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중앙박물관 소장 성거산 천흥사 종 (天興寺銘 靑銅 梵鍾) (국보 제280호)

korman 2013. 1. 4. 20:39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천흥사 종

통일신라 양식 충실히 계승한 고려 범종 ‘백미’
국내 고려종 중 가장 커
한국 범종 연구에 ‘중요’ 
역동감 넘친 용두 ‘눈길’
폐사 후 이곳저곳 ‘전전’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천흥사 종.

한국 범종의 기본 형식인 통일신라의 범종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시대의 범종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새로운 고려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그 형태와 의장면에서 다양하게 변모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

종의 몸체는 그 외형이 직선화되거나 아래 부분인 종구(鐘口) 쪽으로 가면서 점차 밖으로 벌어지는 경향을 보이며 천판의 외연인 상대 위로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라는 돌출 장식이 새로이 첨가되기 시작한다. 이 입상화문대는 고려 12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13세기 이후에 와서는 점차 연화문이나 여의두문(如意頭文)을 장식한 꽃잎 형태로 돌출되어 상대와는 별도의 완전한 독립 문양대로 자리 잡게 됨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입상화문대는 고려 범종의 제작시기를 구분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양식적 특징이 되고 있다.

 

용뉴는 통일신라 종에 비해 목이 가늘면서도 길어지고 점차 S자형의 굴곡을 이루면서 매우 복잡하게 표현된다. 특히 용의 머리가 종의 천판에서 떨어져 앞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에 따라 용의 입안에 표현되던 여의주가 발 위나 음통 위에 장식되기도 하는 등 상당히 장식화 되는 점을 볼 수 있다.

 

지난 호까지 소개한 10세기 범종이 이러한 새로운 고려 범종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통화28년명 천흥사(天興寺) 범종은 외형과 문양면에서 오히려 통일신라 종을 충실히 계승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용뉴의 표현에서 목이 앞으로 들려있거나 세장해진 음통을 제외하고 높이 솟은 연뢰와 당좌의 모습, 특히 앞 시기에 보였던 비행비천상(飛行飛天像)이 아닌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표현된 것은 통일신라 종의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종은 명문이 없었다면 통일신라 후기 종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전통성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 종의 종신에 표현된 위패형(位牌形)의 명문구는 천복(天福) 4년명(904) 우사진구(右佐神宮) 종의 종신에 표현된 방형의 명문곽(銘文廓)을 고려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번안한 요소로써 이후 제작된 고려 시대 범종의 하나의 모본으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이 범종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9세기 중엽의 운천동 출토 통일신라 종 이후 약 2세기 정도의 공백기 이후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랜 고려 종으로 그 가치가 높다.

 

용뉴와 음통.

우선 역동감 넘치게 조각된 용두는 그 입을 천판 위에서 떼어 앞을 바라보고 있는 점이 통일신라 종과 구별된다. 굵고 긴 음통에는 대나무 마디 형태로 구획하여 당초문과 보상화문을 시문하였고 천판 중앙부의 용뉴 주위에는 주물자국이 도드라져 있다. 이 역시 당시 종신과 용뉴 부분을 별도로 조각하여 결합해 주조한 점을 잘 보여주는 요소이다.

 

그리고 이 천판의 외연부를 돌아가며 복엽의 연판문을 촘촘히 시문하여 견대(肩帶)처럼 두른 것은 이미 성덕대왕 신종에서 보이던 요소이지만 보다 도식화된 점을 느낄 수 있다. 상, 하대는 동일한 문양으로 시문하였는데, 그 외연은 연주문 띠로 들렀고 내부에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문양면에서는 오히려 통일신라 9~10세기 종에 비해 훨씬 정교한 점이 느껴진다.

 

상대 아래 붙은 연곽대에도 동일한 보상당초문이 장식되었고 연곽 안으로는 연화좌 위에 높게 돌기된 9개씩의 연꽃봉우리가 배치되었다. 그러나 일부의 연뢰가 부러져 있거나 그 상단이 심하게 마모되었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 해당되는 종신 하부에는 구름 위에서 천의를 날리며 악기를 연주하는 두 구의 주악상이 표현되었지만 이 부분도 마모가 심하여 정확히 어떤 악기를 표현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다만 두 손을 모아 위로 솟은 악기를 부는 모습과 다른 쪽 주악상은 악기를 손으로 타는 모습처럼 보이는 점에서 상원사종(725)에 보이는 공후()와 생황(笙簧)을 표현한 것이라 짐작된다. 이런 주악상의 도상은 통일신라 종 가운데서도 고식의 예를 모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원형의 당좌 역시 통일신라 전성기 종의 당좌를 모방한 듯 중앙의 원형 당좌에는 연과가 돌출되고 그 주위를 볼륨감 있는 8엽의 연판으로 둘렀고 이 주위를 연주문으로 감싼 뒤 외구에 유려한 연당초문을 시문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고적 경향과 달리 한쪽 비천과 당좌 사이의 공간을 택해 위패형(位牌形)으로 만든 명문곽을 별도로 부조시켜 명문을 새긴 점은 새로운 고려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명문은 ‘성거산천흥사, 종명, 통화이십팔년경술이월일(聖居山天興寺, 鍾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 이란 비교적 간략한 내용을 양각으로 새겼다.

