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신라의 종

강원도 평창 상원사 범종 (국보 36호)

korman 2014. 12. 30. 15:39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② 상원사종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승인 2017.02.08 09:24

 

‘동양서 가장 아름다운 종’ 찬사

중국 일본종과 구별되는

독특한 형태, 의장 눈길

한국종의 ‘완성’ 보여줘

정교한 세부장식 외에도

여운 깊은 울림소리 지녀

백리 밖까지 들리는 명종

◀ 한국범종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오대산 상원사 종. 국보 36호,        높이 167cm, 구경 90.3cm.

 

오대산 상원사에 소장된 국보 36호 상원사 범종은 725년에 제작되었다는 명문을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랜 작품이다. 이 종을 통해 이미 725년 무렵에는 중국과 일본 종과 구별되는 독특한 형태와 의장(意匠)을 지닌 한국 종으로 완성을 이루게 된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정교한 세부 장식과 더불어 종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웅장하면서도 여운이 깊은 울림소리(共鳴, 공명)를 지녀 성덕대왕 신종(771)과 함께 한국 범종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상원사종이 원래 어느 절에서 사용코자 만들어진 것에 관련된 기록은 명문에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의 기록인 <영가지(永嘉誌)> ‘고적루문고종조(古蹟樓門古鍾條)’에 의하면 조선 세조 임금 때 상원사 중창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범종을 구하던 중 안동(安東)의 문루(門樓)에 걸려 있던 오랜 종이 선정되어 예종 원년(1469)에 현재의 위치인 상원사로 옮겨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종에 관하여 종소리가 웅장하여 백리 밖 멀리까지 들리는 명종이며 몸체가 단정 장중하고 조각이 우미(優美)하면서 아담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 용뉴와 음통

 

총높이 167cm, 구경 90.3cm의 상원사 종은 통일신라 종 가운데서 비교적 대형 종에 속한다. 종의 몸체는 마치 독(甕)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이 위가 좁고 배부분(鍾腹, 종복)이 불룩하다가 다시 종의 입구(鍾口) 쪽으로 가면서 점차 오므라든 모습이다. 종의 정상부에는 한 마리 용이 목을 구부리고 입을 벌려 마치 종을 물어 올리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으며 양다리는 각각 앞, 뒤로 뻗어 발톱으로 종의 상부인 천판(天板)을 힘차게 누르고 있다. 이 부분을 용뉴(龍)라 부르는데,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부분을 강화하면서도 장식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원래는 고래를 무서워한다는 상상의 바다짐승인 포뢰(蒲牢)를 상징한 것이다. 이 상원사 종의 용뉴는 한국 범종 가운데 가장 웅건한 모습으로서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을 천판에 붙인 채 앞 입술이 위로 들려 길게 솟아 있다. 입 안에 뾰족한 이와 입술 위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돌출되었고 정수리에서 솟아오른 두 개의 뿔과 길게 솟은 쫑긋한 귀 뒤로 갈기가 유려하게 표현되었다. 

목 뒷부분에는 우리나라 종에서만 볼 수 있는 굵은 대롱 형태의 음통(音筒)이 솟아 있다. 3단의 마디로 이루어진 음통은 각 마디마다 굵은 화문 띠로 묶은 뒤 이를 중심으로 위 아래로 앙 복련(仰 覆蓮)의 연판문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마주 보도록 조각하였고 각 연판 안에는 당초형의 줄기를 시문하여 더욱 화려하게 꾸몄다. 특히 우리나라 범종의 음통은 상원사 범종을 시작으로 하여 모두 음통의 내부가 비어있고 하부 쪽이 종신 내부에 관통되도록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이 음통에 관해서는 신라의 삼보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상징한다거나 종 걸이 부분의 강도를 높여주는 역할 내지 종 주조를 할 때 상부의 불순물을 밖으로 빨리 뿜어져 내는 다양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 음통이 종의 울림소리와 관련하여 고주파를 빨리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 범종에 빠짐없이 등장되는 음통이야말로 한국 범종이 지닌 독창적인 요소를 증명해 주는 자료임에 분명하다.

