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623

세월의 무게

세월의 무게 전화 통화야 늘 하는 거지만 요새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손위 형제들과 자주 연락을 한다. 내가 좀 미적거리고 있어도 형님이나 누님은 그새를 참지 못하시고 전화를 걸어오신다. 내 나이도 그리 작은 나이는 아니지만 모두 연로하신 분들이다 보니, 요새는 연로하다는 표현이 몇 살부터인지 불분명하지만, 당신들 보다는 동생네 걱정이 많으시다. 당신들이야 다들 단출하게 두 분씩 계시고 당신 자식들이나 동생들 오지 못하게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 대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 난시적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내 자식들은 아이들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나와 집사람은 어린 손주들과 접촉이 잦으니 행여 당신들 뵙는다고 오가다 잘못되면 다른 집 아이들까지 피해를 줄 수 있으니 행여 오갈 생각 말라고 늘 당..

겨울비

겨울비 하늘이 봄빛 같아 올려보니 하얀 구름 앞으로 내민 가지 끝에 여린 초록빛이 어른댄다 겨울비가 봄기운 담아 언 가지를 녹였나 움츠려진 내 마음에 너무 일찍 봄을 심어 몽환의 빛 보이게 하였나 춘삼월이라 하였으니 계절은 여태 겨울의 한 가운데이거늘 비에 적신 가지도 아직 봄이라 하지 않을 텐데 아마도 시간은 내게서만 세이나 보다 날을 꼽지 않아도 계절은 홀로 바뀌는 것을 겨울비 맞은 마음이 먼저 이른 봄을 열고 있다. 2021년 1월 23일 하늘빛 음악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XcIiFJ4jGyg 링크 Relaxing Anime Piano Music - Spring Flowers

20년의 한켠을 버렸다

20년의 한켠을 버렸다 어느덧 새해 1월도 중순을 넘어섰다. 나한테만 빠른 세월은 아니니 신파극 대사를 외울 필요는 없겠지만 나이 들면 세월 타령이라니 코로나에 가두어진 방콕의 시계바늘은 힘겨움 없이 잘도 돌아간다. 세월 가는 게 싫다 싫다 하면서도 집안에 놓인 시계가 좀 느리다 싶으면 얼른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게 또 인간 아니겠나. 그래서 인간들은 늘 이중인격에 이율배반인 모양이다. 작년 말에 ‘이젠 정리 좀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였던 것들을 하지 못하고 또 해를 넘겼다. 기실 그것은 2019년 말에 하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꺼냈다 넣었다 열었다 닫았다만 반복하다 해를 넘기며 ‘올해 까지만 남겨두고 내년에는 꼭 정리 해야지’라고 하였던 것을 내년의 내년을 넘긴 것이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버린다는 게, 그..

수전세트의 너트 때문에

수전세트의 너트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은 숨긴 채 시간을 확인하는 버릇대로 핸드폰을 집어 드니 시간보다 먼저 ‘로켓배송’이라며 새벽 5시30분에 문 앞에 주문한 물건을 놔두었다는 문자가 눈에 뜨였다. 연말에 내가 뭘 주문한 기억이 없으니 연초에 배달될 물건도 없는데 문자가 잘못 왔나하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작은 박스가 든 비닐봉지가 놓여있었고 송장 스티커엔 수신자로 내 이름과 함께 며느리 이름이 주문자로 적혀 있었다. 아마 며늘아이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필요한 거라 판단하여 뭘 주문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내용물에 대한 궁금증에 앞서 업체에서 비록 로켓배송하는 상품이라 해도 배달하시는 분들이 새해 벽두 해도 뜨기 전부터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을 열어보니 싱크대에 ..

홍합에 오디와인

홍합에 오디와인 오후 늦게 TV를 보다가 섬에서 소라며 홍합 같은 해산물을 출연자들이 직접 채취하여 그 자리에서 삶아 먹거나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을 접하였다. 순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오디와인(酒)’ 생각이 났다. 80을 넘어선 누님이 건네준 국산 오디와인은 병모양이나 빈티지가 2017년이로 쓰인 라벨이 프랑스 유명 샤또에서 만든 명품와인 못지않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소주 외에 와인이나 여타 과실주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아들과 사위를 두다보니 이런 게 생기면 홀로 즐겨야 하는데 그 혼술은 내가 반기지 않으니 노란색 멋진 라벨을 가진 이 오디와인은 언제 병마개가 따질지 모른 채로 냉장고 한켠에 방치되어 있었다. 홍합과 소라를 삶는 TV를 보다 순간적으로 오래 전 출장길에 단지 삶은 홍합 한 냄비와 와..

코로나 때문에 부유해 졌다?

코로나 때문에 부유해 졌다? 요즈음 난 내가 강남에서도 특히 부유한 동네 한복판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이 일어날 때가 있다. 아니면 근래에 와서 동네 사람들이 로토 1등에 많이 당첨되었나 혹은 종부세가 부담스러워 부유한 동네 살던 사람들이 부동산 처분하고 우리 동네로 이사 왔나 등 허접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6.25전쟁 중 연합군의 인천상륙지점 중 하나인 내가 사는 동네는 바다가 메워져 토지가 되었고 바둑판 모양으로 나뉘어 주택들이 들어섰다.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사람들이 ‘집장사 집’이라고 부르는 단독주택 단지가 있었다. 물론 아파트 구역도 있어 여러 회사에서 아파트를 건설하였고 나도 1990년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 동네로 이사 와 아직 살고 있으니 지금은 이 동네에서 원주민은 못되더라도 ..

코로나(Corona)와 크라운(Crown)

코로나(Corona)와 크라운(Crown)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라는 단어를 지금의 코로나 사태 이전에 들어 알고 있었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이를 좀 먹고 자동차에 관심이 있었던 분이라면 1960년대 우리나라 자동차 초창기에 신진자동차에서 일본 도요타로부터 반조립으로 들여와 국산부품을 좀 가미하여 생산한, 당시에는 고급승용차로 인식된 자동차 모델명 ‘코로나’를 우선 떠올릴 것 같다. 1972년까지 생산되었다니 자동차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도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까지는 기억이 될지 모르겠다. 신진자동차에서는 또한 같은 방법으로 ‘크라운’이라는 이름의 자동차도 생산하였다. 이 자동차는 내가 기억하기로 그 당시 최고급승용차였고 행세깨나 한다는 분들에게 크라운 검정색은 사회적, 경제적 신분을 과시..

아침소리

아침소리 이제 아침소리가 들린다. 중세도 아니면서 코로나 그 왕관의 기세에 눌려 무너진 거리에 맑은 아침소리가 들린다. 아이들 학교 가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소리에 창문을 연다 고개를 숙이고 낙엽을 차고 가는 녀석 반갑게 친구의 가방을 낚아채는 녀석 가방의 무게에 허리를 굽힌 녀석 학교가기 싫어 엄마에게 끌려가는 녀석 이런 모습 저런 모습 학교 가는 아이들 걸음걸이는 우리의 인생이다. 지나온 세월을 닮았다. 아이들 학교가는 소리는 이른 아침을 연다. 희망의 아침을 연다. 아이들 소리 없는 거리엔 동녘노을 없는 아침이 올 뿐이다. 학교 가는 길에 늘어선 노란 은행나무가 아이들 가방 원색과 섞여 아름답다. 2020년 11월 9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