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남해대교 건너 보물섬으로

korman 2009. 6. 5. 16:44

 

 

 

남해대교 건너 보물섬으로

  

   

우리나라의 남해안을 따라 여행한다는 것은 결국

충무공의 발자취를 빼놓고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서남의 진도에서부터 남동의 부산까지

그의 혼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해대교 건너에 있는 남해군은

임진왜란을 종식시키게 하는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장군이 전사한 바다, 그 격전지 노량해협이 있는 곳이며

그의 주검을 뭍으로 처음 맞이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굳이 그의 발자취를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길 따라 마을 따라 외지인을 매료시킬 만큼

섬 곳곳에 많은 보물을 숨겨놓고 있는

남해군의 자칭대로 보물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오후의 남녘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겠다는 예보와는 달리

노량 앞바다와 남해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산길 위에 이르자

시간이 바쁜 여행객의 마음을 알았음인지

하늘은 짐짓 부슬거리며 내리던 몇 방울의 비도 거두우고

그 환상의 조망권을 미련 없이 내어준다.

작은 아이가 감탄의 외마디 소리를 그치지 못하고

발아래 펼쳐지는 파노라마에 카메라셔터를 눌러대는 사이

눈 한번 끔뻑하는 찰나에 남해대교를 건넜다.

쪽배에 의지하여 위태롭게 이곳을 건넜을 옛 사람들은

해협의 물살과 힘겨운 사투를 벌렸어야 했을 터인데.

  

 

30년 전에 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라는 남해대교는

활처럼 휘어진 자태로 높은 주탑과 연결된 하얀 와이어가

빗속의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그 멋을 더하고

다리 밑 끝 간곳없이 맑은 노량물가에 떠 있는 거북선은

금방이라도 왜적을 칠 기세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 거북선과 노량해협을 바라보는 자리에

이곳에서 전사하신 충무공을 모신 사당, 충렬사가 있다.

아산으로 모시기 전 3개월 동안 이곳에 안치되셨다고 하는데

남아있는 가묘가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현재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까이 노량 앞 바다가 훤히 바라 뵈는 자리에

장군의 시신을 뭍으로 옮긴 곳이라는 관음포가 자리하고 있다.

거북선 모양을 본떠 현대식 디자인으로 지은 영사실과

주변 해안을 조망 할 수 있는 장소가 갯벌 위에 마련된 이곳은,

그러나 충무공에 대한 역사적인 감흥이 느껴 진다기 보다는

지자체에 의한 상술이 먼저 다가오는 장소라 생각되었다.

 

  

일기예보가 빗나가기 바라는 마음이라면 나의 이기심일까

그러나 한창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에게는

오늘의 이 비가 일 년 농사를 좌우하는 결과가 될지 모르는 것을

이 절기에는 농촌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도시민은

이기적인 여행을 위하여 틀리지 않는 기상대를 원망하고 있다.

이런 여행객에 대한 하늘의 배려인지 빗살은 예보보다 가늘고

굽이굽이 해안을 돌아 연출되는 해안관광도로의 장관이

비에 젖은 보물섬의 숨겨진 속살을 하나 둘 내 보이며

와이퍼 흔들림에 어지러운 운전자의 시야를 혼미하게 하고 있다.

빗줄기 속에서 길은 지족해협이라 부른다는 좁은 해협으로 이어지고

그 위에는 창선교라는 또 다른 멋진 다리가 놓여있다.

아마도 나무그물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 오래된 어망 죽방렴이

그 다리 아래에서 두 날개 벌리고 강한 물살을 받으며

우리의 조상들이 어찌 고기를 잡았는지 일러주고 있다.

멸치철에 그곳을 통하여 잡히는 멸치는 최고가로 친다고 하였다.

 

 

예정한 짧은 시간 안에 남해의 보물을 모두 찾을 수는 없는 일,

이제 남해군을 벗어나기 위하여 연이어 놓인 다리를 건너며

그 얽혀진 이름으로 하여 나이든 머리가 삐걱거린다.

전국의 아름다운 길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이 길은

3개의 섬과 5개의 다리로 연결된 연육교라 한다는데

그 공식적인 이름으로 창선.삼천포대교라 부르고

연육교에 속한 다리 이름들이 남해군 쪽에서부터

단항교, 창선대교, 늑도대교, 초양대교, 그리고 삼천포대교라 하며

이미 건너온 죽방렴 위의 창선교는 창선대교와는 다른 다리라 했다.

연이어 놓인 다리에 창선교, 창선대교, 창선삼천포대교.......

같은 지명을 짜증나게 중복 강조한 다리이름에서 조차

반갑지 않은 심한 지역 이기주의가 느껴진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각 지방 자치정부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내세우지만

진작 다리나 길 혹은 공공시설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그 고장을 빛낸 역사적, 문화적 인물이나 특징을 내세우기 보다는

그저 그곳의 지역 이름만을 강조하는데 급급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제1의 관문과 내륙으로 진입하는 다리에도

우리역사나 문화의 상징성 있는 이름 하나 부여하지 못하고

인천국제공항, 영종대교, 인천대교 등, 지역을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세종공항, 안중근역, 이순신대교, 유관순로....이리하면 안 되는 것인지.

창선삼천포대교가 삼천포나 그 인근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삼천포창선대교라 불리지 않는지 궁금하다. 가나다순으로도 그게 맞는데.

 

  

삼천포대교 아래서 해협 건너 남해군의 경관을 음미하는 사이

몰려온 검은 구름이 굵은 빗줄기를 토하며 회색빛으로 길을 덮는다.

날씨 때문에 지체되는 시간만큼 통영에서의 소주 맛이 더 좋을까?

 


  
 

2009년 5월 열엿새 날의 남해

 

일부사진출처 : 남해군청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