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범종 (중앙박물관 소장, 연천출토)
출처 : 이뮤지엄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1100160100000#none
2017년 1월 10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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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출토 종
- 국적/시대한국(韓國)-고려(高麗) <13세기>
- 재질금속(金屬)-청동제(靑銅製)
- 크기높이 36.5cm
- 소장기관국립중앙박물관
- 유물번호신수(新收)-001601-000
출처 및 원본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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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종(銅 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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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전집 / 동화출판공사 / 197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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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sejon.or.kr/main/main_ar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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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출토 범종
경기도 연천 출토 범종(京畿道 蓮川 出土 梵鐘)(2-34, 3-29)
소 재 지(所 在 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연 대(年 代) : 13세기말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35cm 종신고(鍾身高); 25cm 용통고(甬筒高); 10cm
용통경(甬筒徑); 45cm 상대폭(上帶幅); 2.1cm 유곽폭(乳廓幅); 1.8cm
유곽장(乳廓長); 6×8.4cm 당좌경(撞座徑); 4.5cm 하대폭(下帶幅); 3cm
종구경(鍾口徑); 23.5cm 종구후(鍾口厚); 1.5m
본(本) 종(鍾)은 1966年 2月 『고고미술(考古美術)』7卷2號에 소개(紹介)된 바 그 내용(內
容)을 보면 1966年 1月 13日과 17일경(日頃)에 경기도(京畿道) 연천군(蓮川郡) 백학면(白鶴
面) 원당리(元堂里)에서 윤태진(尹泰鎭), 윤석진(尹錫鎭) 양인(兩人)에 의해 기유명(己酉銘)
청동반자(靑銅飯子)와 더불어 발견(發見)되어 국고(國庫)에 귀속,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
博物館)에 보관(保管)되어 있다.
종(鍾)의 발견(發見)은 원당삼리(元堂三里) 부락(部落)에서 약(約)500m 정도 거리의 영농
지역(營農地域) 내(內)에서 지표(地表)로부터 4척(尺) 5촌(寸)정도 깊이에서 발견(發見)되었
다고 하는데, 부락(部落)의 고노(古老)들의 말에 의하면 옛부터 이곳을 ‘탑두득’이라 일컬으
며 현재(現在)도 이곳에는 탑재(塔材) 비슷한 석재(石材)가 묻혀 있다고 한다.
종(鍾)은 소종(小鍾)에 불과(不過)하지만 종신(鍾身)의 형태(形態)와 흘러내린 곡선(曲線)
그리고 용뉴(龍鈕) 용통(甬筒) 등(等) 종정부(鍾頂部)의 의장(意匠)을 살펴보면 아담한 고려
(高麗) 범종(梵鍾)에서 가지는 기본적(基本的)인 양식(樣式)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근래(近
來)에 출토(出土)된 종류(種類)의 동종(銅鍾)보다 우수(優秀)하고 완전한 통형(通型)의 소종
(小鍾)으로서 천판(天板)위에 있는 용뉴(龍鈕)의 조각(彫刻)은 각명(刻銘)하고 용통(甬筒)에
는 4주(珠)가 남아있는데 일부가 약간 파손되어 있다.
종견(鍾肩) 상연(上椽)에는 3각형(角形)으로 된 입상연화문(立狀蓮華紋) 26판(瓣)이 돌려
있으나 타유례(他類例)와 같이 당초문(唐草紋) 등(等)을 각(刻)한 것이 아니고 인동문(忍冬
紋)에 가까운 문양(紋樣)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상하대(上下帶)에는 삼선내(三線內)
에 당초문(唐草紋)이 돌려있다. 그리고 종복(鍾腹)에는 우수(優秀)한 조각(彫刻) 수법(手法)
으로 부각(浮刻)된 각각(各各) 4개(個)씩의 당좌(撞座)와 비천상(飛天像)을 교호(交互)로 갖
고 있으며, 다른 청동소종(靑銅小鍾)의 예(例)와는 달리 선각(線刻)으로 된 당좌(撞座)나 비
천(飛天)이 아니고 뚜렷한 조각(彫刻)으로 3∼4mm나 튀어나온 부각(浮刻)이 주목(注目)된
다. 당좌(撞座)는 6판(瓣)의 연화문(蓮華紋)으로서 각(各) 화판(花瓣)마다 자엽(子葉) 3개(個)
씩을 갖고 있는 화문(花紋)으로 되어 있고 자방(子房)도 또한 8엽(葉)으로 돌려싸인 것이 특
이(特異)하다. 특(特)히 비천상(飛天像)은 머리위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형태(形態)이나
두광(頭光)을 갖고 있는 모습이나 그 의문(衣紋) 등(等)이 매우 선명(鮮明)하며 주조시(鑄造
時)부터 많은 정성을 들여 조각(彫刻)하여 제작(製作)한 흔적이 우수(優秀)하게 나타나고 있
다. 유곽(乳廓)은 원형(圓形) 받침의 또렷또렷한 9유두(乳頭)를 곽내(廓內)에 갖고 4처(處)에
동일(同一)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곽(乳廓) 역시 당초문(唐草紋)으로 새겨져 있다. 다
만 유감되는 것은 종체(鍾體)에 명문(銘文)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고 있어 그 제작년대(製作
年代)를 정확(正確)히 파악할 수 없다. 근래(近來)까지 출토(出土)되어 소개(紹介)된 것 중
(中) 강원도(江原道) 횡성출토(橫城出土) 청동소종(靑銅小鍾)81), 경기도(京畿道) 양평군(楊平
郡) 용문산(龍門山) 폐사지출토(廢寺址出土) 동종(銅鍾)82), 전라남도(全羅南道) 강진군(康津
郡) 대구면(大口面) 사당리출토(沙堂里出土) 기유명청동범종(己酉銘靑銅梵鍾)(고려(高麗) 공
민왕(恭愍王) 18年, 1369)83) 등(等)과 비교하여 볼 때 본(本) 종(鍾)은 이들 보다 형태(形態)
나 제작수법(製作手法)이나 의장(意匠)이 훨씬 우수하고 시대(時代)가 앞설 것으로 생각된
다. 1935年 6月 황해도(黃海道) 평산군(平山郡) 신암면(新岩面) 월봉리(月蜂里)에서 출토(出
土)한 정우(貞祐) 11년명(年銘) 월봉사청동범종(月峰寺靑銅梵鍾)84)에 비교하여 볼 때 흡사한
점(點)이 많으나 종견상연(鍾肩上緣)의 입상연화문(立狀蓮華紋)의 모양과 상하대(上下帶)의
문양(紋樣), 종신(鍾身)의 형태(形態) 등(等)에 있어 간략화(簡略化)된 점이 많아 시대(時代)
가 약간 떨어진다고 본다. 정우(貞祐) 11年은 고려(高麗) 고종(高宗) 10年(1223)이므로 본
(本) 종(鍾)은 적어도 1300年代까지 내려오지 않은 고려(高麗) 중기(中期) 즉 13세기(世紀)
말경(末頃)으로 확정(確定)되는 것으로 본다.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1996년간 한국의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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