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어느 어린 해병의 귀환

korman 2010. 6. 6. 18:21

 

 

 

 

어느 어린 해병의 귀환

 

묵념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된 현충일 특집,

"챈스 일병의 귀환 (원명 : Taking Chance)"이라는

아주 조용한 영화 한편을 TV에서 봤다.

현충일의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에 충분한 영화,

주인공들이 겉으로 흘리는 눈물은 없었으나

보는 이의 가슴에는 애절한 눈물이

영화를 보는 내내 쌓이게 하는 뭉클한 영화였다.

 

영화는 임무를 수행한 현역 해병 중령의 일기에 기초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는 안내 자막과

도입부에 나오는 영화명에서

숱한 전투를 거치며 많은 전공을 세우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웅의 일대기를

격렬한 전투장면과 더불어 담은 것이라 예축하였으나

기대와는 달리 막상 영화는

한 현역 해병 중령의 단란한 가정과

성조기에 덮여있는 전사자들의 유해를 옮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19살의 해병대원, 챈스 일병은

이라크에서 임무 수행 중 2004년 전사하였다.

가족들은 그가 고향에 와 묻히기를 희망하였고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몰아내기 위한 전투에 참전하여

수많은 훈장을 수여받은,

그러나 지금은 미 본토에서 행정장교로 일하고 있는 현역 중령이

챈스 일병을 그의 부모 곁으로 옮기는 일에 자원한다.

그는 늘 전사자 명부를 들여다보며

모두에게 그러하지만 특히 자신이 아는 사람이

그 명부에 오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고향이 같은 어린 해병, 챈스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자신과 같은 고위 장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임무지만

그가 부모의 곁으로 가는 동안

자신이 그와 동행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챈스가 소도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은

비행기와 자동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가야하는

먼 길이었으며 또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챈스가 그 길을 가는 동안 영화는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어린 해병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 죽음에 최고의 예우를 갖추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질 때 마다 민간인들도 도열하여

모자를 벗고 가슴에 손을 얹어 경의를 표하며

지나는 자동차들도 국기에 덥혀있는 관을 보는 순간

모든 라이트를 켜 그 희생에 예우를 한다.

 

챈스와 동행한 장교는 그 마을 해외참전자 모임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던 노인을 만나 그의 심정을 토로한다.

챈스가 있던 전장에는 자신이 있었어야 했다고

그러나 자신은 지금 행정직에 남아 있으며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편히 지내는 것은

진정한 해병이 아니라고.

그 말에 대답하는 노인의 음성이 높아진다.

가족을 돌보며 지내는 일이

왜 진정한 해병이 아니라 생각하나

"당신 같은 사람이 미래를 위한 증인이 되어 주어야 한다."

노인의 이 말 한마디가

현충일의 어떤 명연설보다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여 공연히 물 한 컵을 들이켰다.

 

기억하자 1950년 6월 25일

어느덧 60년이 흘렀다.

이제 그 잔인하였던 한국 전쟁을

후손에게 전해 줄 우리의 증인은 얼마나 많이 남아 있을까.

나의 세월도 그와 동수가 흘렀지만

나도 모른다 그해 6월에 시작된 3년의 세월을.

커피 한잔을 들고 응시하는 창밖 아파트의 오후

천안함과 우리 46명의 젊은이들이

그리 갔음에도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 걸린

현충일의 태극기 수는 초라하다 못해

서글픔을 밀고온다.

작녀엔 3개 올해는 하나.

 

2010년 현충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