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한여름의 양복저고리

korman 2009. 8. 16. 17:34

 

 

 

 

 

 

한 여름의 양복저고리

 

올해는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장마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또 그 이전에도 큰 비로인한 고통은 늘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대의 발표와 더불어 있어왔기 때문이다.

올해도 TV등에서는 국민들에게 장마가 끝났다고 전하였지만

대만과 중국을 강타한 태풍의 영향으로 며칠 전 까지 곳곳에 큰 비가 내렸다.

그리고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서 떠나기 아쉬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워서 죽겠다고 외치면서도 사람들은 피서라는 명목을 달아

각자의 여름을 즐기고 있다.

 

자나간 장맛비 사이 청명하게 개인 주말에

우리도 강가에나 하루 가자는 조카의 제안에 남이섬엘 갔었다.

TV드라마 때문에 이제는 국제적인 명소가 된 그곳은

강 한가운데의 숲이 우거진 섬이라 하더라도

바람 한 점 없는 한여름의 더위는 피해갈 수 없어

강물과 장맛비의 습기를 잔뜩 먹은 뜨거운 공기사이로 산책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시원함을 느끼려고

반바지의 단도 올려보고 짧은 팔소매를 어깨가지 올려도 보며

햇빛을 피하여 나무그늘 사이로만 몰려다니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그리 햇빛을 피해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며

남이 장군의 묘소 앞쯤을 지날 무렵

한 무리의 남자 단체관람객들이 솔밭 가운데를 막아서고

각종 시설에 대한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지방에서 견학을 온 사람들로 생각되는 이 단체는

그러나 그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반팔 티셔츠를 입고도

연신 부채를 부쳐대는 다른 관람객들과는 달리

긴 검은 계통의 양복저고리를 모두 걸치고 있었다.

각자의 얼굴에는 찌는 더위에 대한 괴로움이 역력한데도

그들 중 누구도 저고리를 벗어든 사람은 없었다.

아마 그들의 인솔자가 그리하지 않기 때문인 듯싶었다.

저고리를 벗어젖혀도 땀이 연신 차오를 텐데

타이는 매지 않았다고 하지만

바라보는 내가 더한 더위를 느껴야 했다.

평일도 아니고 무더운 여름 주말에

야외 시설에 대한 견학을 오면서도

저리 치렁치렁한 양복저고리를 챙겨 입고 다니는

그들의 경직된 모습에서 더위보다도 더 답답함을 느끼며

솔밭 한 귀퉁이를 모두 차지하고 있는 그들을

빠른 걸음으로 앞서나갔다.

섬을 나오면서 안내인에게 물은즉

지방자치가 되고나서 남이섬의 성공사례를 보기위하여

견학 오는 단체가 많아졌다는 대답이다.

 

작년에도 그리하였던 것처럼

올해 TV뉴스에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모습은

이 무더위에도 그 검은색 양복저고리를 모두 걸치고

국정을 논의하고 있는 관료사회의 회의하는 모습이다.

작년에는 고유가시대에 에너지를 절약하자고 외치면서도

그 치렁치렁한 양복저고리는 내부회의에조차 계속 입고 있더니만

경제가 어려워 국민모두가 협력하여 위기를 타개하자는 올해도

그들의 그런 모습은 변하지 않고 있다.

복장에 대한 격식이나 외부에 예의를 지켜야 하는 형식이 필요 없는

나라 안 모임이나 회의에서는 깨끗하게 보이는 반팔셔츠 차림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좀 신선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이 무더위에 양복저고리까지 입고

그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내리는 에어콘 온도를

반팔셔츠를 입고 1도라도 덜 내린다면

에너지를 절약하자고 국민들을 계몽하는 효과보다

더한 효과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더위는 몸으로도 느끼지만 눈을 통하여도 느껴진다.

더운 날 국민을 더 덥게 하는 생산적이지 못한 형식들은

내년에는 사라지기 바란다.

더워도 저고리를 벗지 못하는 그런 형식들이.

오늘 아침 신문에

오일쇼크 때에는 선풍기도 틀지 않고 부채로 더위를 식혔다는

고 박정희대통령의 기사가 검은 양복저고리에 겹쳐진다.

 

2009년 8월 열 엿샛날

 

  

A Rainbow of Flowers, Frederic Dela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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