가 속한 동네 단체에서 시간이 많이 소비되는 활동 자료를 만들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일을 맡았던 관계로 그만큼 시간을 다른 데 썼다고는 할지라도 그걸 핑계로 아마 게으름이 생겼던 모양이다. 2023년의 마지막 글에도 생각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써내려가며 코로나가 끝나고 동네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모임이 많아져 그랬다는 이유를 달았다. 계획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핑계를 만들어 자아를 도피시키는 행위는 나이가 들어도 없앨 수 없는 스스로의 인생 치유수단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가 올해에 쓴 글과 읽은 책 중에서 하나씩 고르라고 한다면, 

‘개가 필요한 법’ (https://kormanslee.tistory.com/18353438 참조)과 

‘지구별 여행자 - 류시화’ (https://kormanslee.tistory.com/18353475 참조)

를 선택하겠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작년이나 올해에도 정리하지 못한 전화번호가 있어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지우기를 누르지 못하고 다시 내려놨다. 아침에 본 인터넷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11/29/3PWCXA77XRDKLGFS5PTHGB3UZE/

전화번호를 바꾼 뒤 매일 낯선 사람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은 한 청년의 사연이 전해졌다. .........전화번호를 바꾼 이후 매일 오전 9시 전에 카톡이 매번 울렸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들을 먼저 보내신 어머님 카톡이었다.......그는 “네 어머니 잘 지내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살도 찌고 운동도 잘하고 있으니 끼니 거르지 말고 마음아파하지 마세요. 최고의 엄마였어요. 저도 사랑해요 엄마”라고 남겼다.’』 
전화번호를 바꾼 청년이 아들을 대신하여 어머니께 보낸 답신이었다. 기사를 다 읽으며 눈에 고이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눈물도 많아진다고 하지만 누가 읽어도 휴지 한 장 정도는 필요한 기사였다. 

이미 전화번호는 통신사에 반납되었지만 내 전화기에도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내 큰형님과 매형 및 친척들이 쓰시던 전화번호가 아직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리고 그 전화번호로 연결되던 카톡도 그대로 살아있지만 사용자는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다. 물론 지금은 연락이 끊긴 다른 분들의 전화번호도 그리된 경우가 많다. 이미 다 제3자의 것이 되어버린 그런 전화번호를 매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하지 못했고 올해는 정리해야겠다고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하늘에서 보낸 아들의 카톡 기사로 하여 다시 전화기를 내려놓은 것이다. 아무리 형님이나 매형이 그립기로 내가 기사의 어머니처럼 카톡을 보낼 일도 없거니와 보낸다 하더라도 답장이 오기는 만무하겠지만 그 기사를 읽으며 아들의 전화번호를 반납한지 두 달 만에 그 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부여한다는 것은 통신사에서도 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반납되는 번호마다 기쁜 사연보다는 슬픈 사연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가 내 소유물이 놓인 방안을 둘러보았다. 지금 마음 같으면 2/3는 버려야 할 것들이다. 작년에도 또 그 이전에도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그저 시늉만 냈는데 올해에는 어찌될는지. 참고로 남겨둬야겠다 하면서 모두 pdf스캔하여 컴퓨터에 저장한, 예전에 사용하던 종이 자료들은 왜 버리지 못하고 노란 봉투 속에 아직 남아있을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연결하면 보다 더 좋은 대답을 들을 수가 있는데 예전에 쓰던 커다란 ‘영한대사전’은 왜 아직도 책꽂이 상단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지, 지나온 이야기이며 세월의 흔적이기는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커다란 앨범들은 어찌해야 하나 등등 연말이 되니 또 생각이 많아진다.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도 읽었으면서.......

2024년 12월 18일
하늘빛

 

음악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5n-Pe4AU0bU 링크

Christmas Jazz 2024 in Cozy Apartment 🎄❄ Tender Piano Jazz Music for Relax, Stress Relief &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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