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동종(銅鐘)

korman 2022. 10. 26. 17:18

Ⅰ. 한국종의 기원과 역사

한국의 종은 삼국시대부터 불교의 법음구로 쓰이는 범종(梵鐘)과 시각을 알리는 관종(官鐘)이 있다. 그리고 천주교와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성당종과 교회종도 생겨났다. 하지만 한국종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우리 민족과 가장 오랜 역사를 함께한 범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범종은 불교라는 신앙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법음구(法音具)로 우리나라 불교의 융성과 쇠퇴 등에 따른 수요에 부응하며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기록에 보이듯이 삼국시대의 4세기 후반 경에 중국을 통해 이루어졌다. 불교의 전래는 우리의 사상적, 문화적 측면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해 준 중대한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불교미술이라는 독특한 조형분야를 개척하게 되었다. 불교전래 이후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불상(佛像)과 경문(經文)이었으며 초기의 불교미술은 불상과 탑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전대부터 이루어졌던 발달된 공예기술을 바탕으로 불교공예품도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또 먼저 이루어진 것은 탑 안에 봉안되는 사리(舍利)와 함께 그를 보호하거나 장엄시킬 목적으로 제작된 사리기(舍利器)와 그 장엄구(莊嚴具)들이었다. 아울러 사찰이 건립되고 그에 따른 의식과 규범이 정해지게 됨으로서 자연히 의식용의 도구들도 만들어지게 되었고, 범종(梵鐘)은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제작, 사용되었던 것으로 사찰의 가장 중요한 의식법구가 되었다.

Ⅱ. 한국 범종의 특징과 구조

우리나라 범종의 기원이나 그 초기적 양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범종은 통일신라종의 예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이나 일본종과 다른 매우 독특한 형태와 의장(意匠 : 물품(物品)에 외관(外觀) 상(上)의 미감(美感)을 주기 위하여, 그 형상(形狀)ㆍ색채(色彩)ㆍ맵시 또는 그들의 결합(結合) 등을 연구하여 거기에 응용(應用)한 장식적(裝飾的)인 고안(考案))을 지녔다. 그뿐만 아니라 세부의 장식이 정교하고 울림소리[共鳴]가 웅장하여 동양 삼국의 종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한국종의 각 부 명칭을 살펴보면 종의 맨 윗부분부터 음통, 용뉴, 천판, 상대, 연곽, 연뢰, 종신부조상, 당좌, 하대로 구분되며 전형적인 모습은 신라의 종에서 찾을 수 있다.

Ⅲ. 시대별 한국종의 특징

1. 통일신라 범종

통일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영역을 확대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안정을 꾀하고 왕권 강화에 힘쓰던 시기였다. 또한 통일신라 초기에는 불교의 전성기로 문무왕(재위 661~681)~혜공왕(재위 765~780)까지 수많은 학승(學僧)을 배출하며 한국 불교사상 유례가 없는 황금시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대대적인 불사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삼국의 우수한 공예기술이 취합되면서 최고의 공예품들도 다수 제작되었다. 이때 제작된 범종을 통해서도 통일신라 금속공예기술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는데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국 범종인 상원사(725년)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범종은 국내에 존재하는 종 3구, 파종 2구이며 일본에 존재하는 종은 4구, 망실종 2구이다. 따라서 통일신라에 만들어진 종은 총 9점이 현존한다. 한국에 현존하는 범종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종(上院寺 銅鐘),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청주 운천동에서 출토된 국립청주박물관 동종이 있으며 파종 상태로 남은 종은 선림원지에서 출토된 선림원지 파종(禪林院址 破鐘), 실상사파종(実相寺 破鐘)이 있다. 이 외에도 재일(在日) 통일신라 범종이 4구 남아있다.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조구진자종(常宮神社鐘 _ 한국 연지사종 蓮池寺鐘, 833년),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운주지종(雲樹寺鐘, 8세기 말), 일본 우사시(宇佐市) 우사신궁종(宇佐神宮鐘, 904년), 시마네현(島根縣) 고묘지종(光明寺鐘, 9세기 중엽)이다. 현재 조구진자종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 운주지종, 고묘지종, 우사신궁종은 일본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 고려시대 범종

고려는 918년 태조 왕건이 건국하여, 1392년까지 475년간 지속된 왕조로서 도읍을 송도(지금의 개성)에 정하고 4대 광종(재위 949~975)에 의해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정부의 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11세기 들어서면서 시작되는 요(遼)․금(金)의 침범 등으로 1019년부터 요나라의 연호를 쓰고, 1126년에는 금과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맺기도 했다.

또한 1170년 일어난 무신정변(武臣政變)과 13세기 전반의 몽골의 침입과 왜구에 의한 약탈 등으로 위기가 많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북방국과의 좋은 이웃관계를 유지하고 송(宋)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이룩하였다. 종교적인 면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호국불교(護國佛敎)로서 숭불(崇佛)정책을 고수하여,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제가 불문(佛門)에 들어가는 예가 많았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숭불(崇佛)의 분위기에 힘입어 사찰건축, 불교조각, 불교회화, 불교공예 등 다방면에 많은 문화유산을 남기고 있다.