상원사 종은 종신의 윗부분에 불룩이 솟아오른 천판의 용뉴를 중심으로 양 쪽에 나누어 제작시기와 중량, 시주한 사람과 같은 종 제작에 관계된 내용을 음각하였다. 여기에서 개원(開元) 13년은 당 나라 고종(高宗)의 연호로 신라 성덕왕(聖德王) 24년인 725년에 해당된다. 종의 제작시 합쳐진 유(鍮, 靑銅)의 양은 삼천삼백근이며 ‘도유내효□(都唯乃孝□)’가 총감독을, ‘도직(道直)’이 조역을 맡았으며 ‘충칠, 충안, 정응(忠七, 沖安, 貞應)’ 등의 승려와 ‘유휴대사댁 부인(有休大舍宅 夫人)’, ‘휴도리(休道理)’에 거주하는 ‘덕향’, ‘사상(德香, 舍上)’의 관직에 있는 ‘안사(安舍)’ 등이 함께 시주하여 ‘조남댁(照南托)’의 장인(匠人)인 ‘사□(仕□)’가 주조하였다는 내용으로 확인된다. 

상원사 종의 몸체 상부와 종 아래쪽의 하부에는 동일한 크기의 문양띠(文樣帶)를 둘렀는데, 이 부분을 각각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라 부른다. 통일신라 범종의 상·하대에 주로 당초문과 보상화문이 장식되는 반면에 상원사 종은 상대와 하대에 각각 주악천인상이 장식된 반원형 구획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정교한 팔메트(palmette) 당초문을 빽빽하게 시문하였다. 상대와 하대에 문양은 유사해 보이지만 주악상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 즉 상대에는 반원형 구획 안에 횡적(橫笛)과 요고(腰鼓)를 연주하는 2구의 주악상을 배치한 반면 하대에는 하나의 방형 구획 안에 심벌즈와 같이 생긴 제금(提琴), 횡적(橫笛), 요고(腰鼓), 비파(琵琶)를 연주하는 모습의 4인의 주악좌상을 두었다. 이렇게 4구로 늘어난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상대에 비해 길이가 넓어진 하대를 위한 의도적인 의장의 변화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상대 바로 아래에 배치된 네 방향의 연곽(蓮廓)은 상원사 종에 보이듯이 대체로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대체로 상, 하대와 동일한 형태의 문양을 장식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상원사 종에서는 연곽의 좌우편에는 반원형 구획 안에 각각 단독의 주악상을 장식하였고 연곽의 아래 부분에는 상대와 동일한 횡적과 요고를 연주하는 2구 1조의 주악상을 시문한 점이 다르다. 

 

◀ 상원사종의 종류와 보관 모습

 

그리고 연곽 내부마다 연꽃봉우리 형태를 충실히 묘사한 9개씩의 연꽃봉우리가 돌출되었으나 일부는 부러져 있다. 우리나라 범종은 상원사종에 처음으로 등장된 것처럼 한 방형곽에 9개씩의 연꽃이 배치되어 사방에 도합 36개가 장식되는 것이 기본으로 정착되어 이후 한국종의 가장 두드러진 양식적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오랜 기간 범종의 명칭에서 일본 종의 학명을 따라 ‘유두(乳頭)’로 불리던 이 장식은 상원사 종에 보이는 높이 솟은 연꽃봉우리의 표현을 통해 일본종과 처음부터 확연히 구별되는 연꽃봉우리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점을 중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범종에 장식된 종유(鍾乳)는 처음부터 일본 종의 꼭지형 장식과는 다른 연꽃봉우리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점에서 ‘유두(乳頭)’라는 이름보다 ‘연뢰(蓮)’로 불러야 하며 이 연꽃이 모여진 방도 ‘유곽(乳廓)’이 아닌 ‘연곽(蓮廓)’ 또는 ‘연실(蓮室)’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종신의 앞, 뒷면에 반대로 배치된 두 개의 당좌와 당좌 사이에 해당되는 종신의 여백에는 공후(空侯)와 생황(笙篁)을 연주하며 하늘에서 날아 내리는 한 쌍의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앞, 뒷면에 장식하였다. 이 주악상은 몸을 옆으로 돌린 채 두 다리를 곧추 세운 모습으로서 다른 통일신라 범종에 비해 훨씬 동적이면서 우아하다.

