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신라의 종

일본 시마네현 고묘지 (광명사, 光明寺)의 신라범종

korman 2016. 10. 18. 12:31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⑨ 일본 시마네현 코묘우지 통일신라 종

팔리고 떠돌고…아픈 과거 간직한 신라 종

 

운천동 출토 종 당좌 흡사

통일신라 9세기 중엽 조성

1379년이전 일본 이동 추정

해풍으로 부식돼 손상 심각

 

이 종은 시마네현(島根縣) 오오하라군(大原郡) 오오타케산(大竹山)의 높은 정상부에 위치한 코묘우지(光明寺) 종루에 걸려 있던 종으로서 바다에 인접한 산 정상부에 위치한 때문인지 몰라도 해풍에 의한 부식과 손상이 심한 편이다.

이 종에 대해서는 대정년간(大正年間, 19 12~1925) 초기에 스즈키 큐유지(鈴木久治)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시 대정8년(1919)년에 역사학자인 타카다쥬로(高田十廊)가 <고고학잡지(考古學雜誌)>에 이 범종의 금석문을 소개한 내용이 보인다. 따라서 꽤 일찍부터 이 종이 존재가 알려져 왔으나 보존상태가 별로 좋지 않으면서 원명이 없었던 관계로 이후에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종의 외형은 기타의 통일신라종과 비교해 볼 때 구경에 비해 종신이 상대적으로 길어 다른 통일신라종과 달리 세장(細長)한 느낌을 준다. 생동감 없이 왜소해진 용두는 얼굴을 천판 위에 붙이고 있으나 윗입술이 앞으로 들려져 있고 작은 뿔과 불거진 눈, 부푼 듯 크게 강조된 귀는 그다지 사실적으로 표현되지 못하였다.

 

용의 목 부분 역시 섬약하며 두 발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손상되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상단 부분이 손상된 세장한 음통에는 아래 단부터 입상(立狀)의 연판문대와 접속부에는 화문이 연결된 사격자문(斜格字文)을 두었고 상단으로 앙,복련의 연화문을 높게 부조하였다. 천판(天板)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이 바로 상대와 연결되었다.

 

상대(上帶)에는 상, 하단에 융기선을 돌리고 그 사이로는 1조의 당초문만을 간략하게 시문하였다. 특히 상대 아래 붙은 방형의 연곽대(蓮廓帶)에는 서로 다른 문양으로 장식한 점이 주목된다. 즉 연곽의 양측 종대(縱帶) 부분에는 갑옷을 입은 신장상(神將像)과 그 아래로 무릎을 꿇고 합장한 모습의 동자상(童子像)을 반원형 테두리 안에 배치한 반면에 하단의 횡대(橫帶)에는 당초문만을 간략하게 시문한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한 연곽대 내에서 주악상이나 천인상을 표현한 것은 상원사 종 양식에서 볼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도식화되었고 앞서 소개한 운천동 종의 연곽대에 표현된 보주와 당초문과도 차이를 보인다. 아울러 연곽의 내부에는 9개씩의 연뢰(蓮)가 표현되었으나 성덕대왕신종, 운쥬지(雲樹寺)종과 마찬가지로 연판 위로 돌출되지 않은 화문좌(花文座)의 형태를 따랐다.

 

그리고 하대(下帶)의 문양은 상대와 달리 두 종류의 반원권 문양을 반복 시문하였는데, 그 하나에는 여의두문(如意頭文)을 중첩 시문한 반면 다른 하나는 천인상을 중심 문양으로 한 점이 다르다. 이는 연곽대와 마찬가지로 두개의 서로 다른 지문판(地文板)을 반복 시문한 것으로서 문양을 시문하는데 있어 장식성보다 편리함을 추구한 시대적인 변화라 생각된다.

 

종신의 하부에 치우쳐 앞, 뒤 두개 배치된 당좌는 삼중원(三重圓)으로 구성되어 내구에는 1+6개의 연과와 그 바깥에 15엽의 연판문을, 그리고 가장 바깥쪽으로 복잡한 형태의 당초문이 낮은 부조로 시문되었다. 특히 이 당좌의 구성과 세부의 형태가 앞서 소개한 운천동 출토 통일신라종의 당좌와 거의 흡사하여 동일 문양판을 반복 사용하였거나 최소 같은 공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독특한 당좌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이 종 역시 통일신라 9세기의 제작임을 입증케 해 준다.

