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내소사의 운무와 함께

korman 2009. 5. 26. 14:32

 

 

 

 

내소사의 운무와 함께

 

 

새벽 5시, 5월 중순 주말의 새벽

창 너머의 어두움은 걷히고 있었으나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 시각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상청 사이트를 두들겨 보았지만

5시에 수정 입력된 예보는

전국에 한 시간 간격으로 종일 우산을 그려 놓았다.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 한다던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따끈한 우동 한 그릇으로

비 내리는 이른 아침의 스산한 기운을 데우며

9시 30분경 도착한 내소사에는

TV 뉴스만큼 강한 빗줄기는 없었지만

우산을 거들 수 있는 날씨는 아니었다.

이른 시간에 누가 왔을까 하는 생각으로 들어선 넓은 주차장에는

그러나 날씨에 굴하지 않고 떠나온 사람들의

승용차와 관광버스들로 이미 그 절반이 메워져 있었으며

그 중 일부는 벌써 경내 관람을 마치고

그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시간표는 나의 그것보다도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사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전나무길의 맑은 공기가

내리는 비에 섞여 우산위로 떨어지고

숲의 신선한 내음은 도시에서 담아온 내 허파 속 때를 벗기며

빗줄기에 운치를 더 하고 있었다.

사찰 입구에 놓인 자그마한 연지에는 장금이 다소곳이 앉아있고

한발 건너 나무 밑에는

그녀를 사랑했던 민정호의 애정 어린 시선이

연못을 가득 메우는 사진이 걸려있다.

이곳이 대장금의 그 장면을 촬영한 장소라 했다.

조선의 장금이가 백제의 고찰 이곳에도 다녀갔구나.

 

 

 

고찰을 찾아온 손님들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이신가.

잠시 우산을 내려놔도 좋을 만큼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대웅보전 뒤편의 바위산과 계곡으로 운해가 펼쳐지고

구름은 안개와 섞여 바위와 나무를 감싸며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이게 바로 산수화가 아닌가.

봉우리 한 겹, 구름 한 겹, 소나무 한 겹, 안개 한 겹,

그리고 부처님의 자비 한 겹.

사천왕문에 우산을 내리고 예전 조상님들이 그렸음직한 구도로

카메라 앵글을 맞추어본다.

 

 

 

원래부터 단청이 없었는지 아니면

세월의 풍화가 모두 벗겨간 것인지 그저 백태 낀 나목의 모습으로

세월의 영겁을 일러주는 대웅보전의 처마 밑에서

때마침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에 잠시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정교하게 조각된 꽃문살에서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질 즈음

진작부터 보고 싶었던 보물하나가 생각났다.

내소사 동종이라 일컫는 고려말기의 소종이다.

이는 1222년에 제작되어 국가 보물 277호로 지정된 것이라는데

귀한 것이라 그런지 이를 보관하는 보종각의 홍살이

너무 촘촘히 박힌 까닭에 홍살 사이로 눈을 들이밀지 않으면

그 안에 놓여있는 종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780년을 뛰어 넘어 홍살 안쪽 소종을 향하여

카메라 렌즈를 밀어 넣었다.

이 소종을 만든 사람이 디카에 찍혀 나오는 사진을 본다면

자신의 영혼을 빼앗겼다고 하지나 않을는지.

 

 

 

궂은 날씨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관광버스로 온 단체객들이었지만

간혹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내가 현재 이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범종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있을 즈음

유럽에서 왔음직한 서양인 한 사람도 그것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건너편에 근 800년이 된 종이 있으니

그걸 찍으라고 조언하자

그는 곧바로 그리로 다가갔지만

때 마침 뒤따라온 안내인인 듯한 사람은

유창한 영어로 그를 대웅보전 쪽으로 서둘러 가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그가 800년 된 종을 찍겠다는 말을 함에도

그는 큰 소리로 떠들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도 정해진 시간이 있기는 하겠지만

시간이 좀 지체된다 하더라도

그 유창한 영어로 자신이 안내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좀 더 세심하게 전달하기를 기대하면서

전나무길을 되돌아 나왔다.

 

 

크기와 유명세를 떠나 사찰은 늘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하나의 종교 시설물이라는 개념으로 멀리하는 사람에게도

그곳은 인간의 온갖 욕심과 번뇌를

조금이나마 치유하는 역할을 함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오늘처럼 비라도 오는 날 대웅전 처마 밑에서

스님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산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운무를 바라보는 마음에

무슨 속세의 탐욕과 원망과 질투가 느껴지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찰의 일주문 가까이에 까지

진을 치고 있는 속세의 시설들에서는

전나무길을 빠져 나오기가 무섭게 막걸리 한잔의 향응을 권한다.

아침 10시30분에.

이런 시설들은 저 주차장 뒤편에

자리를 잡게 하면 안 되는 것인지

어느 사찰에고 형편은 모두 같다.

주차장에 깔아 놓은 작은 시멘트 블록사이로

삐지고 나온 생명들이

비를 맞아 푸르름을 더한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다음 행선지인 순천만을 향하여 그곳을 빠져나왔다.

 

 

2009년 5월 열엿새 날의 내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