 

한편 종신의 하대 위에는 종을 치는 자리로서 별도로 마련된 당좌(撞座)라는 원형 장식을 앞, 뒤면 두 곳에 도드라지게 배치하였는데, 그 위치는 대체로 종신의 3분의1 부분쯤에 해당되는 가장 불룩하게 솟아오른 정점부에 해당된다. 당좌는 중앙부에 연밥(蓮子, 연자)이 돌기된 원형의 자방(子房)을 만들고 집선문(集線文)의 테를 두른 뒤 그 주위를 8엽복판(複瓣)의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다시 이 바깥 테두리를 연주문대(連珠文帶)로 두르고 가늘고 섬세한 넝쿨형태의 당초문 구획을 둔 다음 이 전체를 연주문 원권(圓圈)으로 두른 모습이다. 통일신라 범종 가운데 가장 우아한 모습의 당좌로서 이후 만들어진 범종의 모본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특징은 상원사 범종의 양식적 특징인 동시에 통일신라 범종의 가장 전형적인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우리나라의 범종은 이러한 상원사 종의 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각 시대마다 조금씩 변화되어 간 것이라는 점에서 상원사 종이 지닌 중요성이 충분히 입증된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 범종을 대표하는 국보 상원사종도 오랜 타종으로 인해 균열이 생겨 보존 처리를 거치게 되었고 결국 복제 종을 만들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 웅건한 자태와 화려한 문양은 동양 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종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여음(餘音)

근래 다시 찾은 상원사종은 종의 화재 예방 차원에서 새로 지은 누각 안에 걸려 있었는데, 바깥을 두른 철제 프레임과 강화 유리에 갇혀있는 답답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유리에 반사되어 종의 세부 모습은 희미한 윤곽만이 보일 뿐이어서 더욱 아쉬움을 주었다, 문화재 보호도 중요하지만 상원사 종이 지닌 가치에 걸 맞는 보관 장소와 전시 환경의 시급한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불교신문3272호/2017년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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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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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상원사 범종 (국보 제36호)

 

 

 

 

 

 

 

 

 

 

 

종 목 국보  제36호

명 칭 상원사 동종 (上院寺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62.12.20

소 재 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50, 상원사 (동산리)

시 대 통일신라

소유자(소유단체) 상원사

관리자(관리단체) 상원사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연곽(蓮廓)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연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연뢰(蓮蕾)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항아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갖춘 모본이 되는 종이다.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검색창 2017년 3월 18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0360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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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동종

 

 

 

 

 

 

상원사 동종(上院寺 銅鐘)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에 있는 남북국 시대의 구리 종이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6호로 지정되었다.

 

725년에 주조되었으며, 현존하는 한국의 최고 오래된 종이다. (성덕대왕 신종보다 46년 빠르다.) 높이는 1.7m이다. 천판의 명문에 의하면 휴도리(休道里)라는 귀부인이 기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무늬대[紋樣帶]는 모두 당초문과 반원형으로 구획지은 속에 천인상으로서 장식되었고, 종신에는 당초문 띠를 바깥에 두른 연화문 당좌(撞座)와 병좌주악천인상(竝座奏樂天人象)을 두 군데 배치하고 있다.

 

현존하는 한국종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이 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조성되어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상원사에 옮겨진 것으로 한국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범종이다.[1]

 

음통이 있는 종뉴 아래에 안으로 오무라든 종신이 연결된 형태인데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감있는 구조, 풍부한 양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 수법도 매우 사실적이다. 종신이 있는 상대·하대, 4유곽의 문양은 모두 당초문을 바탕으로 2~4인의 작은 비천상이 있는 반원권문이 새겨졌고, 종복에 비천상과 교대로 있는 당좌는 8판 연화문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비천상은 경쾌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으로 구름 위에서 천의 자락을 흩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고 있는데, 볼록한 두 빰, 유연한 신체에 걸친 천의 등은 8세기 전반의 이상적 사실풍의 불교조각 양식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1] 이러한 상원사 종에 보이는 음통, 안으로 오무라든 종신형, 상대·하대, 4유곽 등의 구조적인 특징은 한국종의 전형이 되어, 양식적인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의 모든 종에 계승된다.

 

출처 : 위키피디아 2017년 3월 18일 현재

https://ko.wikipedia.org/wiki/%EC%83%81%EC%9B%90%EC%82%AC_%EB%8F%99%EC%A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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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最高>의 주조기술과 미학으로 빚어낸 한국 최고<最古> 범종

 

                                  ▲ 상원사 범종은 불교미술의 정수를 모아놓았 고 할 만큼 다양하고 화려하다.