 

비천.

이 종이 있던 성거산 천흥사는 지금의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4길에 있던 절로서 현재도 보물 제99호 천흥사지 당간지주(天興寺址 幢竿支柱)와 보물 제354호 오층석탑(天興寺址 五層石塔)이 남아있다. 성거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16 직산현(稷山縣)과 목천현(木川縣) 산천조(山川條)에 그 지명이 보이는데, 특히 직산현조에는 ‘성거산(聖居山)이 고을 동쪽 21리에 있으며 고려 태조(太祖)가 일찍이 고을 서쪽 수헐원(愁歇院)에 거동했다가 동쪽을 바라보니 산위에 오색 구름이 있는지라, 이는 신(神)이 있는 것이라 하고 제사 지내고 드디어 성거산(聖居山)이라 일컫었다. 우리 태조(太祖)와 세종(世宗)이 온천에 갈 적에 역시 여기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고려 태조와 연관이 있는 유서 깊은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거산 불우조(佛宇條)에는 천흥사의 기록이 보이지 않아 조선 전기에 이미 폐사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명문에 보이는 통화(統和)는 요나라의 연호로서 그 28년은 고려 1010년인 현종(顯宗) 원년(元年)에 해당된다. 따라서 천흥사의 창건은 922년으로 전해지지만 종에 기록된 명문을 통해 1010년경 천흥사에 커다란 불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파악되며 실질적인 창건의 시기가 이 때쯤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 천흥사종은 절이 폐사된 뒤 한 동안 경기도 광주(廣州)의 관아에 옮겨졌다가 일제강점기 때 이왕가(李王家) 박물관으로 그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해방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범종 가운데 가장 큰 크기와 연대가 가장 앞서는 종인 동시에 통일신라 범종 양식을 아직까지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고려적인 요소를 보여주는 한국 범종 연구에 매우 중요한 편년 자료이다, 다만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비천상과 연뢰 부분이 많은 마모가 있어 아쉬움을 주지만 그 가치 면에서 국보로 지정받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당좌.

여음(餘音)

태평(太平)년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요의 연호가 오랜 공백기를 지나 처음 종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천흥사 종의 명문이다. 고려 현종(顯宗) 년간의 실질적인 원년인 1010년에 앞 시기의 고려 종과 달리 통일신라 종을 다시 계승했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복고적 경향을 추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종보다 불과 40여 년 늦게 만들어진 1058년의 청녕(淸寧) 4년명종(1058)에 갑자기 불, 보살상과 당좌가 4개로 늘어나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면서 이제 고려 범종은 본격적인 고려 범종으로 정착을 이루게 된다.

 

[불교신문3319호/2017년8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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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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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한자 聖居山天興寺銘銅鍾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한상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9월 10일연표보기 -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국보 제280호로 지정

현 소장처 국립 중앙 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원소재지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지지도보기

성격 동종

재질 청동

크기(높이, 길이, 너비) 133㎝[높이]|96㎝[아래 지름]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 중앙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제280호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지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동종.

 

[개설]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聖居山 天興寺銘 銅鍾)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시대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이다. 종의 높이가 133㎝, 종 입구 지름은 96㎝로서,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 다음으로 크다. 제작 기법이나 양식이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종이 본래 고려 태조 대에 세워진 천흥사에 동종을 만들어 보관한 이유는 아마도 성거산과 태조의 신성성을 이어 받아 고려의 발전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천흥사가 폐사되고 난 후 여러 사찰로 옮겨져 사용되고 있다가 인조 때 남한산성이 축성되자 산성의 시각을 알리기 위해 성 내에 종각(鐘閣)을 마련하고 옮겨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은 1969년 7월 이전에는 옛 덕수궁 미술관에 소장되었으나, 2013년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은 고려 범종 가운데 신라 범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계승하였으나 부분적으로는 고려 종의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동종의 모습은 위에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가 있고 그 아래로 몸체가 있다.