 

당좌와 엇갈리는 직각 방향의 종신 면에는 천의를 날리며 구름 위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천인상이 각각 1구씩 부조되었다. 그 중 1구는 비파(琵琶)를 연주하는 모습이며 반대쪽 상은 배 앞에 놓인 요고(腰鼓)를 양손으로 치는 모습이다. 다른 장식 문양에 비해 이 주악천인상 부분은 세부의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 나름 생동감이 느껴진다.

 

특히 비파를 타는 주악상의 경우 국립청주박물관 소장의 운천동 출토 통일신라종의 주악상과 크기나 형태면에서 매우 유사하며 당좌의 표현 역시 거의 동일한 점에서 이 두 범종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다만 운천동 출토 종은 다른 쪽 비천상이 종적(縱笛)을 부는 모습인 점에 비하여 이 종은 요고를 연주하고 있는 점에서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요고는 8세기 후반의 운쥬지종부터 등장해 833년명의 죠구진자(尙宮神社) 소장 연지사 종에서 사용된 주악기로서 코묘우지종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으나 횡적 대신에 비파를 연주하는 새로운 구성이 등장한 점은 이 종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코묘우지 종이 운천동 출토 종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의 작품이 아닌가 짐작된다. 따라서 코묘우지 종은 종신의 세장한 형태와 용두의 섬약함을 비롯하여 도식화된 세부의 문양 표현을 통해 연지사 종(833) 보다는 조금 뒤늦은 9세기 중엽에서 약간 후반 쪽에 가까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신에는 제작 당시의 원명은 남아있지 않으나 한쪽 여백 면에 이 종이 일본으로 건너온 다음의 추각명(追刻銘)이 전, 후 3차례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각각 1379년, 1408년, 1492년에 해당되는 연호가 확인된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1397년에 해당되는 명문은 8행 63자로서 그해 5월5일 불일산 죠우키젠잉(佛日山 增輝禪院)에 시납된 내용이며 3행 46자로 이루어진 두 번째 추각명은 1408년 11월29일 죠우키젠잉(增輝禪院)의 인근에 소재한 복전산 호우토쿠젠지(福田山 報德禪寺)로 팔려간 사실을, 다시 1492년의 11월에는 지금의 소장처인 대죽산(大竹山) 코묘우지(光明寺)로 이관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종이 원래 통일신라 어느 절에 걸려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1379년 이전에 일본의 시마네현으로 건너오게 되어 죠우키젠잉(增輝禪院)에 처음 시납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슨 이유인지 3번이나 소장처를 옮겨가게 된 것과 특히 두 번째 절에는 이 범종이 팔려 간 사실을 볼 수 있어 당시에 우리나라 범종이 돈으로 거래된 가슴 아픈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종이다. 비록 소장처나 정확한 제작시기 등의 명문은 남아있지 않지만 운천동 출토 종과 거의 동일한 문양을 지니고 있어 운천동 종이 통일신라 9세기 중엽 경에 제작된 것을 규명해 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 준 매우 귀중한 작품이 되고 있다.

 

여음(餘音)

필자가 이 종을 조사할 당시까지 종은 경내 높은 곳에 만든 종각에 걸려 소금기 많은 해풍을 고스란히 받아가며 그때까지 타종되고 있었다. 종을 조사한 직후 주지 스님에게 이 종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음을 알리고 하루빨리 실내로 넣어주기를 요청한 바 있는데, 그 후 다행히 이 종은 떼어져 별도로 보관하게 되고 새로운 복제 종을 국내의 성종사에서 희사 받아 타종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로서 이처럼 일본에 건너가 있는 한국 범종에 대한 반환의 요구에 앞서 정확한 현상과 보존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자문과 보존 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것도 우리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불교신문3303호/2017년6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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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8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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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현 고묘지 (광명사, 光明寺)의 신라범종

 

 

 

 

 

 

 

 

 

일본 시마네현[]에서 최고로 높은 목제 11면 관음상을 소장하고 있다는 고묘사[]에는 주조된지 1,100여년이 훨씬 지난 통일신라시대의 범종이 있다.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범종은 1492년에 광명사에 걸렸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복제품이 만들어져 한국과 일본의 또 다른 우정의 징표가 되고 있다.