불교미술의 다양한 장르 가운데서 가장 흔히 보는 것 중 하나가 범종(梵鍾)일 것이다. 어느 절이든 대개 마당에 커다란 범종이 걸린 종각 혹은 종루가 있기 마련이이니까. 종각에는 범종만 있는 게 아니라 운판(雲板)·목어(木魚)·법고(法鼓)가 함께 있어 이 네 가지 공양구(供養具)를 한데 불러 ‘사물(四物)’이라고 한다. 쓰임새는 모두 당목이나 채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이지만 각자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있으니 어느 것 하나라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래도 전각 이름이 종각이듯이 이 사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범종일 것이다. 아침저녁 예불 직전에 사물을 치는데 비록 거의 단음조에 가까운 단순한 음계이건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보다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한다.

사물을 치는 순서는 범종을 맨 마지막에 치는데 울림통이 가장 크다보니 그 묵직하면서도 여운이 가득한 소리가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제격이다. 범종의 존재감은 소리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몸체에 장식된 장엄무늬에서 찾을 수 있는데 한마디로 불교미술의 정수를 모아놓았다고 할 만큼 다양하고 화려하다.

725년 3월 성덕왕대 제작
15세기 안동서 상원사 이운

생동감 넘치는 용뉴 인상적
굵은 음통은 만파식적 상징
날아갈듯 한 비천상도 일품

범종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또 그 시원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속 시원한 대답은 아직 없다. 여러 가지 진지한 학설이 있고 그럴듯한 가정(假定)이 있는데, 간단히 정리해보면 미술사학계나 음악사학계에서는 궁중에서 연주되던 타악기 용(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최근에는 불교의 장식구인 방울 모양의 탁(鐸)이 발전되어 범종이 되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용이든 탁이든 이것이 발전해 지금의 범종 모양으로 정형화된 것은 대략 서기 1∼2세기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범종은 8세기에 만들어진 상원사 범종이다. 그런데 상원사 범종은 최고(最古)라는 타이틀 말고도 종소리는 물론, 청동 합금 및 주조기술 면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된다. 말하자면 미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능적·기술적 측면에서도 최고(最高)의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우리나라 범종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 모범적인 형태를 지닌 최우수작으로 이 상원사 범종이 으뜸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상원사 범종의 제작 연대는 몸체에 새겨진 종명(鐘銘)에 725년에 해당하는 연호가 나온다. 이 무렵은 신라의 문화가 한창 절정으로 달려가던 때인 성덕왕(聖德王)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주의 성덕대왕신종 역시 8세기에 만들어져 상원사 범종의 바로 뒤를 잇는다. “개원 13년 을축 3월8일에 종이 완성되어서 이를 기록한다(開元十三年 乙丑 三月 八日 鐘成記之)”로 시작되는 명문 중에는 이 범종을 만들 때 들어간 놋쇠가 모두 3300정(鋌)이었고, 이 범종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도 자세히 열거되어 있다.

그런데 이 범종은 처음부터 상원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540여년 전인 1469년에 이곳 상원사로 옮겨졌다. 그 전에는 경북의 어떤 절에 있었던 것 같은데 절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상원사로 옮겨지기까지의 유래에 대해 몇 가지 기록이 있다. 우선 ‘조선왕조실록’ 1469년 윤2월조에 조선 초의 고승 학열(學悅)이 조정에 “안동 관아에 있던 범종을 (상원사로) 옮겼습니다”하고 보고한 내용이 있다. 안동의 읍지 ‘영가지(永嘉誌)’에도 이 무렵 안동 관아의 누문(樓門)에 걸려 있던 옛 종을 상원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처음부터 누문에 걸린 건 아니고, 그 전에 어느 절터에서 범종을 가져와 걸었다는 것이다.

상원사 범종은 범종으로서의 위용 외에 겉면에 갖가지 장엄의 향연이 베풀어져 있는데, 이런 장엄 장식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 우선 범종을 형태면에서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범종의 구성은 꽤 단순한 편이다. 가장 위에 있는 편편한 곳을 천판(天板)이라고 한다. 여기에 용(龍) 한 마리나 두 마리가 얹혀있는 게 통일신라부터 고려에 이르는 전형적 모습이다. 특히 신라의 범종은 예외 없이 용이 있고 그 용이 음통(音筒) 또는 용통(甬筒)이라 부르는 원통 형태를 등에 지고 있는 모습을 한다. 범종은 천판 아래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일정한 비율로 넓어졌다가 맨 아래에서 직선으로 끝맺음을 한다. 천판 바로 아래를 ‘종 어깨[鍾肩]’라고 하는데, 여기에 둘러진 띠를 상대(上帶)라고 한다. 그런데 상원사 범종 같은 경우 상대에 바로 잇대어 아래로 연곽(蓮廓)이라는 사각형 공간이 있다. 종 어깨를 둘러 가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전부 네 곳에 배치되어 있고 그 안에는 끝부분이 둥글게 돌출된 돌기가 있다. 이 돌기의 생김새가 마치 연꽃봉우리 같다 해서 연뢰(蓮蕾)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 연곽 안에 연뢰 아홉 개가 배치되는 게 통식이다.

