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경주박물관 소장 경주시 남산 천은사지 출토 범종 (天恩寺址 出土 梵鍾)

korman 2017. 3. 1. 16:55

龍이 音管을 完全히 휘감고 있으며 上下帶에 寶相花文이 있고 飛天像과 撞坐가 서로 對稱되어 있다.

출처 : 이뮤지엄 2021년 2월 14일 현재

www.emuseum.go.kr/detail?cateClass=&cateListFlag=&keyword=%EB%B2%94%EC%A2%85&pageNum=10&rows=20&sort=&highQualityYn=&isImgExistOp=&mckoglsvOp=&isIntrstMuseumOp=&filedOp=&detailFlag=&dq=&ps01Lv1=&ps01Lv2=&ps01Lv3=&mcSeqNo=&author=&ps06Lv1=&ps06Lv2=&ps08Lv1=&ps08Lv2=&ps09Lv1=&ps09Lv2=&ps09Lv3=&ps09Lv4=&gl05Lv1=&gl05Lv2=&ps12Lv1=&ps15Lv1=&culturalHerNo=&publicType=&detailedDes=&thema=&storySeq=&categoryLv=&categoryCode=&mobileFacetIng=&location=GL90010&facet1Lv1=&facet1Lv2=PS01001002&facet2Lv1=&facet3Lv1=&facet3Lv2=&facet4Lv1=&facet4Lv2=&facet5Lv1=&facet5Lv2=&facet5Lv3=&facet5Lv4=&facet6Lv1=&facet6Lv2=&facet7Lv1Selected=&facet7Lv1=&facet8Lv1=&facetGL27Lv1=&facetGL28Lv1=&facetGL29Lv1=&facetGL30Lv1=&mcgwonpn=&keywordHistory=%EB%B2%94%EC%A2%85&showSearchOption=&intrstMuseumCode=&returnUrl=%2FheaderSearch&selectMakerGroup=0&radioSearchCheck=unifiedSearch&headerPs01Lv1=&headerPs01Lv2=&headerPs01L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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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소장 경주시 남산 천은사지 출토 범종 (天恩寺址 出土 梵鍾)

 

 

 

 

 

 

 

사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2017년 12월 11일 현재

http://portal.nrich.go.kr/kor/newSearchBugaView.do#link

 

 

▲ 사진출처 : http://animal.memozee.com/jinsuk-kim/diary/read.php?2007/0909-06

2017년 3월 1일 현재

 

 

 

경북 경주 남산 천은사지 출토 범종(慶北 慶州 南山 天恩寺址 出土 梵鍾) (2-46, 3-36)

 

소 재 지(所 在 地) :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시(慶州市) 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

연 대(年 代) : 13세기 초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26.7cm 유곽장(乳廓長); 4×5.4cm 종신고(鍾身高); 21cm

용통고(甬筒高); 2.8cm 당좌경(撞座徑); 3.8cm 용통경(甬筒徑); 1.2cm 

하대폭(下帶幅); 2cm 상대폭(上帶幅); 2cm 종구경(鍾口徑); 14.4cm 

유곽폭(乳廓幅); 1cm 종구후(鍾口厚); 1.9cm

 

이미 『고고미술(考古美術)』113, 114號99)에 소개 발표된 것으로 그 내용(內容)을 보면 

1970年 8月 13日에 입수(入手)된 소종(小鍾)으로서 당시 경주시(慶州市) 남산(南山) 탑동(塔

洞) 천은사지(天恩寺址)에서 출토(出土)되었다. 부근(附近)에는 전(傳) 일성왕릉(逸聖王陵)이 

있으며 지하(地下) 2m 깊이에서 출토(出土)되었다고 한다.

