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프라하 여인의 민박 이야기

korman 2010. 6. 14. 19:38

 

 

 

프라하 여인의 민박이야기

 

10살 된 남자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35살의 체코 프라하의 여인, 그러나 현재는 이태리 밀라노에서 생활하는 그녀가 다시 내 집을 찾았다. 내 큰아이가 소속된 회사의 밀라노 본사에서 출장을 왔으니 내 집 보다는 큰아이네 집엘 왔다고 해야 옳겠지만 그녀는 이태리를 떠나면서 공항에서 전화를 하여 저녁을 내 집에서 먹겠다고 큰아이에게 연락하고는 예외 없이 전에 즐겼던 잡채와 불고기를 주문하였다.

 

그녀는 지난 3년간 내 집을 2번 찾았다. 처음 왔을 때 집사람은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고민 하다 불고기와 잡채를 기본으로 한 밥상을 차려 주었었는데 그 때 그 맛에 매료된 그녀는 두 번째 오기 전에 이메일로 그것이 먹고 싶다고 선주문을 하더니만 이제는 아예 한국에 출장 오는 주된 목적 중에 하나가 불고기와 잡채를 먹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당연히 호텔을 예약하고 와야 했음에도 그녀는 큰아이네 집에 빈방이 있다는 말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그 방을 일주일간 예약하였다. 내 집에도 큰아이가 쓰던 빈방이 있어 내 집으로 오라 하였더니 집사람이 쌍수를 흔들어 대었다. 자신은 영어도 못 알아듣는데 어찌 하겠냐고. 그래도 아들과 며느리는 의사소통이 되니 그리 보내라 한다. 아들의 손님이고 업무적으로도 큰아이와 같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 하였지만 이번에는 며늘아이가 고민이 많아졌다. 일주일간 식사를 어찌 하냐는 것이었다. 집사람은 아침은 빵과 쥬스 먹으면 되고 점심은 거래처 다니다 사 먹을 거고 저녁 며칠 할 건데 시어미가 몇 끼 해 주면 일주일 금방 가니 염려하지 말라고 새아기를 위로하였다.

 

저녁 무렵 큰아이의 집에 도착한 그녀는 보따리를 풀자마자 그녀가 밀라노에서 산 것과 그녀의 어머니가 프라하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종 몇 개를 흔들며 내 집으로 왔다. 집사람에게나 나에게나 문간에서 나누는 그 볼을 비비며 쪽 소리 내는 서양식 인사는 몇 번의 경험이 있음에도 늘 어색하기만 하다. 한쪽 볼도 아니고 두 쪽씩이나. 그저 그냥 자연스럽게 서서 볼을 가져다 대면 될 텐데 쪽 소리 내는 건 고사하고 엉덩이는 가기 싫은 곳에 강제로 끌려가는 아이들의 그것마냥 뒤로 쭉 빠진다. 내가 생각해도 그 모양이 참 우습다. 출장도 많이 다녔건만 그런 거에는 왜 그리 적응이 안 되는지.

 

잡채와 불고기를 즐기던 그녀가 한마디 한다. 냄새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소주에 취하니 자신은 지금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라고. 그러나 지난 두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상에 올려놓은 김에는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김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미국인 한 사람이 언젠가 나에게 묻기를 한국 사람들은 왜 먹지(Carbon Paper)를 즐겨 먹냐고 물어와 한참을 웃은 기억이 나지만 내가 만났던 서양인들은, 비록 한국 음식을 잘 먹는 사람들이라도, 대체로 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마 서양인들은 바다 식물은 즐겨먹는 게 없어서 그런 모양이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낸 그녀는 그 다음날 점심은 이태리식으로 자기가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며늘아이 설거지거리나 만들지 않겠냐며 큰아이네 집으로 건너간 우리는 그녀가 이태리에서 운반하여 싱크대에 올린 재료들을 보고는 큰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각종 파스타류, 병에든 소스, 와인, 이태리 소주 (* 40도의 무색으로 약간 단맛이 나며 민트향이 첨가된 이태리 술. 보통 출장 다니는 한국 사람들은 이것을 이태리 소주라 부른다.) 그리고 그 외에 무엇인지도 모를 재료들이 널려있었다. 한 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이태리식 점심이 와인, 우리 소주, 이태리 소주를 곁들여 시작되고 시간은 어느덧 저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틀 동안 큰아이와 지방의 공장을 둘러보고 온 그녀가 무언가를 또 만들겠다고 집 근처 마트에 가더니만 동행한 큰아이에게서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집에서 구운 김을 좀 준비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마트에 쌓여있는 김을 보고 놀란 그녀가 샘플로 놔둔 생김과 구운 것을 한 장씩 집어 맛을 보더니 몇 장을 연거푸 먹으며 이게 집에 있던 그것과 같은 것이냐 묻기에 집에 있는 건 더 좋은 것이고 엄마가 구운 것은 이것보다 더 맛이 있다고 하였더니 그럼 엄마에게 이야기 좀 해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에 그녀는 집사람이 새로 구운 김과 마주하게 되었다.

 

소주 한잔에 먹기 좋게 잘린 김 몇 장씩. 참 열심히 잘도 먹어댔다. 어느새 소주 세병이 비워지고 생김 20장을 구웠다는데 구운 김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도 너무 많이 먹었음이 미안하던지 연신 몇 장만 더... 하더니만 결국 통을 다 비우고 나서는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니냐며 멋쩍게 웃었다. 소주도 많이 마시고 김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 혹시 밤새 무슨 탈이나 없었을까 걱정되었는데 아침의 그녀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쌩쌩하였다.

 

그리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가겠다며 가방을 싸기 전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배를 가져갈 수 있냐고. 지난번에 왔을 때도 그리 이야기 하여 이태리 입국시에 과일은 세관 통과가 안 될 거라 하였더니 포기하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꼭 가져가야겠다고 하였다. 그 감미로운 한국의 배와 고소한 김 맛을 아들과 어머니에게 느끼게 하여 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결국 그녀는 나와 집사람을 앞세워 마트에 가더니만 큰 배 3개가 들어있는 스티로폼 팩 한 줄과 구운 김 전장이 들어있는 포장 10개를 사서는 가방 제일 밑바닥에 집어넣었다. 작은 플라스틱 병에 든 소주 5병과 함께.

 

집에 도착한 그녀가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왔다. 소주와 김과 배를 먹으며 식구들에게 한국과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노라고. 그녀가 돌아가고 일주일 후 본사에 출장 가는 큰아이에게 그녀는 소주와 배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난 내 경험을 살려 크고 단단한 4각 플라스틱 통에 종이팩 소주를 납작하게 만들어 36개를 실려 보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나와 집사람을 우리말로 아버지 어머니라 부른다.

 

2010년 6월 열 사흗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