   
        ▲ 상원사 범종 연뢰.

중국이나 일본 범종에서는 연뢰의 수가 우리보다 훨씬 많아서 한 연곽 안에 36개 또는 72개나 배치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안동에서 상원사로 옮겨질 때 이 범종의 연뢰와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온다. 범종을 옮겨가던 일행이 경북 풍기읍과 충북 단양 경계에 있는 죽령 고개를 넘을 때였다. 갑자기 종이 너무 무거워져 도저히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 때 한 스님이 연곽 안에 있는 연뢰 하나를 뚝 떼어서는 안동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다시 쉽게 움직여 무사히 상원사로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실제로 이 범종의 네 개의 연곽 중 한 곳에는 연뢰 하나가 없다.

맨 아래에도 둥글게 띠가 둘러져 있어서 이를 하대(下帶)라 하고, 상대와 하대 사이를 종신(鍾身)이라고 한다. 이 종신에 베풀어지는 장엄은 시대마다 다른데, 신라시대에는 아주 우아한 모습의 비천(飛天)이 주로 표현되어 있고, 고려시대에는 보살상이나 승려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상원사 범종을 보는 사람은 가장 먼저 용뉴(龍鈕, 용 모양의 고리)에 있는 용의 모습에 감탄한다. 용은 커다란 눈에 우뚝 솟은 귀와 머리 위에 뿔 하나가 달려 있다. 불이라도 막 내뿜을 기세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있고, 네 발은 잔뜩 움츠린 모습인데 마치 막 하늘로 뛰어오르려는 양 불끈 솟은 근육과 튀어나올 듯 굵은 힘줄이 인상적이다. 이 상원사 범종을 비롯해서 다른 신라시대 범종에 장식된 용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의 내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용이 짊어진 굵은 음통은 곧 만파식적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범종을 두드림으로써 한 번 불면 모든 고뇌가 사라진다는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의 소리가 온 세상에 가득 울리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 용뉴.

상원사 범종의 장엄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비천상(飛天像)일 것이다. 둥근 몸체의 양 옆에 하나씩 새겨진 이 비천상은 숱한 비천 중에서도 미적인 면에서 가장 압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답다. 무릎을 세우고 허공에 뜬 채 공후(箜篌)와 생(笙)을 연주하고 모습 자체도 찬탄이 절로 날 만큼 우아한데다가, 마치 짙은 향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 얇은 비단 옷자락이 위로 유려하게 흩날리고 있는 것도 환상적이다. 두 비천은 모두 영지버섯 모양의 구름 위에 앉아 있는데, 비단 옷자락의 띠 끝부분에까지 인동초를 새겨놓을 정도로 섬세하기 그지없다 이 두 비천상 외에 상대의 띠 안에도 자그마하게 새겨져 있다. 띠 위쪽에는 피리와 쟁(箏)을, 아래쪽에는 피리 같은 취(吹)악기를 비롯해 장고·비파 등을 그리고 좌우 띠에도 생(笙)과 요고(腰鼓, 허리에 달고 치는 북의 일종)를 연주하는 비천상들이 새겨져 있다. 그야말로 비천의 향연이요 천상의 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 비천상.

그 밖에 상원사 범종에는 갖가지 길상(吉祥)무늬와 범자 장식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 길상무늬로는 사리가 담긴 보병·법라(法螺)·일산(日傘)·차양(遮陽)·연꽃·물고기·매듭·법륜 등 팔길상(八吉祥) 또는 팔보(八寶)가 멋지게 장식되었다. 또 범자로는 ‘卍’자와 더불어 ‘육자 대명왕진언’도 있다. 이 육자진언을 염송하면 사람 안에 있는 에너지가 활성화되어 우주 에너지와 통합할 수 있게 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를 범종에 새겼다는 해석도 있다.