* 현재 이 절의 주소는 시마네현 雲南市加茂町大竹292로 나와 있다. 이는 아래의 우리나라 자료에 나와있는 소재지와 縣은 같으나 지역의 주소는 다르다. 새로이 정리된 주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現在、曹洞宗に属し、永平寺、総持寺の両大本山の流れを汲む当寺の歴史は古く、平安・奈良時代にまで遡ると言われるが、数時の火災により寺伝、古記録等ことごとく焼失して詳細はつかめないが、現存する前述の寺宝、朝鮮渡来「新羅鐘」の銘文や、縁起、境内周辺の樹木にまつわる伝承などから推察すると、弘法大師空海が唐から帰朝した翌年の大同二年(807)に随徒月桂上人が、この地を巡行し錫を留めたと言い伝えがあります。

この頃を山岳仏教寺院としての光明寺の創建とすることが出来ます。

境内端にある鐘楼。朝鮮銅鐘。国の重要文化財です

 

県下最大といわれる十一面観音像。

桧の一木造り、像高約4m。

観音堂:奈良時代から平安時代の創建といわれる。

住職は不在との張り紙があったが、観音堂の向かって左の戸が開いており、自由に拝観くださいとのこと。

 

近年、眼下に広がる眺望絶佳の景観と文化財、行き届いた自然保護により、青少年健全育成なとの合宿研修の場としても広く開放されています。

更に大事業として寺宝「朝鮮鐘」は、鋳造されておよそ千百有余年を数えるが、日本へ渡来して後、数寄な運命を辿り、明應元年(1492年)に光明寺に掛けられ、満五百年を迎えるにあたりこの鐘のふるさと韓国で複製鐘の鋳造が住職の発願で実現、新たな日韓親善の文化的国際交流活動として注目されています。

 

출처 :  시마네현  雲南市観光協会 홈페이지 광명사 관광안내 2016년 10월 18일 현재

http://www.unnan-kankou.jp/contents/spot/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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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추정, 청동, 전체높이 88.1cm, 종높이 71.9cm, 입지름 51.0cm,

日本 島根縣 大原市 加茂町 大竹 光明寺, 일본 중요문화재
고묘지는 시마네현의 오다케야마大竹山 동남중턱에 있는 조동종曹洞宗의 고찰이다. 종을 절의 종각에 걸어두고 얼마 전까지 썼으나 금이 가서 보물고를 지어 보관하고, 대신 종루에는 꼭같이 생긴 복제종을 만들어 타종하고 있다.
종신이 전체적으로 길어 원통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용뉴는 상대적으로 작다. 상대는 위쪽에 3줄, 아래쪽에 2줄의 선 사이에 간소한 당초문이 있다. 하대는 상하에 구슬무늬 띠가 있고 가운데에는 운수사 종처럼 반원권무늬 띠가 반복되어 있는데, 반원권은 안쪽에 장고를 치는 비천상이 있는 것과 꽃무늬가 있는 것이 교차 배치되어 있다. 용두 방향 45도로 4좌가 배치된 연곽대에도 갑옷을 입은 천부 입상을 좌우에 두고, 그 아래에 반원의 호 안에 합장하는 동자상이 있다. 당좌는 용의 전후에 2좌가 있는데 섬세한 당초문과 15엽 연꽃잎으로 꾸며져 있다. 당좌 사이에는 구름 위에 앉아 천의자락을 날리는 작지만 아담한 비천상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비천상은 왼쪽은 장고를 치고, 오른쪽은 비파를 타고 있다.
원명은 남아 있는 것이 없으나 비천의 자세, 종의 형태로 보아 통일신라 종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9세기 종으로 비정된다. 종신에는 일본에 건너온 후 3차에 걸친 추명이 있다. 고랴쿠康歷 원년(고려 우왕 5년, 1379년) 5월 5일에 시마네현의 ‘增禪寺’에 납입되었다가 30년 뒤인 오에이應永 15년(조선 태종 8년, 1408) 11월 29일 근처의 ‘報德寺’로 옮겨졌고, 다시 83년 뒤인 메이오우明應 원년(조선 성종 23년, 1492년) 11월 현재의 고묘지光明寺로 옮겨졌다.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직지사박물관 2007년 3월 25일 현재보완 2014년 3월 2일 현재http://www.jikjimuseum.org/Gallery_200407/product/UnifiedSilla/06.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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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동종
  • 한자
  • 분야
  • 유형
  • 시대
  • 성격
  • 제작시기/일시
  • 크기(높이, 길이, 두께, 너비)
  • 소장처
  • 집필자
 