 

종 위에는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편평한 부분인 천판 가장자리에는 연꽃무늬를 돌렸다. 바로 아래 4곳에 사각형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도드라진 9개의 연꽃을 새겼다. 그런데 현재는 연꽃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연화좌와 유두가 9개인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구천(九天)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곽 아래에는 종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원형(圓形)으로 2곳에 두었다. 그 테두리는 구슬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같은 당좌 형식은 신라 범종의 당좌에서 보이는 형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또한 당좌 사이에 2위의 비천상(飛天像)을 둔 것은 신라적 양식으로 볼 수 있으나, 비천상의 위치를 서로 대각선상에 배치한 것은 신라 범종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종신(鐘身)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모란문(牡丹紋)과 인동문(忍冬紋)으로 안을 채워 넣었다.

 

[특징]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은 유곽 바로 아래에 위패형(位牌形)을 양각하여 구획을 설치하고, 그 속에 ‘성거산 천흥사 종명 통화 28년 경술 2월 일(聖居山天興寺 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 日)’이란 명문이 두 줄로 양각되어 있다. 명문의 내용을 통해서 이 동종이 1010년(고려 현종 원년)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통화’는 요(遼)의 연호이며 성거산은 천안시 성거읍의 성거산으로 고려 태조와 인연이 깊은 천흥사의 동종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의 동종의 제작 기법이나 양식을 연구하는 데 기초적인 자료임과 동시에 천흥사의 연대를 밝혀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문화 유적 해설』 (천안군 문화원, 1992)

『천안군의 문화 유적』 (성환 문화원, 1992)

『천흥사지 학술 조사 보고서』 (성환 문화원, 1994)

『천안의 종교 유적』 (백제 문화 개발 연구원, 1996)

『천안의 사찰』 (성환 문화원, 1997)

엄기표, 『한국의 당간과 당간 지주』(학연 문화사, 2004)

『충청남도 문화재 대관』 1(충청남도·충청남도 역사 문화 연구원, 2009)

『한국의 사찰』 (대한 불교 진흥원, 2009)

이호영, 「성거산 천흥사지」(『역사학』, 1984)

김인한·백종호, 「천안 천흥사지 지표 조사 보고」(『박물관지』4, 충청 전문대 박물관, 1995)

박찬양, 「고려 초 천안 지역 불교 사원의 조형」(공주대 석사 학위 논문, 2010)

 

출처 : 디지털천안문화대전 2017년 7월 3일 현재

http://cheonan.grandculture.net/Contents/Index?local=che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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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산 천흥사 동종

성거산 천흥사 동종

 

 

• 코드: cp0501b00801 

 

• 명칭 : 성거산천흥사동종 

 

• 지정 : 국보 제 280호 

 

• 조성연대 : 고려 현종 원년(1010) 

 

• 제원 : 전체높이 174.2㎝, 종신 133㎝, 입지름 96.4㎝ 

 

• 소재지 : 국립중앙박물관 

 

•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 설명 

 

국내에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상원사동종과 성덕대왕신종 다음으로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그 제작기법이나 모든 양식이 고려범종을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범종으로, 신라 범종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양식의 출현을 보여주어 주목된다. 재질은 청동이다. 

 

용뉴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 형태가 신라 종과 닮았으나 용의 머리가 쳐들려진 점과 여의주를 물고 있는 점은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형식이다. 

 

음통 역시 신라범종의 형식과 유사하게 대나무 모양의 5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최상단의 제1단과 중간부분의 제4단, 그리고 제2단과 제5단 등은 각각 동일한 문양대로 새겼으며 중앙의 3단만은 다른 문양으로 처리한 것이 주목되며 이 문양은 범종 상하 문양과 동일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종의 맨 위인 천판주연(天板周緣)에는 신라 종에서 볼 수 있는 연판대(蓮瓣帶)를 돌렸다.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연주문대(連珠文帶) 속에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이 새겨져 있다. 

 

위에 두른 띠 바로 아래로는 네 곳에 보상화문대로 장식한 사각형의 연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도드라진 아홉 개의 연꽃을 새겼다. 연곽 아래에는 당좌를 원형으로 2곳에 두었는데, 원형의 자방을 갖추고 그 주연에 8판의 연판으로 돌리고 연판주변에는 작은 연화문대로 장식한 후 다시 그 외곽에 인동당초문대를 돌렸으며 가장 외곽선에는 굵은 연주문대(連珠文帶)로 처리한 점이 특색이다. 