끝으로 오래 전부터 느껴왔던 의문 하나가 있는데, 범종은 불상이나 불화처럼 예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공양구일 뿐일까 하는 문제다. 10여년 전 어느 해 여름 상원사 측의 협조를 받아 이 범종을 상세히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그 즈음엔 절에서 예식 올릴 때 말고는 종각 문이 닫혀있어서 일반인은 조그맣게 난 창살 너머로나 볼 수 있었다. 나는 다행히 반나절 연구의 허락을 얻어 문을 열어 놓고 있었는데, 일군의 사미·사미니 스님들이 줄을 지어 종각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일행 중에는 그냥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잠시 멈추어 서서 마치 불상을 대하듯 허리를 깊게 꺾어 절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자 인솔하던 스님이 만류하며, “범종은 그저 공양구일 뿐인데 거기다 왜 절을 하느냐?”하며 약간 힐난조로 물었다. 그러자 절 하던 스님이 잠시 머뭇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스님, 저는 공양구에 절을 한 게 아닙니다. 저 범종이 천 년을 넘었는데, 처음 이것을 만들었던 사람과 그들의 발원심이 너무 고마워 그것에다 절 한 것입니다.” 인솔자 스님은 멋쩍어졌는지 더 이상 뭐라 안 하고 쓱 지나쳤다. 자, 범종은 성보가 아니니 절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맞는가 아니면 환희심에 젖어 저도 모르게 합장하던 사미니의 마음이 이해되는가?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buam0915@hanmail.net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출처 : 법보신문 사이트 2014년 12월 30일 현재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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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9일 발췌

 

상원사 동종

 

 

국보  제36호
명 칭 상원사 동종 (上院寺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62.12.20
소 재 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50, 상원사 (동산리)
시 대 통일신라
소유자(소유단체) 상원사
관리자(관리단체) 상원사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사이트 2014년 2월 9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0360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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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3일 발췌











4. 신라의 범종의 이해 
▣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 ▣

1. 소재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
2. 형식과 규격  높이 167㎝, 입지름 90㎝.  일반형동종
3. 연  대   통일신라 성덕왕 24년(725)
4. 세부구조

종정부(鐘頂部) 


용뉴(龍?)에는 용머리, 발톱, 비늘 등이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있는데, 꿈틀거리는 용이 두발로 천정판을 딛고 머리를 숙여 종 전체를 힘차게 물어 올리는 듯한 형상이다.용뉴 좌우 천판에는 명문(銘文)이 있다.  
용통(甬筒)에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이 위 아래로 겹쳐 있고 그 사이에는 연화문과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다.

종신부(鐘身部)

문양대(文樣帶) 상대?하대?유곽대의 가장자리에는 이음구슬무늬(연주문:連珠紋)을 돌리고, 그 안에는 드문드문 1~4구(軀)의 천인이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주악상(飛天奏樂像)을 양각한 반원권(半圓圈)을 배치하였으며, 나머지 공간에는 당초문으로 채웠다. 상대에 붙은 유곽대 안에는 9개의 연화좌(蓮花座) 바탕에 돌기된 유두가 있으며 유두의 표면에도 섬세한 꽃무늬 조각이 있다.  
종신(鐘身)-- 유곽(乳廓)과 하대(下帶) 사이의 넓은 곳에는 2개의 당좌(撞座)와 비천주악상(飛天奏樂像)이 각각 대칭되어 있다. 공후(??)와 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의 조각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악기를 연주하는 손놀림은 매우 생동감이 넘치고 영락(瓔珞)과 천의(天衣)를 조각한 선이 매우 치밀하게 조각되었다. 원형의 당좌는 중앙에 있는 자방(子房)을 중심으로 8꽃잎의 연화(蓮花)를 돌리고 바같 원에 안팎으로 연속된 주문대(連珠文帶)를 돌렸다.

