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고양이의 사랑

korman 2009. 8. 23. 21:39

 

 

 

 

 

 

고양이의 사랑

 

올해 봄이 한창 익어가는 어느 날 저녁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집사람이 무어라 혼자 중얼 거리며 들어왔다. 무슨 소리냐고 물은 즉 쓰레기통 주변을 맴도는 조그마한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이제 갓 어미를 떨어진 것 같은 모습에 얼마를 굶었는지 그 울음소리와 눈빛이 무척이나 애처롭게 느껴져 생선가시 몇 개를 주었더니 차 밑으로 물고 들어가 허겁지겁 맛있게 먹더라하며 그러나 사람들을 무척 경계하여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먹던 가시를 놓고 도망가더라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는, 특히 저녁시간에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이 가끔씩 눈에 뜨인다. 모두 누군가가 기르다가 버려 야생고양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이놈들은 그러나 음식물 쓰레기통이 모두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통인고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통 주위만 맴돌다가 사람들이 오면 도망가곤 한다. 사람들은 이런 놈들을 보아도 그냥 매몰차게 모든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부어버린다. 먹이를 주어 버릇하면 자꾸만 몰려들기 때문에 아파트 관리소에서도 이런 놈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가끔씩 당부를 하기 때문이다.

 

 

먹이를 주면 다른 놈들도 자꾸 나타날 텐데 왜 주었냐고 하였더니 애원하는 듯한 어린 그놈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게 보여 그리하였다고 하였다. 하루 먹이를 받아먹었던 그 놈은 다음 날도 또 그 다음날도 먹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비슷한 시간에 쓰레기통 주위 차 밑에 숨어 있다가 집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예의 그 처량한 울음소리와 눈빛을 보이며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바람에 이 마음약한 여자는 그 날 이후로 쭉 쓰레기 버리는 시간에 그저 생선가시 몇 개 혹은 떼어 버리는 기름덩어리 같은 것을 따로 챙겼다가 그 놈에게 주어 왔는데 자신에게 저녁을 챙겨주는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처음과는 달리 먹이를 가지고 도망가지도 않고 집사람 앞에서 경계심을 풀고 먹으면서 아기들이 맛있어 내는 그 특유의 얌얌 소리를 고양이도 내더라고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는 집사람은 신기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이 어린 고양이의 뒤를 슬슬 따라다니는 검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이놈은 집사람이 먹이를 주는 고양이 보다는 많이 큰 놈으로 작은 놈의 먹이를 뺏어먹기 위하여 호시탐탐 뒤를 노리다가 집사람이 먹이를 주고 돌아서면 여지없이 작은놈을 공격하여 먹이를 채어 가지고는 도망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먹이를 빼앗긴 그 어린놈은 예의 그 처량한 울음소리로 집사람을 현혹하여 자신이 먹이를 먹는 시간에는 큰 놈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초를 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집사람이 보초를 서줄 때 큰놈이 접근하면 집사람이 그놈을 쫓아버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방어를 한다고 하였다. 아마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큰놈에게 과시하기 위함인 듯도 하였다. 그리고 여름이 한창인 7월이 되자 그리 처량하게 보였던 그놈은 거의 어른고양이가 되었고 자신이 혼자서 먹이를 구할 수 있음인지 맛있는 먹이만을 골라 먹는다고 하였다. 생선가시도 어느 것이 맛있는지를 안다는 이야기이다. 때가 되면 아직 야옹 소리를 내면서 집사람 앞에 나서기는 하지만 더 이상 처량하지도 않고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사정하지도 않으며 점점 건방져 간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집사람도 이제는 그놈을 일부러 불러서 먹이를 주는 일은 그만 두었다.

 

 

그런데 요새 그 놈이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벌였다. 8월 들어서면서 먹이를 주면 자신이 한 절반쯤 먹고 절반은 꼭 남기고 있어 집사람은 이놈이 이제 배가 불렀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며칠을 지켜보니 남겨 놓은 것은 배가 불러서가 아니고 자신의 먹이를 뺏어먹기 위하여 뒤를 따라다니던 그 큰 검은고양이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검은 고양이와 서로 먹이 쟁탈전을 벌리며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사정까지 하던 놈이 이제는 자신이 먹이를 벌어서는 검은 놈에게 절반을 양보하는 것이다. 즉 검은 고양이를 부양한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둘이 꼭 붙어 다닌다고 하였다. 먹이를 받아먹는 것이 신기하여 처음부터 바라보던 아파트 아주머니들의 관찰에 의하면 검은 놈 (큰놈)은 암놈이고 누런 놈(작은놈)은 수놈인데 언제부터인가 둘이 붙어 다니며 누런 놈이 검은 놈을 벌어 먹이며 검은 놈이 이리 가면 그 곳으로 저리 가면 그 곳으로 오매불망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내놈이 계집 하자는 대로 한다고 아들 길러야 소용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더라고 하였다.

 

 

봄에 어미를 갓 떨러진 듯 처량하게 보여 먹이를 얻어먹던 작은놈은 이제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짝이 필요한 사내로 성장하였고 그 대상이 검은고양이였는 모양이다. 가을에 접어들면 이 둘은 어디에 보금자리를 차리고 또 몇 마리의 새 생명을 잉태할는지는 모르겠으나 내년 봄이 시작되면 아이들 까지 다 데리고 집사람 앞에 야옹하고 다시 나타날는지 모를 일이다. 봄에는 생선을 지금보다 더 많이 먹어야 하나? 사람이나 고양이나 남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첫 번째 의무를 갖는 가족체계는 같은 것인가 보다.

 

2009년 8월 스무사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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