 

이 같은 당좌형식은 신라범종들의 당좌에서 보이는 형식을 이어받은 것 같다. 당좌 사이에는 2구(軀)의 비천상을 두었는데, 1구씩 대각선상에 배치하여 신라범종과는 다른 배치양식을 하고 있다. 두 개의 당좌(撞座)와 비천상(飛天像)을 번갈아 배치하여 몸체에 넓은 공간을 남기는 것은 신라 이래의 특징이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위패모양을 만들어 명문을 새겨 넣었는데, 그 속에 「성거천흥사 종각 통화이십팔년경술이월일(聖居山天興寺 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 」이란 글을 새겨,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주조되고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종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위패모양의 장식은 고려시대 범종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이어서 주목된다. 통화(統和)는 요(遼)의 연호이며 성거산은 충남 천안군 성거면 성거산으로 고려태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천흥사 임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거종(巨鐘)의 하나로 1969년 7월 이전에는 옛 덕수궁미술관의 소장품이었던 범종이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년 12월 5일 현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21&content_id=cp050100210001&search_left_men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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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소장 (천흥사가 새겨진) 성거산 천흥사 종 (天興寺銘 靑銅 梵鍾)

(국보 제280호)

이명칭 : 천흥사」명천흥사동종

 

 

 

사진출처 : 이뮤지움 2016년 12월 23일 현재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0500244500000#none

 

 

    천흥사 종

    • 한자 天興寺銘 靑銅 梵鍾
    • 이명칭 : 천흥사」명천흥사동종
    • 국적/시대한국(韓國)-고려(高麗)
    • 재질금속(金屬)-청동제(靑銅製)
    • 크기전체 높이 174.2cm, 입지름 96.4cm
    • 소장기관국립중앙박물관
    • 지정구분국보 280호
    • 유물번호덕수(德壽)-002445-000

고려시대의 범종을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신라의 범종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양식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용뉴는 종을 매달기 위해 종의 맨 위에 만든 고리이고, 그 옆의 음통은 음향효과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범종의 용뉴를 닮았으나 용두가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들어올리고 있는 모양은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형식이다.
음통 표면 역시 신라 종처럼 5단으로 나누어 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종 윗단과 아랫단에는 연속된 구슬무늬띠[連珠文帶]를 두르고 그 안에 보상당초무늬[寶相唐草文]를 장식하였다. 종의 몸체에는 두 개의 당좌(撞座)와 비천상(飛天像)을 번갈아 배치하였다. 이렇게 당좌와 비천을 장식하고, 몸체에 넓은 공간을 남기는 것은 신라 이후의 특징이다.
종의 몸체에 위패(位牌)모양을 만들어 새겨진 글귀를 통해 1010년(현종 원년)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및 원본 : 국립중앙박물관 홍페이지 2016년 12월 23일 현재 

http://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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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거산천흥사동종 聖居山天興寺銅鐘
 
지정번호
:
국보 제280호
 
지정연월일
:
1993년 9월 10일
 
시 대
:
고려시대, 현종 1년(1010)
  규 모
: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
  재 료
:
청동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국립중앙박물관
 
성거산천흥사동종은 고려시대의 동종으로,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에 있던 천흥사에 봉안되었다가 언제인가 원위치를 떠났다. 천흥사는 고려 태조 4년(921)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시대에 폐사되어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이 동종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1969년 7월 이전에는 옛 덕수궁미술관의 소장품이었다.
이 동종은 고려 범종 가운데 신라 범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계승하였으나 부분적으로는 고려 종의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동종의 모습은 위에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가 있고 그 아래로 몸체가 있다.
용뉴는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신라 범종의 용보다 고개를 더욱 위로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용의 등위에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音筒)이 있는데, 역시 신라 범종의 음통 형식과 유사하게 5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각 꽃무늬가 장식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최상단의 제1단과 중간 부분의 제4단, 그리고 제2단과 제5단 등은 각각 동일한 문양대로 장식하였으나 중앙의 3단만은 다른 문양으로 처리하여 변화를 준 것이 주목된다. 용뉴의 가장자리인 천판(天板)에는 연꽃무늬를 돌렸는데 역시 신라 범종에서 보이는 모습과 비슷하다.
종신(鐘身)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모란문(牧丹紋)과 인동문(忍冬紋)으로 안을 채워 넣었다. 상대(上帶) 바로 아래의 네 곳에는 사각형 유곽(乳廓)을 만들었는데, 각각의 유곽 안에는 연화좌(蓮華座)를 양각하고 그 위에 9개의 유두(乳頭)를 별도로 만들어 붙여 놓았다. 그런데 현재는 유두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연화좌와 유두가 9개인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구천(九天)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곽 아래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원형(圓形)으로 두 곳에 두었고, 그 테두리는 구슬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같은 당좌 형식은 신라 범종의 당좌에서 보이는 형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또한 당좌 사이에 2위의 비천상(飛天像)을 둔 것은 신라적 양식으로 볼 수 있으나, 비천상의 위치를 서로 대각선상에 배치한 것은 신라 범종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종신에 여백을 많이 둔 것은 중국·일본 동종과 다른 한국 종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위패형(位牌形)을 양각하여 구획을 설치하고 그 속에 두 줄의 명문을 양각으로 다음과 같이 새겨 넣었다.
'聖居山天興寺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
이것은 이 범종을 봉안한 사찰과 만든 시기를 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위패형 안에 명문을 양각하는 수법은 통일신라시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이다. 명문 가운데 '통화(統和)'는 중국 요(遼)의 연호로서, 고려 현종 원년(1010)에 해당한다. 그리고 성거산은 충남 천안군 성거면에 있는 산이며, 천흥사는 고려 태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범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이 보인다. 이 같은 제작기법이나 양식으로 볼 때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서울시문화재 사이트
원문 : http://sca.visitseoul.net/korean/crafts/i_metalwork03007.htm
100305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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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280호
천흥사 동종
고려 1010년
높이 133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 비천   
 