5. 종합 이해

용뉴와 유곽
 
  ‘상원사동종’은 종정에 용통과 용뉴를, 종신에 상대?하대?유곽대 등의 문양대를 가지고 있고, 돌기된 유두? 당좌?비천상 등 범종의 모든 형식을 갖추고 있어 ‘범종의 일반형’으로 불린다. 현존하는 범종 중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종이다. 용뉴의 좌우에 명문(銘文)이 음각 되어있는데, “開元十三年”이라는 연대가 있어 성덕왕(聖德王) 24년(725)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원래 어디에서 어떤 목적에서 주조된 것인지는 모르며, 조선초 안동 남문루에 걸려 있던 것을 예종 1년(1469)에 상원사에 옮겨 왔다. 현재는 균열이 생겨 사용하지 않고 대신 모조품을 만들어 놓았다.
출처 : 한국역사문화기행회
 |  글쓴이 : 박진사 원글보기
  2006년 10월 13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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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2일 발췌

 

종    목 국보  제36호
 
명     칭 상원사동종(上院寺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1 상원사
 
시     대 통일신라
 
소 유 자 상원사
 
관 리 자 상원사
 
설     명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문문문      문문화재청 2006년 9월 22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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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종


開元 13年 乙丑(725), 청동, 전체높이 167.0cm, 종높이 128.5cm, 입지름 90.3cm, 주종장 사□, 강원도 평창 상원사, 국보 제36호

현재 전하는 한국종 중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와 정교한 무늬에서도 성덕대왕 신종과 더불어 국내 최상으로 손꼽히는 종이다. 천판 위로는 단룡單龍의 용뉴와 음통을 갖추고 있으며 몸체에는 상대와 하대, 상대와 연접한 연곽, 비천상 등을 갖추어 한국종의 독특한 특징과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영가지永嘉誌』에서는 이 종의 성음聲音이 웅장하여 백리 밖 멀리까지 들리는 명종이며 몸체가 단정장중하고 조각이 우미하면서 아담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종은 몸체의 2/3되는 배부분까지 서서히 불러오르다가 다시 종입구쪽으로 약간 오므라들면서 끝선을 수평으로 잘라 외곽선의 긴장미를 살리고 있다.

용뉴는 몸체에 비하여 매우 큰 편으로 타종에 놀란 듯한 큰 눈과 오똑 선 귀, 날카로운 뿔과 크게 벌린 입, 힘차게 천판을 딛고 선 발의 표현 등에서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음통은 5개의 구역으로 나누었으며 연꽃무늬와 보상화무늬로 수놓았다.

상대는 동일한 지문판地紋板을 연속적으로 찍었다. 지문판은 중앙에 아래로 둥근 반원이 있는데, 이 반원권 무늬는 신라종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다. 반원은 테두리를 겹으로 둘렀는데 바깥 테두리에는 하트모양의 고사리무늬를 돌리고 안쪽 테두리에는 작은 능화꽃을 돌렸다. 이 반원 내부에 조그마한 주악비천 2구가 앉아서 왼쪽은 피리, 오른쪽은 쟁箏을 연주하고 있다. 하대도 상대와 유사한 형식인데 반원 내부에는 작은 주악비천이 4구가 있으며 각각 취악기, 피리, 장고,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상대에 연접하여 사다리꼴 모양의 연곽이 4군데 있다. 연곽 내부에는 가로 세로 각 3개씩 총 9개의 연꽃봉오리를 도드라지게 주성하였다. 연곽은 좌·우·아래쪽에 각각 반원권을 하나씩 두고 그 안에 다시 비천을 새겨 매우 특징적이다.

연곽 아래쪽의 배 부분에는 비천과 당좌를 번갈아가며 새겼다. 당좌는 종의 앞과 뒤에 하나씩 있는데 무늬들이 가느다란 선으로 섬세하게 메워져 절도 있는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8잎의 연꽃잎에 구슬무늬띠를 돌려 마무리하고 바깥 구슬무늬 띠와의 사이에 가느다란 당초무늬를 채워넣었다. 비천은 종의 좌우에 있으며 2구가 한쌍이 되어 나란히 구름 위를 날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왼쪽의 비천은 커다란 공후를 끌어안고 연주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비천은 생황을 불고 있는데 무게가 없는 듯 가벼워보이는 비천의 자세로부터 하늘로부터 하강하는 부드러운 동세가 느껴진다. 둘 다 나신인 상반신에는 영락을 드리웠고 팔과 허리 아래로는 얇은 천의를 걸쳤는데 영락과 천의들이 비천들의 몸을 휘감고 자연스럽게 하늘로 날리는 모습은 매우 유려하고 섬세하여 이 우아한 비천들의 자태를 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천판에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개원開元 13년(725)에 주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종에 관해서는, 신라 성덕왕에 의하여 조성되어 산내 진여원眞如院(신라귀족 자제들의 교육원)에 봉안되었다는 기사가 『월정사약사月精寺略史』중에 등장하며, 그 후 조선 1468년 안동 누문에 있던 종을 상원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영가지』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전까지는 안동의 누각에 걸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직지사 한국의범종 탁본전 2014년 3월 2일 현재

http://www.jikjimuseum.org/Gallery_200407/product/UnifiedSilla/0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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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 범종(梵鍾)

