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세월은 같이 흘러간다.

korman 2017. 12. 3. 11:22




세월은 같이 흘러간다.


12월에 들어서면 ‘달력이 한 장 남았다’로 시작되는 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달력에 따라서는 내년 1월까지 보여주는 13장짜리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12장으로 끝난다. 물론 모든 달력은 기본적으로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새해가 시작되기도 전에 뜯겨 나가는 겉장이 있기 때문이다. 겉장이 뜯기고 나면 12월까지 일사천리로 달리는 것이 세월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을 놓고 ‘유수와 같다’느니 ‘화살과 같다’느니 여러 표현들을 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세월의 빠름을 독특하게 말해보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다 한말을 빼면 내가 할 표현은 생각나는 게 없다. 예전에 좀 유식하다는 사람들은 월력(月曆)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달의 한자어가 월(月)이고 력(曆)도 한자어니 그게 문법에는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달력의 영어는 'Calendar'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어원이 좀 특이하다.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뜻이 ‘회계장부’나 ‘빚 독촉’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 서양이나 빚을 져 회계장부에 한 번 적히고 나면 그 이자나 원금을 갚아야 하는 날이 정말 쏜살같이 다가오는 느낌은 같은 모양이다.


시장에 들렀다 집에 들어온 집사람의 첫마디가 “참 야박하네”였다. 무슨 말이냐고 물은즉 시장에서 오는 길에 주로 이용하는 은행 앞을 지나는데 새해 달력을 준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어 들어가 달라고 하였더니 고객 확인이 필요하니 통장을 가져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디지털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의 은행에서는 달력을 쌓아놓고 은행에 들어오는 사람 누구에게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나누어 주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달력 인심이 그리된 모양이다. 사실 고객임을 증명해야 주겠다는 달력을 감지덕지 받아와야 할 만큼 달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사용하는 방에도 달력이 걸려 있고 책상에도 놓고 보는 것이 있으며 냉장고 옆에도 집사람용 달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예전처럼 꼭 필요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놓여 있는 것은 아마 늘 달력이 한 쪽 벽의 빈 공간을 메워주던 시절의 애착이 가져다주는 아날로그적 감상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예전에는 달력에 많은 메모를 하였다. 기억해야 할 행사나 신규 일정이 생기면 잊지 않으려고 모두 달력에 적어놓고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직장에서도 각자의 책상위에 탁상달력은 놓여 있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지금의 직장 책상위에도 달력이 놓여 있을까? 사람에 따라서는 아무리 디지털 세대라 하더라도 금방 눈에 들어오는 달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스마트폰속에 있는 디지털달력을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속에 메모를 하여 놓으면 잊고 있어도 소리나 이메일이나 또 다른 디지털 신호로 일깨워주니 이 시대는 눈 보다는 귀가 먼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다 장단점은 있다. 종이달력에 기록한 것은 눈을 한 번 돌리기만 하면 발견이 되지만 늘 쳐다보지 않으면 잊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달력에 기록해 놓은 것은 때가 되면 자동으로 알려주니 좋기는 하지만 이 역시 손가락 운동을 하여 열심히 기록을 하고 연계된 어플을 잘 사용할 줄 알아야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종이달력이 보여주는 메모보다 월등히 우수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어찌 보면 달력을 사용하는 것에 따라 아날로그세대냐 디지털세대냐 하는 구분이 지어질 수도 있겠다.


나? 글쎄. 분명한 것은 디지털달력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집안의 대소사, 누군가와의 약속, 집사람의 내년 병원스케줄까지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그와 연계된 모든 메모도 그곳에 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 뇌의 한 쪽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책상이나 벽에 보이는 종이달력이 없으면 이 또한 생각의 일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니 디지털달력을 사용한다하여 아날로그 세대의 벽을 넘었다 할 수는 없겠다. 종이달력이 있어야만 세월 가는 걸 세어낼 수 있는 골수 아날로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디지털을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어정쩡한 모습이다.


이제 올해도 내리막의 끝에 와 있다. 아날로그달력에서나 디지털달력에서나 주어진 시간은 매한가지고 세월은 같이 흘러간다. 거기도 쏜살이고 여기도 쏜살이다. 흐르는 세월이 세대를 이어주듯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어져 흘러가는 것 또한 같은 세월이다. 다만 먹을 만큼 먹었는데 또 한 살을 강제로 먹으라 하니 그것이 섭섭할 따름이다.


2017년 12월 2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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