전체적으로는 신라종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고려 초기의 대표적 거종으로 유곽 바로 아래 위패에 있는 명문(성거산천흥사 종각 통화이십팔년경술이월일(聖居山天興寺 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이 있어 고려현종 원년(元年)(1010)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고, 통화(統和)는 요(遼)의 연호(年號)이며 성거산(聖居山)은 충남 천안군 성거면 성거산으로 고려태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천흥사(天興寺)임을 알 수 있다.
  각 부분을 살펴보면 용뉴가 천판을 물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여의주를 물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천판의 둘레에 연꽃잎의 문양을 조식하였다.  음통의 단수가 5단이나 1단과 4단·2단과 5단은 각각 같은 문양이 장식되어 있으나 중앙 3단은 문양이 다르다.  상·하대는 연주문대 속에 보상당초문을, 유곽은 단순한 보상화문을 장식하였으며 유두는 연꽃 위에 약간 돌출되게 표현하였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 1구씩 구름 위에 합장하고 승천하는 비천상과 연꽃 모양의 당좌를 교대로 배치하였다.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크기는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이며,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신라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 다음으로 큰 종으로 제작기법이나 양식이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이라 할 수 있다.         
 ◀ 위패와 명문 
 ▲ 용뉴
                                                               
출처 : 문화상품.com
         http://culturekr.com/jong/image/j12.htm
080628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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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흥사동종

 

1. 소재지   국립중앙박물관(원소재지. 천안시 성거산 천흥사)

2. 형식과 규격  높이 128.3㎝, 입지름 95㎝.  일반형동종

3. 연  대   고려 현종 1년(1010)

4. 세부구조

 

종정부(鐘頂部)

용뉴(龍?)는 신라범종과는 달리 용두가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용통(甬筒)의 문양은 신라범종과 마찬가지로 5단이지만 화려한 문양이 아니고 형식적인 맛이 난다. 5단 중 4단은 문양이 같고 중앙의 1단은 종의 상?하대와 문양이 같다. 천판(天板)에는 연꽃잎띠(연화대:蓮花帶)를 문양으로 둘렀다. 

 

종신부(鐘身部)

문양대(文樣帶)는 상대와 하대는 이음구슬무늬 사이에 보상당초문으로 매웠고, 유곽대는 보상화문(寶相花文)을 조각하였다. 유곽대 안에는 원형의 8잎연화좌(八葉蓮花座) 위에 그리 크지 않은 유두가 있다.

종신(鐘身)에는 2개의 당좌(撞座)와 2개의 비천상(飛天像)이 있다. 당좌의 중심에는 씨방(자방:子房)을 갖추고 그 바깥에 8엽연잎, 작은 이음구슬무늬대, 인동당초문대(忍冬唐草文帶), 이음구슬무늬대 순으로 조각되어있다. 당좌 사이에 배치된 2구(軀)의 구름 위에 꿇어앉아 합장하는 비천공양상(飛天供養像)은 ‘2구1조’였던 신라범종과 달리 1구씩 배치하였다. 한편 유곽 밑에는 위패형(位牌形)의 명문(銘文)이 있는데, 이러한 명문은 고려시대 나타난 새로운 양식이다. 