상원사(上院寺) 범종(梵鐘)(2-1,3-1)

소재지(所在地) : 강원도(江原道) 평창군(平昌郡) 진부면(珍富面) 동산리(東山里) 오대산(五臺山)
년 대(年 代) : 725年(성덕왕년(聖德大王),24年개원(開元) 13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국보(國寶) 第36號
크 기 : 높이 167cm 구경(口徑) 19cm

 

국내(國內)에 있어서 현존(現存)하고 있는 최고(最古) 최미(最美)의 범종(梵鍾)으로서 대표(代表)되며, 종정(鍾頂)에는 용뉴(龍鈕)를 구비하고 종신(鍾身)에는 견대(肩帶)와 하대(下帶) 유곽(乳廓)․유두(乳頭)․당좌(撞座)․비천상(飛天像) 등을 갖춘 것으로 한국(韓國) 범종(梵鍾)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유감없이 구비(具備) 발휘하고 있다. 상하대(上下帶)가 긴박감을 주는 가운데 상하(上下)모두가 연주문대(連珠紋帶)를 돌린 다음 유려(流麗)한 당초문(唐草紋)으로 채우고 2인(人)내지 4人의 주악상(奏樂像)을 양각(陽刻)한 반원권(半圓圈)을돌리고 견대(肩帶)(상대(上帶))에 붙여서 당초문(唐草紋)을 양각(陽刻)한 유곽(乳廓) 4개를배치하고, 그 속에 연화(蓮華)를 화좌(花座)로 한 유두(乳頭) 9個를 돌출(突出)시키고 있다.


이 유두(乳頭)들에도 화려(華麗)한 화형문(花形紋)을 조식(彫飾)하여 돋보이게 하였고, 종신(鍾身)의 공간(空間)에는 상대(相對)되는 두 곳에 운상(雲上)에서 천의(天衣)를 날리며 무릎을 세워 하늘을 날으며 공후(箜篌)와 간(竿)(생(笙)으로 추정(推定))을 주악(奏樂)하는 비천상(飛天像)이 양각(陽刻)되어 있다. 비천(飛天)사이에는 역시 상대(相對)하여 원형(圓形)의 당좌(撞座)가 있는 바, 중앙(中央)의 자방(子房)을 중심(中心)으로 팔판연화(八瓣蓮華)를 돌리고 있고, 외원내외(外圓內外)로 섬세한 연주문(連珠紋)을 돌렸으며, 그 안에 당초문(唐草紋)이 조식(彫飾)되어 있다.


또한 종정상(鍾頂上)에는 용뉴(龍鈕)와 용통(甬筒) 즉(卽) 음관(音管)이 있는데, 그 수법(手法)이나 양식(樣式)은 신라(新羅) 범종(梵鍾)에 있어서 봉덕사(奉德寺)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과 더불어 가장 대표(代表)되는 용뉴(龍鈕)를 갖추고 있다. 특히 용뉴(龍鈕)를중심(中心)하여 좌우(左右)에 명문(銘文)에 음각(陰刻)되어 있어 주성연대(鑄成年代)를 명확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성기문(鍾成記文)의 ‘문(文)’, 도합유(都合鍮)의 ‘도합(都合)’의 이두문(吏讀文)과 보중직세월(普衆直歲月) 중승등(衆僧等)의 승명(僧名)과 도유내(都唯乃) 유휴등(有休等)의 관직명(官職名)과 인명(人名) 등이 보이고 있다. 당시의 이두사용(吏讀使用)과 주종(鑄鍾)에 참여하였던 승려(僧侶)와 감독자(監督者) 그리고 관직등(官職等)의 직명(職名)을 파악(把握)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여 주며, 여기에서 보이는 개원(開元) 13年은 당(唐)의 연호(年號)로서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24年이며, 725年에 해당되는 때이다. 명기(銘記)된 명문(銘文)을 다음과 같다.

한문장 스캔

 

출처 : 1996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 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동현金 東 鉉)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