 

 종신(鍾身)의 세장(細長)함이 우선(于先) 주목(注目)되며 종정상(鍾頂上)이 또한 특이(特

異)하다. 용뉴(龍鈕)는 관통(貫通)된 용통(甬筒)을 중앙(中央)에 두고 용신(龍身)이 용통(甬

筒)을 감고 올라갔으며 함주(含珠)한 두부(頭部)와 양족(兩足)의 표현(表現) 등(等)이 매우

교묘(巧妙)하게 이루어졌다. 이와같은 용뉴형식(龍鈕形式)은 국립부여박물관소장(國立扶餘博

物館所藏) 부안(扶安) 남포리(南浦里) 출토(出土) 소종(小鍾)에서 유례(類例)를 찾을 수가 있

다. 견대(肩帶)(상대(上帶))는 당초문(唐草紋)을 세각(細刻)하였는데 그 상연(上緣)을 돌아 

복연(覆蓮)과 3각문(角紋)의 이대(二帶)가 돌려있다. 유곽(乳廓)은 네곳에 배치되었으며 각

(各) 9유(乳)가 화문좌(花紋座)에 돌기(突起)되고 있다. 그리고 유곽간(乳廓間)의 하면(下面)

을 택(擇)하여 대칭(對稱)으로 궤좌(跪坐)하는 비천(飛天) 2구(軀)와 이와 교대(交代)하여 원

형(圓形)의 연화문(蓮華紋) 당좌(撞座) 2개(個)가 배치(配置)되고 있다.

 

 그리고 유곽(乳廓) 및 하대(下帶)에 연접(連接)하여 위패형(位牌形) 장방구역(長方區域)이 

마련되고 있으나 통례(通例)를 따라 명문(銘文)을 찾을 수도 없다. 하대(下帶) 또한 보상화

문(寶相華紋)이 돌려 있는데 하대(下帶)에서 특이(特異)한 것은 그 상연(上緣)을 따라 사입

상엽문(斜立狀葉紋)이 돌려있다. 소종(小鍾)이나 그 형태(形態)가 신라종(新羅鍾)을 모(模)하

였으니 천인(天人)의 형식(形式) 또한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의 그것을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뉴(龍鈕)의 형식(形式)이나 상연(上緣)의 3각입대(角立帶), 그리고 그 

상하대문(上下帶紋) 등에서 이 종(鍾)의 연대(年代)는 13․14세기의 것으로 추정(推定)되어

야 할 것이다.

 

 출토(出土) 사지(寺址)는 신라대(新羅代)를 통(通)하여 오랜 세월(歲月) 사운(社運)이 계속

되었음인지 근년(近年)에는 비좌(碑座) 등(等)의 유물(遺物)의 발견(發見)이 있었다. 아담한 

소종(小鍾)으로서 전면(全面)에 청수(靑銹)가 두껍게 덮였으나 매우 소중(所重)한 유물(遺物)

이며, 더욱이 경주지구(慶州地區)에서 출토(出土) 장소(場所)가 확실(確實)함에서 더욱 귀중

(貴重)하다. 또 종(鍾)과 동반(同伴)된 출토유품(出土遺品)은 청자대접(靑磁大接) 10점(點), 

청자개(靑磁蓋) 3점(點), 청자소형(靑磁小形)접시 4점(點), 청자탁잔(靑磁托盞) 1점(點) 등

(等)이었다. 이상의 내용(內容)인 바 이곳에서 가장 주목(注目)될 점은 용뉴(龍鈕)와 용통(甬

筒)의 형식(形式)으로서 신라(新羅)와 고려종(高麗鍾)들에서 그 예(例)를 찾아 볼 수 없는 희

귀(稀貴)하고 독특한 형태(形態)를 갖고 있다는 점과, 또한 종복(鍾腹)에 배치한 비천상(飛天

像) 역시 신라종(新羅鍾)의 비천(飛天) 형식(形式)을 닮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유(乳)

의 비천(飛天)은 전기(前期) 종(鍾)에서도 그 수(數)가 희소(稀少)한 예(例)에 속(屬)한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애석한 것은 장방(長方) 구역내(區域內)에 하등(何等)의 명문(銘文)이 없다

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명문(銘文)이 있었더라면 고려(高麗) 범종(梵鍾)의 유형(類型)과 전후

기(前後期)의 구분(區分)을 좀 더 정확성(正確性)을 기하는 자료가 아닌가도 생각되는 바이다.

한편 본(本) 종(鍾)에 대하여 제작주조 연대(年代)를 13․14세기로 추정(推定)하고 있으나 

일괄유물(一括遺物)로서 출토(出土)된 청자류(靑磁類)로 인(因)해 그 제작년대(製作年代)가 

확실히 보여지며 적어도 13세기 이후로 떨어지지 않는 13세기 초(初)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