현존하는 한국 범종에서 고려시대 범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러한 숭불의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전기 즉 10세기 중반에서 12세기 말까지 제작되어 현존하는 범종의 예는 고려후기 범종에 비해 그 수가 많지 않은 편이다. 고려전기 재명종(在銘鐘 _ 이름이 새겨져 있는 종)은 국내에 4구, 일본에 11구로 총 15구, 무명종(無銘鐘)은 국내에 10구, 일본에 18구(파종 포함) 등 총 28구이며 총합계 43구 정도이다. 이것은 고려 후기 범종이 120여 구인 것보다 1/3 정도의 수이다.

고려 후기의 종은 13세기 초부터 14세기 초까지, 그리고 14세기 전반부터 말까지의 2기로 다시 세분해 볼 수 있다. 앞 시기는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의 정착과 소종(小鐘)이 유행된 시기로서 고려 중기까지 천판 외연을 돌아가며 장식되던 연판문은 사라지는 대신 상대(上帶) 위에 둘러지는 입상화문대라는 별도의 문양대가 정착을 이루게 된다. 이런 입상화문대의 본격적인 정착은 13세기를 들어와서 유행을 이루게 된다. 13세기 중엽 이후에 역량 있는 범종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결국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몽골과의 전란에 따른 정치·사회적 혼란과 연맥을 같이한다. 동시에 높이 40cm 내외의 소종(小鐘)의 제작이 많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될 수 있으며 이들은 주로 소규모의 용도를 지닌 옥내용 불구(佛具)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3. 조선시대 범종

1392년 건국한 조선은 고려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새로운 유교적 질서를 구현하고자 한 왕조이다. 신왕조의 이상을 구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특히 문화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조형예술품의 창안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발원하여 제작한 종들은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불교 사찰에서 사용하기 위한 범종이다. 보통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폈기 때문에 불교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조선전기의 왕실은 꾸준히 불교문화를 후원하였고 여러 개의 범종 제작을 후원하였다. 다른 하나는 유교적 성격을 띤 조종(朝鐘)으로서, 이는 국왕의 즉위 기념과 국가 통치를 상정하는 새로운 조형물이다.

조선 왕실에서 발원한 종은 모두 초기인 15세기에 한정하여 제작되었으며, 16세기 이후부터는 왕실에서 종을 발원·제작한 예가 거의 없다. 조선전기의 왕실발원 종은 여말선초 기간에 전래된 중국 원명대종(元明代鐘) 양식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특유의 조선종 양식으로 전통적인 신라종이나 고려종과는 차이가 있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전란 때 소실된 사찰의 중창이나 그에 따른 불사를 충당하기 위해서 조선전기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장르의 불교 공예품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양식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많이 남아 있으며,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초는 소위 조선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하였던 영⋅정조 시대를 열 수 있게끔 한 원동력을 마련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1600년대 이후의 조선시대 범종은 17세기 종이 약 39점, 18세기가 82점, 19세기가 16점으로 조선 후기 종 가운데 18세기 범종의 수량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17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중국 범종과 전통형 범종이 혼합된‘혼합형 범종’이 만들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Ⅳ. 한국 전통범종의 주조방법과 문양 제작

한국범종을 제작할 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기법은 ‘밀랍주조기법’과 ‘사형주조기법이다. 밀랍을 사용하여 주조하는 밀랍주조기법은 정밀주조기술로 주로 높이 1m 이하 크기의 범종에 사용되고, 1m 이상의 대형 범종 제작에는 사형주조공법을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한국·중국·일본의 청동범종 제작기법을 보면, 중국은 북방계 범종과 남방계 범종의 제작기법이나 양식이 다르고 밀랍주조와 사형주조 양쪽 모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또한 밀랍주조기법과 사형주조기법을 혼용하여 사용하였고, 일본은 사형주조공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기법의 사용 여부는 각 나라의 종에 보이는 문양 표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섬세하고 복잡한 문양표현이 많은 한국 범종과 중국의 북방 범종의 경우 밀랍주조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동 종을 제작할 때 쓰이는 재료는 구리와 주석인데 주석의 함량에 따라 종의 소리가 달라진다. 따라서 가장 좋은 구리와 주석의 함량은 구리 83~85%와 주석 15~17% 정도의 비율이다. 종소리는 합금의 비율과 종 구조의 두께에 따라 결정되는데, 특히 주석의 함량이 부족하거나 다른 소재가 첨가되면 청아하고 여운이 길며 맥놀이가 뚜렷한 소리를 얻을 수 없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뜨거운 쇳물 주입, 밀랍 문양 조각, 완성된 종 모습
섭씨 1200도의 불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 쇳물.
최적의 시점에 틀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종의 형상으로 태어납니다.

“ 쇳물이라는 것이 1200도를 넘으면, 뜨거운 것은 뜨거운 것을 좋아하지 찬 것을 싫어해요. 수분이 있으면 부르르 끓어버려요. 그래서 거푸집이나 내형 틀에 습도가 있으면 안돼. ”

원광식 주철장 /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장인의 손끝에서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이 이어져가고 있는데요.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과학기술과 예술성의 결정체, 동종!
그 흥미로운 역사를 만나볼까요?