 

5. 종합이해

전체적으로 신라범종의 양식을 답습한 고려 전기의 거종(巨鐘)이지만, 고개를 들고 여의주를 물고있는 용뉴(龍紐), 1구만 표현된 비천상, 위패형 명문 등에서 고려 범종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유곽 밑에 있는 위패형 명문(銘文)에는 『성거산천흥사종명 통화28년 경술 이월 일(聖居山天興寺鐘銘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 日)』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고려 현종 1년(1010)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한국역사문화기행회

 | 

글쓴이 : 박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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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거산천흥사동종 聖居山天興寺銅鐘

 

전체모습 

 

용뉴부분

▲용뉴부분

 

상대및유곽대

▲상대 및 유곽대

 

비천상명문

 ▲비천상

◀명문                         

 

 

종 목

                국보  제280호        
명 칭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聖居山天興寺銘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93.09.10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국립중앙박물관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크기는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이다.

종 위에는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신라 종의 용보다 고개를 쳐들어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소리 울림을 도와 준다는 용통은 대나무 모양이며, 편평한 부분인 천판 가장자리에는 연꽃무늬를 돌렸다. 몸체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꽃과 덩굴로 안을 채워 넣었다.

위에 두른 띠 바로 아래로는 4곳에 사각형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도드라진 9개의 연꽃을 새겼다. 유곽 아래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원형으로 2곳에 두 었 고, 구슬로 테두리하고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당좌 사이에는 2구의 비천상을 두었는데, 1구씩 대각선상에 배치하여 신라종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위패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속에 글을 새겨,고려 현종 원년(1010)에 주조되고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종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신라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 다음으로 큰 종으로 제작기법이나 양식이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이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범종을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신라의 범종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양식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용뉴는 종을 매달기 위해 종의 맨 위에 만든 고리이고, 그 옆의 음통은 음향효과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범종의 용뉴를 닮았으나 용두가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들어올리고 있는 모양은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형식이다. 음통 표면 역시 신라 종처럼 5단으로 나누어 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종 윗단과 아랫단에는 연속된 구슬무늬띠[連珠文帶]를 두르고 그 안에 보상당초무늬[寶相唐草文]를 장식하였다. 종의 몸체에는 두 개의 당좌(撞座)와 비천상(飛天像)을 번갈아 배치하였다. 이렇게 당좌와 비천을 장식하고, 몸체에 넓은 공간을 남기는 것은 신라 이후의 특징이다.

종의 몸체에 위패(位牌)모양을 만들어 새겨진 글귀를 통해 1010년(현종 원년)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131229현재 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1,02800000,11

 

성거산천흥사동종은 고려시대의 동종으로,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에 있던 천흥사에 봉안되었다가 언제인가 원위치를 떠났다. 천흥사는 고려 태조 4년(921)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시대에 폐사되어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이 동종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1969년 7월 이전에는 옛 덕수궁미술관의 소장품이었다.
이 동종은 고려 범종 가운데 신라 범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계승하였으나 부분적으로는 고려 종의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동종의 모습은 위에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가 있고 그 아래로 몸체가 있다.
용뉴는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신라 범종의 용보다 고개를 더욱 위로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용의 등위에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音筒)이 있는데, 역시 신라 범종의 음통 형식과 유사하게 5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각 꽃무늬가 장식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최상단의 제1단과 중간 부분의 제4단, 그리고 제2단과 제5단 등은 각각 동일한 문양대로 장식하였으나 중앙의 3단만은 다른 문양으로 처리하여 변화를 준 것이 주목된다. 용뉴의 가장자리인 천판(天板)에는 연꽃무늬를 돌렸는데 역시 신라 범종에서 보이는 모습과 비슷하다.
종신(鐘身)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모란문(牧丹紋)과 인동문(忍冬紋)으로 안을 채워 넣었다. 상대(上帶) 바로 아래의 네 곳에는 사각형 유곽(乳廓)을 만들었는데, 각각의 유곽 안에는 연화좌(蓮華座)를 양각하고 그 위에 9개의 유두(乳頭)를 별도로 만들어 붙여 놓았다. 그런데 현재는 유두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연화좌와 유두가 9개인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구천(九天)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곽 아래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원형(圓形)으로 두 곳에 두었고, 그 테두리는 구슬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같은 당좌 형식은 신라 범종의 당좌에서 보이는 형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또한 당좌 사이에 2위의 비천상(飛天像)을 둔 것은 신라적 양식으로 볼 수 있으나, 비천상의 위치를 서로 대각선상에 배치한 것은 신라 범종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종신에 여백을 많이 둔 것은 중국·일본 동종과 다른 한국 종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위패형(位牌形)을 양각하여 구획을 설치하고 그 속에 두 줄의 명문을 양각으로 다음과 같이 새겨 넣었다.
'聖居山天興寺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
이것은 이 범종을 봉안한 사찰과 만든 시기를 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위패형 안에 명문을 양각하는 수법은 통일신라시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이다. 명문 가운데 '통화(統和)'는 중국 요(遼)의 연호로서, 고려 현종 원년(1010)에 해당한다. 그리고 성거산은 충남 천안군 성거면에 있는 산이며, 천흥사는 고려 태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범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이 보인다. 이 같은 제작기법이나 양식으로 볼 때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천흥사 동종 ; 국보 280 호 / 충남,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터 출토.
* 천안박물관이 개관하며 이지방 출토 중요 국보인 천흥사 동종이 복제품으로 귀향하였다.

