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청동소종

korman 2017. 3. 2. 14:18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청동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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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범종 I(東國大學校 博物館 所藏 梵鍾) I (2-47, 3-37)


소 재 지(所 在 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중구(中區) 필동(筆洞)

연 대(年 代) : 14세기 말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34cm 유곽장(乳廓長); 6.3×6.2cm 종신고(鍾身高); 26.2cm

당좌경(撞座徑); 1.8cm 용통고(甬筒高); 8.9cm 하대폭(下帶幅); 2.6cm 

상대폭(上帶幅); 2cm 종구경(鍾口徑); 21.5cm 유곽폭(乳廓幅); 1

종구후(鍾口厚); 1.7cm


1970年 2月 5日 종로구(鍾路區) 인사동(仁寺洞) 세화당(世和堂)에서 구입하여 동국대학교

박물관(東國大學校博物館)에 소장(所藏)․보관(保管)되어 오는 소종(小鍾)(소장번호 619)으

로서 용뉴(龍鈕)와 용통(甬筒)은 전형적(典型的)인 고려(高麗) 후기(後期) 종(鍾)의 형식(形

式)을 갖추고 있다. 용통(甬筒) 상단(上段)에는 6개(個)의 소주(小珠)를 부착(附着)시켰으며 

용통(甬筒) 외면(外面)에는 아무런 문양(紋樣)이 없고 용두(龍頭)는 박진감있게 표현(表現)되

었고 몸체는 꾸부렸다 펴는 듯한 형상이다. 상대(上帶)와 접(接)하는 천판(天板) 주연상(周緣

上)에는 연판(蓮瓣)과 유사(類似)한 입상문대(立狀文帶) 각화판내(各花瓣內)에는 또 다른 화

문(花紋)을 조식(彫飾)하였다.


 상대(上帶)는 뇌문(雷文) 및 도철문(饕餮紋)으로 추정되는 문양대(紋樣帶)로 돌리고 있고, 

상대(上帶)와 접(接)하여 4개소(個所)에 배치(配置)한 유곽(乳廓)은 세잔한 연주문대(連珠紋

帶)를 외부(外部)에 설치(設置)하면서 당초문(唐草紋)으로 주문대(主紋帶)를 이루었다. 유곽

(乳廓) 내(內)의 9유(乳)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단순(單純)한 돌기유(突起乳)로서 배치하였

다. 종신복(鍾身腹) 4처(處)에는 운상(雲上)에서 천의(天衣)를 날리며 좌상(坐像)의 보살상

(菩薩像) 4구(軀)를 양주(陽鑄) 배치(配置)하고 있고 보살상(菩薩像) 상하(上下)에는 원식화

(原式化)된 운문(雲紋)을 또다시 조식(彫飾)한 것이 주목(注目)된다. 또한 보살상(菩薩像) 4

구(軀)와 교대(交代)로 배치한 4처(處)에는 구름위에 뜬 일월(日月)을 부조(浮彫)하고 있는데 

이것이 당좌(撞座)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같은 당좌형(撞座形)의 배치 수법(手法)도 다른 

고려범종(高麗梵鍾)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례(特例)라 하겠다. 하대(下帶)에는 상대(上帶)

에 연주문대(連珠紋帶)로 조식(彫飾)하고 그 중앙(中央)에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하대(下

帶)의 주문대(主紋帶)를 이루고 있다. 특(特)히 이 소종(小鍾)에서 주의(注意)깊게 보아야 할 

것은 종신(鍾身) 4개소(個所)에 후각(後刻)한 명문(銘文)이 보이는데 명문(銘文) 내용중(內容

中) 광제(光綈)3년명(年銘)은 본(本) 종(鍾)의 제작 주조 연대(年代)와는 관계없는 후각명(後

刻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卽) 광제(光綈) 3年은 조선왕조(朝鮮王朝) 고종(高宗) 14年

(1877)에 해당되므로 전혀 종(鍾)의 양식(樣式) 수법(手法)과는 일치되지 않아 후각(後刻)한 

것이 명백(明白)하다. 이로써 종의 제작 연대(연대)는 늦어도 14세기말(世紀末) 이후로는 떨

어지지 않는 것으로 본다.


 명문내용(銘文內容)은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