독창적인 양식의 한국 동종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동종입니다. 동종은 청동으로 제작된 종을 말하는데요.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사찰에서 의식용으로 발전했고 시각을 알리거나 대중을 모으고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용도로도 사용했습니다.

동양에서 종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발전한 점이 공통적인데요. 모양과 양식은 각 나라마다 다릅니다. 그중 한중일 삼국의 종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종은 튤립형으로 아랫단에 꽃잎이 살짝 퍼지는 모습이 많고, 일본 종은 컵을 뒤집은 형으로 1300여 년 동안 양식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한국 종은 마치 독을 엎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 특징으로 시대별로 양식과 기법이 변화합니다.

한국 동종의 기본적인 양식은 통일신라시대에 갖춰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시기에 한국종의 독창적인 양식이 완성됐다고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그럼 통일신라시대 동종이 가진 구조를 살펴볼까요?

종의 고리인 용뉴는 용으로 조각되고 음관은 소리대롱입니다. 다른 나라엔 없는 한국 종의 가장 독창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종에 둘러진 무늬 띠는 각각 상대와 하대라 하고 연곽과 연뢰는 연꽃모양으로 장식된 테두리와 도들꼭지입니다. 그리고 종 중심부에 튀어 나온 조각인 종신부조상과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외부 장치로 한국 동종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인 명동이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걸작 상원사동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동종인데요. 힘차게 두발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은 용뉴의 율동감이나 상대에서 하대에 이르기까지 표현된 세밀한 문양표현, 하늘을 나는 천인인 비천상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한국 동종 중 가장 우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동종은 후기로 갈수록 그 형태와 장식에서 변화를 보이는데요. 상대 위로 입상화문대라는 돌출 장식이 새로 첨가되고 용뉴의 용머리나 여의주 위치가 달라집니다. 또한 당좌가 2개에서 4개로 변화하는 등 장식적 의미가 부각됐습니다.

조선시대는 전통양식의 동종과 중국양식이 혼합된 형태가 나타나는데요. 용뉴에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고 음관과 당좌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동종의 웅장하고 깊은 소리와 뛰어난 예술성은 주변 국가에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현재 일본엔 우리의 동종 53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임진왜란 당시 약탈되거나 조선에서 일본에 하사한 경우, 일제강점기 반출되었을 가능성 등 다양한 경위로 짐작됩니다. 이는 일본 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동종의 예술적 가치와 뛰어난 소리 때문입니다.

동종에 숨은 과학적 비밀

동종은 외형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맑고 깊은 소리를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동종이 뛰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요. 대표적인 예가 성덕대왕신종입니다.

현존하는 우리의 종 중에서 가장 큰 성덕대왕신종 높이 3.75미터, 무게 18.9톤으로 당시 구리 12만근을 들여 대형 종을 제작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아들인 경덕왕이 조성을 시작해 손자 혜공왕 대에 이르러 완성했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34년이나 걸렸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이 통일신라시대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소리입니다. 진동하듯 울려 퍼지며 마치 심장박동 소리와 비슷한데요. 이런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맥놀이 현상’ 때문입니다.

이 맥놀이 현상 때문에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는 여운이 길고, 더 웅장하게 들립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종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종소리가 탁월한 데에는 우리만의 종 제작기법 덕분입니다. 용 모양의 고리인 용뉴에는 음관이 위로 솟아 있는데요. 소리 통로인 음관은 종소리를 더 정교하게 걸러내며 장식적인 미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종의 재료인 구리와 주석의 합금 비율도 중요합니다. 주석의 비율이 강도와 소리를 결정하는데, 너무 많이 넣으면 깨지고, 조금 넣으면 음향이 떨어집니다.

“ 종의 크기에 따라 비율이 달라요. 날이 춥거나 비가 오느냐 온도가 몇 도냐 독의 어디에 붓느냐 위에서 붓느냐 밑에서 붓느냐 그 합금을 얼마나 깨끗이 해서 종을 붓느냐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

원광식 주철장 /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성덕대왕신종은 땅과 가까이 매달아 놓고 바로 아래 명동을 두었는데요. 종을 치면 진동이 명동에 부딪혀 반사되고, 그 소리가 더 크고 길게 납니다. 현대에 쓰이는 스피커와 비슷한 장치입니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 종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한국 동종은 아름다운 모양과 마음을 울리는 소리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각 시대의 종교, 예술, 과학이 집약된 독보적인 예술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한국 동종의 독창적인 양식은통일신라시대에 갖춰졌다.
2. 상원사동종은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동종이다.
3. 한국에서 현존하는 고대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은 성덕대왕신종이다.

참고문헌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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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우리역사넷  2022년 10월 25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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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쇳물 주입, 밀랍 문양 조각, 완성된 종 모습 섭씨 1200도의 불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 쇳물. 최적의 시점에 틀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종의 형상으로 태어납니다. “ 쇳물이라는 것이 1200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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