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623

엇박자

엇박자 TV에서 스튜디오에 관객들을 입장시키고 옛날 트로트음악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에는 나이 많은 분들이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트로트는 뽕짝리듬의 특성상 그런 관객들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몸으로 박자를 맞추며 즐기기에 좋은 음악이다. 무대가 열리면 앞에서 유도하는 분이 계시기는 하지만 모든 분들이 리듬에 맞추어 자동으로 박수를 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노래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난처해질 때가 있을 것 같다. 엇박자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모든 반사 신경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한다. 마음먹은 대로 행동이 뒤따라주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들은 리듬에 맞춰 박수를 잘 친다고 치는데 실제로는 박자보다 1/4이나 반 박자쯤 늦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관객들이 많은 곳에서 노래하..

내 70의 초가을처럼

더보기 내 70의 초가을처럼 여름내내 아침 눈을 뜨면 그리 신선하지도 못한 도시의 새 공기를 마시려 습관처럼 겹창을 활짝 열었다. 아마 숨쉬기 위함 보다는 새봄이 되기도 전에 애처롭게 잘려나갔던 몸통에서 그러나 그래도 가지를 키워 순초록 이파리를 잉태한 은행나무의 젊은 시간을 보기 위함이었을 테지. 오늘 아침에도 자리를 털고 간유리로 막혀버린 안창을 열었다가 어느새 한기품은 바깥 창에 멈칫 여름이 갔나 하였다. 여명이 벗겨지는 거리 은행나무 가지는 아직 초록 잎에 덮여 있는데 하늘 가까운 이파리 몇 개는 차가운 시간을 먼저 마중하였음인지 벌써 계절의 굴레에 몸을 맡겼다. 내 70의 초가을처럼. 2020년 10월 7일 하늘빛

마블링이나 삼겹살이나

마블링이나 삼겹살이나 초등학교 1학년 손자녀석의 온라인 수업을 챙겨주다가 갑자기 ‘이율배반(二律背反)’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인터넷백과를 찾아보니 독일의 철학자 칸트에 의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게 돤 철학용어라는데 간단한 뜻은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명제’라고 한다. 그 다음 설명은 철학적인 설명이라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그냥 우리가 사회통념적 뜻으로 생각하면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 것 같은데 아무튼 철학은 그 단어부터가 어지럽다. 1학년의 경우 교육방송분을 제외하고는 담임선생님이 관련 교육사이트에 올려놓은 과제물이나 링크되는 사이트를 보고 스스로 공부하고 보호자가 확인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어제 올라온 동영상 교육은 ‘스마트폰 중독 예방교육’이었다. 문..

혼술

혼술 내가 본디 천상천하 혼자가 아니었거늘 병들어 권하고 잔 들어 받는 이 없으니 동창으로 드는 달빛에 내 그림자 만들어 어수선한 세월주 너 따르고 나 마실까 혼자 마시는 술이라 혼술이라 하였던가 홀로 마시는 술이라 홀술이라 하였던가 창밖 큰비바람 두고 그 소리 안주삼으니 술술 넘어 술이라 한들 가시가 배었구나 오른손 따르고 왼손 받아도 한 병이 태산이라 내 평생 언제 한잔 비움이 이리도 힘겨웠더냐 방랑시인 감삿갓 노랫소리 잔마다 섞어 마셔도 같이 할 친구 앞에 없으니 이 세월이 가엾구나 이리 마시나 저리 마시나 취하는 건 한 가지라 시인도 아닌 것이 묵객도 아닌 것이 혼술에 젖어 내 한 번 붓 들어 김삿갓 싯귀절 흉내나 내어볼까 이리저리 그리다가 어색한 술주정만 되었구나. 2020년 9월 7일 코로나 ..

매뉴얼

매뉴얼 좀 수그러드나 하였더니 처음처럼 다시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Chance는 기회다’라는 영어 공부들을 하고 계시는지 재 확산되는 이 사태를 모두가 남의 탓으로 돌리며 국민들이야 어찌 되었건 자기네 편으로 유리한 기회(Chance)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자유를 탄압한다는 종교단체도 있다. 자유를 위해서는 자율이 선제되어야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가 남의 탓이요 모두가 내로남불이다. 이들을 볼 때마다 예전 코미디 프로의 유행어가 생각난다.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신 똑바른 사람은 정00, 그분 하나라는 유행어가 돌고 있다는데 그 말에 수긍이 간다. 사태가 다시 심해지..

