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야구장에서

korman 2009. 7. 15. 15:55

 

 

 

야구장에서

 

       

 

강남역 사거리 근처 별다방의 평일 오후 시간

뉴질랜드에서 오랜만에 서울에 온 친구를 만나

커피 한잔으로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오랜만에 야구경기나 보러가자는 친구의 제안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이기는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경기를 접할 기회가 없으니

서울에 온 김에 한경기 보고자 함이었다.

둘 보다는 셋, 셋 보다는 넷이 같이 하는 게 더 좋겠기로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다른 두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다.

이 친구들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한걸음에 오겠다 한다.

야구장 같이 간 추억은 있지만 언제 어디로 갔었는지

기억은 까마득한 세월을 이야기 하며 잠실로 향하는 길에

저녁거리로 햄버거 한 봉지와 얼음물 네 병 마련하고는

홈플레이트 뒤쪽 중간쯤 높이에 자리를 잡았다.

 

           

 

평일이라 그리 많은 관중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1루와 3루에 포진한 양 팀 응원단에서 두들겨대는

비닐막대 소리는 천둥이 소리도 못 내고 도망갈 정도여서

바로 옆에서 이야기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 이제는 세계인의 응원도구가 되었다는

비닐막대의 위대함이 올림픽 금메달에 일조를 하였겠지만

한편 그 많은 사람들이 실내 돔구장에서 두들겨 대면

운동장의 선수나 경기를 즐기는 관중 모두에게

심각한 청각장애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들었다.

 

        

 

운동장에서는 선수들의 경기하는 모습도 즐길 거리지만

경기에 더 하여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양 팀의 조직적인 응원전과

자신만의 구호를 만들어 외치는 관중들의 갖가지 반응이 섞여있는

경기 외적 분위기가 경기의 재미를 배가하여준다.

지금처럼 응원도구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의 동대문 운동장

군산상고의 9회 말 역전이 야구팬들의 흥분을 일으키던 시절에는

단체로 응원하는 학생들이 들려주는 딱딱이 소리와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검은 동복 저고리와 하얀 속옷을 이용한

단체 마스게임 응원이 경기의 재미를 더 하였고

스탠드에서 마신 소주로 살짝 상태가 안 좋아진 일반 관중들의

사설 응원구호들이 코미디를 보듯 웃음을 주기도 하였으며

시멘트 콘크리트 스탠드에 신문지를 깔고 벌리는

소주 한잔의 기울임이 경기보다 더한 즐거움을 주기도 하였었다.

 

           

 

사실 난 운동장에 가기 보다는 TV중계를 즐기는 편이다.

운동장에 가려면 작정을 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TV는 늘 곁에 있으며 그저 내가 편한 자세로 즐기면 되고

요새는 각종 매체를 통하여 국내의 모든 프로 경기뿐만 아니라

일본경기와 미국의 메이저리그 경기도 매일 중계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전광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에는

결정적 순간에 보고 싶은 정확한 슬로우 비디오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걸 슬로우 비디오 세대라 하던가.

예전에는 운동장에 라디오를 가져갔다.

라디오 중계를 들으며 경기를 보면 상황판단이 정확히 되었다.

요새는 휴대전화기의 DMB 스포츠 채널을 통하여

잠실운동장에서 다른 구장 경기를 동시에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이건 동시다발 슬로우 비디오 세대인가.

노인들이 들으시면 “젊은 놈이” 하실 테지만 참 세월이 무상하다.

 

   

 

내가 즐기는 스포츠 단체경기 중에 야구가 들어있기는 하지만

야구와 축구가 같이 중계되면 난 늘 축구를 더 즐기는 편이다.

야구는 따지고 보면 효율적인 경기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결코 관중을 생각하는 경기 또한 아닌 것 같다.

경기의 흐름이 자꾸 끊어지고 시간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경기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미식축구나 럭비 또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경기에서도 한 순간의 재미가 주어질 때도 있긴 있지만.

  

           

 

축구는 그 흐름이 매우 빠르고 끊임없으며 움직임이 강하다.

국제적으로 운동장 규격이 일정하며 규칙이나 규정 또한 같다.

휴식 시간도 정해져 있으며 선수의 부상이 아닌 다음에는

경기가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되지 않는다.

선수 교체 시에도 해당 선수들은 대부분 뛰어 들어가고 나가며

어슬렁거리는 선수들은 관중들이 내버려 두지 않는다.

선수들이 임의로 시간을 지연 시키던가 무리한 반칙을 하면

가차 없이 경고나 퇴장이 주어지고

이런 행위는 다음 경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축구경기를 하지 않는 나라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야구 경기장 규격에는 범위는 있으되 표준이 없다.

경기장 길이가 제각각이고 외야의 담장 높이도 고무줄이다.

실제로 경기시간 보다는 내버리는 시간이 더 많다.

내가 본 경기에서도 공수 교대시 선수들은 뛸 줄을 몰랐으며

수비 팀은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공격하는 선수가 늦게나오고

투수를 교대하는데 바뀐 투수도 뛰어 들어갈 줄 몰랐으며

그리 들어가서는 투구 워밍업 한다고 또 한세월 보내고

투수가 잘 못하면 코치가 나가서 경기를 끊어놓고

타자가 치려하면 투수가 타임 부르고

투수가 던지려하면 타자가 타임 부르고

코치의 싸인 보느라 또 한참 먼 산 쳐다보고

심판 잘못했다고 항의하느라 시간 잘라먹고

오후 6시30분에 시작된 경기는 10시 30분이 지나가는데도

경기 보다는 그리 시간을 보내느라 7회를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공산국가에서 야구를 일컬어

스포츠 중에서 가장 부르주아적인 경기라 하였으며

이런 요소들이 야구의 국제화에 걸림돌이 되고

아직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야구를 외면하는

큰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7회가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기는 끝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우리도 비닐막대의 굉음을 뒤로하고

지하철 정거장으로 향하였다.

 

2009년 7월 여드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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