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은평구 진관동 (당시 고양시) 삼천사지 출토 범종 (신수2056)

korman 2016. 11. 22. 13:12

서울 은평구 진관동 (당시 고양시) 삼천사지 출토 범종

(중앙박물관 소장 동제범종)


출처 : 이뮤지엄 2017년 1월 10일 현재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1100205600000#none


* 금일 현재 중앙박물관 유물검색에서는 검색되지 않고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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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진관동 (당시 고양시) 삼천사지 출토 범종






경기도 고양 삼천사지 (현 은평구 진관동) 출토 범종(京畿道 高陽 三川寺址 出土 梵鍾)(2-32, 3-27)


소 재 지(所 在 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연 대(年 代) : 13세기 전반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27cm 종신고(鍾身高); 19.5cm 용통고(甬筒高); 7.5cm

용통경(甬筒徑); 2cm 상대폭(上帶幅); 1.5cm 유곽폭(乳廓幅); 1cm

유곽장(乳廓長); 4×5.4cm 당좌경(撞座徑); 5cm 하대폭(下帶幅); 3cm

종구경(鍾口徑); 16.8cm 종구후(鍾口厚); 1.7cm


1967年 11月 당시 경기도(京畿道) 고양군(高陽郡) 신도면(神道面) 진관내리(津寬內里) 윤경민씨

가 자택건물(自宅建物) 증축시 동종(銅鍾)을 포함한 일괄유물(一括遺物)(청동범종(靑銅梵鍾),

청동정병(靑銅淨甁), 청동대부발(靑銅臺付鉢))이 출토되어 국고(國庫)에 귀속한 범종(梵鍾)으

로 현재(現在)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소장번호(所藏番號) 신(新)2056호(號)로 등

록․보존되어 오고 있다. 1968年 1月 『고고미술(考古美術)』 9卷1號79)에 본(本) 종(鍾)에

대(對)하여 발견(發見) 경위와 내용(內容)을 상세하게 설명(說明)되어 있다. 그 내용(內容)을

소개(紹介)한다면 이 종(鍾)은 전형적(典型的)인 여대(麗代)의 것으로 전체(全體)의 비례가

쾌적하고 종신(鍾身)의 곡선(曲線)흐름이 아름다운 완미(完美)한 범종(梵鍾)이다. 정부(頂部)

는 용뉴(龍鈕)를 결(結)하고 용통(甬筒)을 갖추었으며 용은 입에 여의주(如意珠)를 받치고

있다. 발도(髮熖)은 양(兩)어깨에서 위를 향(向)하여 용통(甬筒) 상부(上部)까지 뻗었으며 타

례(他例)와 달리 예쁜 당초문양(唐草紋樣)을 하고 있다.

용통(甬筒)은 위에 5주(珠)를 받치고 있으며 용신(甬身)은 3구(軀)로 나누어 당초문(唐草

紋)을 양주(陽鑄)하였다. 이 정부(頂部)는 종신(鍾身)에 비하여 녹슬어 마멸이 심하여 표면

(表面)이 거의 박락(剝落)되어 세부(細部)가 불명(不明)함은 심히 유감스럽다.

종신(鍾身)은 견부(肩部)에 여의두문(如意頭紋)의 입화형(立花形)을 두르고 견대(肩帶)와

구대(口帶)를 갖추었고 견대(肩帶)에 붙여 4유곽(乳廓)을 배치(配置)하고 유곽(乳廓)의 사이

사이에 4비천(飛天)을, 유곽(乳廓)의 밑에는 4개(個)의 당좌(撞座)를 배치하였다. 입화형(立花形)의 

여의두문(如意頭紋)은 전성우씨(全晟雨氏) 소장(所藏) 청자상감운(靑磁象嵌雲) 학문

매병(鶴紋梅甁)의 견부(肩部)에 둘려진 백상감(白象嵌)의 여의두문(如意頭紋)과 거의 같은

양식(樣式)을 하고 있다. 구대(口帶)와 견대(肩帶)는 뇌문(雷文)을 주문(主紋)으로 두르고 뇌

문(雷文)의 상하(上下)에 연주문대(連珠紋帶)를 두었는데, 견대(肩帶) 상부(上部)에는 연주문

(連珠紋)이 없으며 구대(口帶)의 뇌문(雷文) 사이사이에 단편적인 뇌문(雷文)같은 것이 3개

(個)에 들어있다. 유곽(乳廓)은 9유(乳)를 내포하고 외곽(外廓)은 뇌문(雷文)으로 되어 있으

며 뇌문(雷文) 주위에 연주문(連珠紋)은 없다. 비천(飛天)은 연화좌(蓮華座)에 궤좌(跪坐)한

보살형(菩薩像)으로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을 갖추었다.

당좌(撞座)는 주위의 화판(花瓣)이 중판(重版)의 여의두문(如意頭紋)으로 되었으며 중심부

(中心部)는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되었고 여의두(如意頭) 화판(花瓣) 내(內)에 하나하나 다

시 인동문(忍冬紋)이 양주(陽鑄)되었다. 용통(甬筒)과 종신(鍾身)은 맞뚫렸으며 종신(鍾身)

구연(口緣)의 두께도 1.7cm로 두툼하다. 차차 올라갈수록 얇아져서 예쁜 곡선을 그리고 있

다. 이 종(鍾)은 ‘조선종(朝鮮鐘)의 통식(通式)을 드러낸 고려종(高麗鍾)으로서 전체(全體)

비례의 조화와 종신(鍾身)의 곡선미(曲線美), 특히 입화형(立花形) 여의두문양식(如意頭紋樣

式)에서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전반에 걸치는 작품으로 추정된다’ 라고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시대(時代)는 상기(上記)의 시대(時代) 추정(推定)과 유사하게 보이는 바이다.


출처 : 국립문화재 연구소 1996년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