[정의]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고묘사(光明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범종.
[내용]
높이 88㎝, 입지름 51㎝. 중형(中型)에 속하는 종으로, 상하대(上下帶)의 무늬는 각각 다르게 장식하였는데, 상대는 S자형 물결 모양의 당초문(唐草文)을 연속하여 둘렀고, 하대는 상대보다 약간 넓게 띠를 구성하여 하단에 한 줄의 연주문대(連珠文帶)를 둘렀으며, 내부에는 반원권상(半圓圈狀)이 연속 배치되었다.
반원권의 내부양식은 두가지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그 하나는 여의두문(如意頭文) 형식의 보화(寶花)를 중심으로 외곽에 연주문을 둘러서 마치 신라 와당의 반쪽 형태를 보여주고, 또 한가지는 반원권 안에 천인상을 새겨넣었다.
그리고 반원권과 반원권 사이에는 유운문(流雲文)을 시문(施文)하였고, 종신(鐘身)의 하단에 배치된 당좌(撞座)와 비천은 유곽(乳廓)의 사이사이에 배치하였다. 당좌는 열다섯 잎 연화문을 배치하고, 주위에 당초문을 둘렀다. 유곽은 상대의 하단에 붙여서 네 곳에 배치되었다.
유곽대는 일반적인 것과는 달리 특이한 모양을 이루는데, 유곽의 좌우에는 갑주(甲胄)를 입은 팔부신장(八部神將)을 세웠고, 아래에 반원권상 안에 합장한 동자좌상(童子坐像)을 넣었으며, 또 아래 띠에는 구름당초문을 넣었다.
몸체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여 천의(天衣)를 유려하게 날리는데, 한 구(軀)는 비파를 연주하고, 다른 한 구는 요고(腰鼓 : 장구)를 치는 모습을 부조(浮彫)로써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종연구』(염영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 『朝鮮鐘』(坪井良平, 角川書店, 1974)
  • 『일본 소재의 한국범종』(최응천, 奈良國立博物館, 1993)

출처 : 민족문화대백과 2015년 7월 24일 현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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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光明寺) 소장(所藏) 범종(梵鍾)

 

 


소재지(所在地) : 일본(日本) 도근현(島根縣) 대원군(大原郡) 가무정(加茂町) 대죽(大竹)
연 대(年 代) : 10세기경
지정번호(指定番號) :
크 기 : 높이 88cm 구경(口徑) 51cm


이 범종(梵鍾)은 하대(下帶)와 견대(肩帶)의 문양(紋樣)이 각각(各各) 다른 것으로 견대(肩帶) 문양(紋樣)은 와문(渦文)을 반복 연속하여 간단하게 처리한 듯한 당초문(唐草紋)으로 조식(彫飾)하였다. 하대(下帶)는 반원권(半圓圈)을 중심(中心)하여 내외(內外)에당초문(唐草紋)으로 조식(彫飾)하였고 반원권(半圓圈)의 내외선대(內外線帶) 속에는 여의두문(如意頭紋)으로 조식(彫飾)하였다. 그러나 다른 반원권문(半圓圈紋) 內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2個의 서로 다른 반원권문양(半圓圈紋樣)을 교호(交互)로 조식(彫飾)하여 주문양대(主紋樣帶)로 하대(下帶)를 이룬 것
은 이 범종(梵鍾)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당좌(撞座)는 2개소(個所)에 배치(配置)되어 있는바, 15판(瓣)의 연화문(蓮華紋)으로처리하고 주위에는 당초문대(唐草紋帶)로 주회(周廻)하였다. 유곽(乳廓)의 문양(紋樣)은특수한 것으로 상방에는 갑주(甲冑)를 걸친 천부상(天部像)의 입상(立像)을 배치(配置)하고, 그 하부(下部)에는 반원권(半圓圈) 內에는 합장(合掌)한 동자좌상(童子坐像)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외의 공간에는 당초문(唐草紋)으로 조식(彫飾)하고 있는 것으로한 유곽문대(乳廓紋帶)에 3종류의 문양(紋樣) 조식(彫飾)을 하고 있는 것이 견대(肩帶)와 하대(下帶)가 서로 다른 것과 같이 특수(特殊)한 문양대(紋樣帶)로 하였다는 것이 주목(注目)되는 특징이다. 범종(梵鍾)의 종신(鍾身)에는 운상(雲上)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여 천의(天衣)를 날리며 비천(飛天)하는 천인상(天人像) 각(各) 1구(軀)씩을 배치(配置)하였고, 1구(軀)는 피바(琵琶)를, 다른 1구(軀)는 요고(腰鼓)를 주악(奏樂)하는 상(像)으로 나타내고 있어 역시 10세기 경의 신라(新羅) 범종(梵鍾)으로 본다.

출처 :

1996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 간 (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동현金 東 鉉))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