텅무하고 턱무하다

텅무하고 턱무하다 북한의 김정은이가 보름간 사라지자 CNN에서 촉발시킨 온갖 과도한 추측이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병에 걸렸다, 죽었다” 등등 난무하였다. 저녁 뉴스를 보다 '저놈 지금 신비주의 흉내 내고 있는 거야' 했더니만 집사람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및 유럽국가들도 자기한테는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관심 받으려고 어디 특각에 틀어박혀 있을 거야. 이제 다들 저리 떠들어대니 지금은 특각 어디서 기쁨조 끼고 와인이나 마시며 헛다리짚는 뉴스를 보고는 낄낄거리고 있겠지.“라고 대답하였다. 엊그제 김여정이라는 김정은의 여동생이 자신의 지위도 내세우고 싶고 정은이를 돕겠다고 탈북단체에서 북으로 띄우는 전단지를 문제 삼으며, 뭔가 꼬투리가 필요하였겠지만, 폭력배도 사..

손주 온라인교육 돌봐주다가

손주 온라인교육 돌봐주다가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을 어떻게 불러야 가장 적절한 표현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학교는 배정받았지만 입학식도 못하고 담임선생님 얼굴도 뵙지 못한 상태에서 온라인교육이라는 익숙지 않은 이름으로 첫 학교교육을 받아야하는 외손자를 돌봐주면서 1학년 선생님의 역할은 모든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힘든 분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손녀들은 이미 초년생을 벗어난 3.4학년이 되었으니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시간되면 각자 노트북 펼쳐놓고 스스로 다 알아서 하고 있지만 이제 1학년이 된 이 녀석은, 다른 집에서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도무지 통제가 되질 않는다. 물론 유치원과정을 거치면서 단체생활, 학교생활에 입문하기는 하였지만 학교라면 몰라도 집이라는 편안함과 공부라는 압박감이 동시에 이..

늦가을 쌍무지개

늦가을 쌍무지개 찬비가 자주내리는 음침한 늦가을에 산다는 먼 바다건너의 친구가 창문 너머 그의 하늘을 감싼 늦가을의 쌍무지개를 찍어보냈다. 그와 반대편에서 한여름같은 늦봄에 살고있는 나의 창문밖 하늘엔 뭐가 걸려있는지 나도 창문을 열었다. 먼지 묻은 뜨스한 바람이 훅 밀치고 들어왔다. 동쪽하늘엔 무지개 대신 뿌연 구름이 떴다. 친구는 그의 가을을 음침하다 하였는데 여기 내 봄은 지루하다. 왕관 위세에 눌린 내 봄이 불쌍타. 거기 섞여 나도 불쌍타. 이 세상 모두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불쌍타. 지루한 왕관의 계절이 지나고 내창 곁에 가을이 오면 나도 창문 열어 무지개를 맞을 수 있을까 그 사진을 바다 건너 친구의 봄에 보낼 수 있을까 그가 보낸 무지개를 보며 손주 하나 더 생기겠네 농담 한 마디 카톡에 ..

봄비 내리던 날

봄비 내리던 날 비오는 날엔 동네 공원 연못에 물이 고인다 하늘에서 내리는 물로 수면이 생긴다 물찬 연못엔 동그라미가 흩어진다 서로 부딪히며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 빗방울의 윤회인가 인생을 닮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수면에 하늘로 오르는 물방울을 만든다 원심을 이루며 지고 돋는 두 방울에서 희생과 탄생을 배운다 섭리를 배운다 연못 감싼 바위틈에 잘려나가지 않은 지난 가을의 갈대를 본다 말라버린 이파리 타고 봄비 흘러 뿌리를 적시고 묵은 가을 거름삼아 돌 틈 사이에선 새봄이 돋아났다 세월의 바퀴는 어디에 놔두어도 혼자 잘만 돌아간다 2020년 5월 16일 봄비오는 주말에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