 

천흥사 동종 ; 국보 280 호 / 충남,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터 출토.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크기는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이다.  종 위에는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신라 종의 용보다 고개를 쳐 들어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소리 울림을 도와 준다는 용통은 대나무 모양이며, 편평한 부분인 천판 가장자리에는 연꽃무늬를 돌렸다. 몸체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꽃과 덩굴로 안을 채워 넣었다.  위에 두른 띠 바로 아래로는 4곳에 사각형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도드라진 9개의 연꽃을 새겼다. 유곽 아래에는 종치는 부분인 당좌를 원형으로 2곳에 두었고, 구슬로 테두리하고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당좌 사이에는 2구의 비천상을 두었는데, 1구씩 대각선상에 배치하여 신라종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위패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속에 글을 새겨,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주조되고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종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신라 상원사 동종,성덕대왕 신종 다음으로 큰 종으로 제작기법이나 양식이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전체보기
출처 : 천안 문화재 지킴이

http://cafe.cha.go.kr/brd/viewClubBrdArt.vw?artNo=10561&clubId=00624j&brdCatNo=2780

061025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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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종.
 
지정번호   국보 제280호
지정연도   1993년 9월 10일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소재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시대   고려 전기
크기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
종류  

 

 

1993년 9월 10일 국보 제280호로 지정되었다.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기법이나 양식에서 고려 범종을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국내에 몇 안되는 거종()의 하나이다. 용뉴(鈕) 부분의 형태는

신라 범종의 용뉴를 닮았으나 용두가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들어올리고 있는 형상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양식적 특징은 종견()의 문양대()에

있는 네모꼴의 유곽() 밑에 위패() 형식의 명문()을 넣은 위치를 설정한 점이다.

이는 고려시대 종의 시원적()인 형식으로 꼽을 만하다. 몸체는 신라 범종과 유사하게 5단으로 구분되어 4개의 유곽과 2개의 당좌() 등을

갖추고 있다. 1단과 4단, 2단과 5단은 각각 동일한 문양이고 중앙의 3단만 범종 상·하대의

문양과 동일하게 장식한 것이 주목된다.

즉, 상대와 하대는 연주무늬띠[] 속에 보상당초무늬[]로 주무늬를

이루어 중앙의 3단이 이 무늬를 따랐고, 유곽은 단순한 보상화무늬띠[]로 장식하였다.

또 2개의 당좌와 교대로 배치한 2구의 비천상()은 신라 범종에서 보이는 비천상 배치와는

달리 각각 1구씩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유곽 밑 위패형 면문곽의 ' '이라는 명문을 통해

1010년(현종 원년)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06102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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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산 천흥사 범종(聖居山 天興寺 梵鍾)

 

 

성거산(聖居山) 청흥사(天興寺) 범종(梵鍾)

 

 

소재지(所在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연 대(年 代) : 1010年 (현종(顯宗) 원년(元年), 통화(統和) 28年)지정번호(指定番號) : 국보(國寶) 第280號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128.3cm 종신고(鍾身高); 94cm 용뉴고(龍鈕高); 34.3cm 용통경(甬筒徑);10cm 상대폭(上帶幅); 9.5cm 유곽폭(乳廓幅); 5.6cm 유곽장(乳廓長); 33×42cm당좌경(撞座徑); 22cm 하대폭(下帶幅); 11.1cm 구경(口徑); 9.5cm 종구후(鍾口厚); 8.8cm

 

