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동네 할머니

korman 2017. 12. 10. 11:51




동네 할머니


며칠 전 전철 안에서 나와 내 집사람이 서있던 자리가 마침 손주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두 할머니가 앉은 자리 앞이었던지라 본의 아니게 두 분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두 분이 나누는 대화였지만 한 분이 이야기를 하고 다른 분은 그저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입장이었으니 대화라고 하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아무튼 손주 이야기를 하니 나도 3명의 손주를 둔 입장이라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되었다. 남의 이야기를 엿들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그들이 가까운 주위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톤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으니 내가 엿들은 게 아니라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되겠다.


이야기를 주로 하시는 분이 어느 날 딸네 집에 갔는데 외손주가 할머니께 ‘외할머니’라 불렀던 모양이었다. 그 분은 그 ‘외’자가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손주에게 그냥 할머니라 부르라고 하였더니 손주가 그러면 다른 할머니(친할머니)와 어떻게 구분 하냐고 물어와 아이에게 그럼 그 할머니(친할머니)는 ‘★★동 할머니’라 부르고 자신(외할머니)에게는 ‘☆☆동 할머니’라 부르라 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은 아들네 손주는 없는지 친손주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분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게 아마도 아직 손주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두 분 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손주가 여럿 있을 나이는 아닌 것 같았다.


전철에서 내리며 집사람에게 할머니들은 손주가 어찌 부르느냐 에도 그리 신경이 쓰이냐고 물었다. 잡사람 대답은 “우리 외손주는 나 보고 외할머니라고 잘도 부르는데? 그게 어때서?”였다. 난 친손주와 외손주가 다 있다. 친손주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말을 하기 시작할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두 분씩 있는데 왜 그러나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때 아이들에게는 복잡하게 생각되었을 가족관계와 그 두 분씩의 호칭에 대하여 가르쳐준 바가 있다. 내 손주들의 외조부모는 서0동에 사신다. 그 분들도 전철에서의 할머니처럼 아이들에게 ‘서0동 할머니, 할아버지’, ‘인천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르라 하였는지 나에게 와서 외가를 칭할 때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대신에 꼭 ‘서0동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른다. 늘 들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하였는데 전철에서 들은 할머니들의 대화가 내 손주들도 그리 호칭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외손주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알기 시작할 때 난 그 녀석이 묻기 전에 조부모와 외조부모에 대한 호칭을 가르쳐 주었다. ‘00동’이라는 생각은 아예 몰랐다. 그걸 가르쳐 줄 때 아이가 이해를 잘 할 수 있도록 집사람도 거들었다. 아이가 헷갈리기 전에 가족관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할 것 같아 그리 하였다. 그래서 그 녀석이 내 집에 오면 자기가 편한대로 부른다. 어떤 때는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고 자기의 친할머니와 구분지어 불러야 할 때는 ‘외할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나와 집사람은 그 ‘외’자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고 또 우리가 그리 가르쳤으니까. 그런데 전철에서의 그 분처럼 그 ‘외’자가 신경에 거슬리는 분도 있는 모양이다. 그 분이 친손주를 가졌을 때 아이의 외할머니를 어찌 부르라 가르칠지 그게 궁금하다. 


외할머니의 외는 한자어 ‘外’라고 한다. 한자사전에 이 글자의 훈은 ‘바깥, 겉, 남’을 뜻한다고 나와 있다. 외할머니라 함은 과거 딸이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 하였던 말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외’를 붙이면 손주에게 남같은 느낌을 주고 자신은 손주의 친할머니와 비교하여 동등한 레벨에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하기야 외(外)의 쓰임새는 늘 바깥을 뜻한다. 또한 ‘00外 몇몇 등등’과 같이 뭐에 껴묻어 가는 느낌도 있다.  좀 더 신식으로 얘기하면 ‘아웃사이더(outsider)’ 냄새도 풍긴다. 영어는 엄마쪽(mother's side) 할머니, 아빠쪽(father's side) 할머니로 쓰였다. 그러니 그 할머니들은 우리처럼 '외(外)'를 따질 필요는 없겠다. 우리도 영어처럼 그리 쓰였다면 00동 할머니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그렇다고 무슨 동네 할머니? 할머니들은 ‘외’보다는 무슨 동네 할머니에서 자존심이 더 느껴지는 모양이다.


지금 우리 가정에서는 시집간 딸이라도 딸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모계가 강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러니 언젠가는 동네 할머니가 당당하게 외할머니로 돌아올 날도 머지 않은듯 싶다.


2017년 12월 9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