현재(現在)는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소장(所藏)되어 있는 고려시대(高麗時代) 초기(初期)의 대표적(代表的) 거종(巨鍾)이다. 현재(現在) 국내(國內)에 남아있는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상원사(上院寺) 범종(梵鍾)과 봉덕사(奉德寺)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다음으로 속(屬)하는 거종(巨鍾)으로서 그 제작(製作) 수법(手法)이나 모든 양식(樣式)이 고려종(高麗鍾)의 대표(代表)가 될 수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종(鍾)의 상태(狀態)를 살펴보면 용뉴부분(龍鈕部分)의 형태(形態)는 신라종(新羅鍾)의 용뉴형(龍鈕形)을 닮고 있으나, 다만 용두(龍頭)가 천판(天板)을 물어 들어올리는 것과 같이되어있지 않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고개를 들어 올리는 형상(形像)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르다. 용통(甬筒)은 역시 신라종(新羅鍾)에서 보이는 용통(甬筒)과 유사하게 5段으로 구분(區分)되어 있다. 최상부(最上部)의 第1段과 중간부분(中間部分)의 第4段, 그리고 第2段과第5段 등은 각각(各各) 동일(同一)한 문양대(紋樣帶)로 조식(彫飾)하여 있고 중앙(中央)의 3단(段)만은 다른 문양(紋樣)으로 처리(處理)하였다. 중앙(中央)의 문양(紋樣)은 종(鍾)의 상하대(上下帶) 문양(紋樣)과 동일(同一)하게 조식(彫飾)한 것이 또한 특징(特徵)이라 하겠다.종정(鍾頂)에 속하는 천판(天板) 주연(周緣)에는 신라종(新羅鍾)에서 보이는 연판대(蓮瓣帶)로서 돌리고 있는 것이 주목(注目)되며,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는 연주문대(連珠紋帶) 속에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으로 주문대(主紋帶)를 이루고 있고 유곽(乳廓)을 단순한 보상화문대(寶相華紋帶)로 조식(彫飾)하였다. 유곽(乳廓) 내(內)에 있는 유두(乳頭)는 원형(圓形)의팔판연화좌(八瓣蓮華座) 위에 약간 도드라진 유두(乳頭)로서 9유(乳)를 배치하고 있고 종신(鍾身)의 종복(鍾腹) 부분(部分)에는 2個의 당좌(撞座)와 2個의 비천(飛天)을 배치(配置)하고 있다. 당좌는 원형(圓形)의 자방(子房)을 갖추고 그 주연(周緣)에 팔판(八瓣)의 연판(蓮瓣)으로 돌리고 연판주위(蓮瓣周圍)에는 작은 연주문대(連珠紋帶)로 처리(處理)한 후 다시그 외곽(外廓)에 인동당초문대(忍冬唐草紋帶)를 돌리고 가장 외곽선(外廓線)에는 굵은 연주문대(連珠紋帶)로 처리한 점이 또한 특색(特色)이다. 이와 같은 좌(撞座)의 형식(形式)은 신라(新羅) 범종(梵鍾)들에서 보이는 형식(形式)을 이어받은 듯하다.

당좌(撞座)와 교호(交互)로 배치한 2구(軀)의 비천상(飛天像)은 신라종(新羅)에서 보이는대좌(對座)한 2구(軀)의 비천상(飛天像) 배치(配置)와는 달리 각(各) 1구(軀)씩 대각선상에배치한 것이 또한 특징이다. 비천(飛天)은 운상(雲上)에 궤좌합장(跪坐合掌)하여 승천하는자세로 양각(陽刻)한 우수한 작품이다.

특히 유곽(乳廓) 직하(直下)에 위패형(位牌形) 명문곽(銘文廓)을 설치(設置)하여 그 속에양주(陽鑄)한 명문(銘文)이 들어 있다.聖居山天興寺 鐘銘(성거산천흥사 종명)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통화이십팔년경술이월일)이와같은 형(形)의 위패형(位牌形) 명문곽(銘文廓)은 고려시대(高麗時代)에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樣式)이다. 본 명문(銘文)에서 보이는 성거산(聖居山)은 충청남도(忠淸南道) 천안군(天安郡) 성거면(聖居面)에 있는 山으로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성거산상(聖居山上)에 5색(色)의 구름이 걸쳐있는 것을 바라보고 성거산(聖居山)이라 이름지었다는 山이며19), 천흥사(天興寺)는 성거산(聖居山) 밑에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그 4年에 창립(創立)하였다는 사찰(寺刹)이다. 本 종(鍾)에서 보이는 통화(統和) 28年은 고려(高麗) 현종(顯宗) 원년(元年)(1010)에 해당되며 통화(統和)라는 연호(年號)는 요(療)의 연호(年號)이다. 평정양평씨(坪井良平氏)는『조선종(朝鮮鍾)』에서 본종(本鍾)의 상대부분(上帶部分)에 나타나는 문양(紋樣)을 모단당초문(牡丹唐草紋)이라고도 추정(推定)하고 있고21), 다른 설(說)에서도 일반적(一般的)22)인꽃무늬로 평범(平凡)하게 추정(推定)하기도 있다.

출처 :

1996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 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동현金 東 鉉)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