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0-230628
벽오동 심은 뜻은 - 서영훈 - 백산서당
이 책은 2002년 1월 11일에 저자로부터 직접 받은 책이다. 1999년 5월에 3쇄로 발간된 책을 표지 다음 장에 직접 서명을 하여 보내 주셨다. 당시에도 읽기는 읽었지만 책 내용이 워낙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20년 전에 읽었으니 그 때 내 나이가 지금보다는 많이 활동적인 때였고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시기였으므로 내용에 공감하며 읽기는 하였으나 그리 차분한 마음으로 책 내용을 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책을 다시 읽은 느낌은 책속의 모든 내용이 그 때가 아니라 지금의 세상을 두고 하신 말씀 같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는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20여년의 세월이 그리 생각을 바뀌게 만든 모양이다.
저자인 ‘서영훈’씨는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계실 때인 1979년도에 내 결혼 주례를 서신 분이다. 내가 학창시절 적십자활동을 한 게 인연이 되어 흔쾌히 주례부탁을 들어주셨고 당신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적십자활동의 중심에 계셨기 때문인지 책에는 ‘000동지(同志)께 저자 증’이라 적으셨다. 처음 책을 받아 들었을 때 그 ‘동지’라는 말은 참 낯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까지 누구에게서도 ‘동지’라는 지칭은 받아본 적이 없었고 단지 그런 단어는 어렸을 때 보아왔던 ‘독립군 영화’ 대사에만 쓰이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책장을 넘기며 낯설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러나 그 느낌은 그때와는 다르다. 아무에게나 ‘동지’라는 지칭은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입에 저자는 사람의 이목구비(耳目口鼻)에 대한 이야기를 신체적인 면 보다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여 기술하였다. 이 네 기관은 모두 머리에 존재한다. 신체의 모든 기관이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지만 저자는 이 네 가지 기관이 모두 머리에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신체를 종합적으로 통제하고 통솔하는 기관이 머리에 있음을 주목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을 칭하여 ‘이목구비’가 훤칠하다는 신체적 겉모습을 먼저 거론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네 가지 기관의 생물학적 임무도 중요하지만 올바로 보고, 올바로 듣고, 바르게 숨 쉬며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네 기관을 통한 올바른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음을 느꼈다.
시대적 변화에 대하여 저자는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걱정을 하였다. 1996년에 쓴 칼럼이니 지금의 변화된 사회를 그가 본다면 더 많은 사회적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그가 칼럼을 쓸 당시보다는 지금의 노인들을 위한 복지는 많이 좋아지기는 하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남은 인생의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노인들은 각자의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노인들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젊은이들에게도 이러한 노인들의 역량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적었다. 그는 ‘날이 저물어야 비로소 노을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을 알 것이며 ‘해가 저물려 할 때 귤은 더욱 새롭게 향기를 풍긴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아마 지금 노인들이 애써 스스로 즐겨 쓰는 ‘노인은 나이를 먹는 게 아니고 익어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아닐는지.
저자가 지은 이 책의 이름은 ‘벽오동 심은 뜻은’이다. 오동나무 하면 떠오르는 새가 봉황이다. 원래 봉황이라는 새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봉황이 높은 뫼에 올라 큰 소리로 한 번 울기만 하면 어지럽던 난세가 치란(治亂)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봉황이 되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나 봉황이 되랴. 저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오동나무를 심고 싶다고 하였다. 그가 오동나무를 심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봉황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봉황이 날아오게끔 하고자 함’이라고 저자를 평가하는 분이 ‘내가 본 서영훈’이라는 글에서 밝혔다. 저자가 책을 출판할 때 까지도 봉황이 되려는 자들은 많았지만 먼저 오동나무를 심는 자들은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사회적 시선으로 바라봐도 내가 느끼는 것 역시 아직 스스로 오동나무를 심는 자들은 없고 자신이 봉황이라고 착각하는 자들만 많은 것 같다. 오래 전에 나온 노래 중에 같은 제목을 가진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가사 일부가 귓가에 맴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하늘아 무너져라 와르르르...”
그는 적십자 사무총장을 그만둔 훗날 KBS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때 나는 그리로 가는 그가 못내 걱정스러웠다. ‘평생을 적십자에 헌신한 분이 그 험난한 곳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중간에 사장직을 그만 두었다. 아들의 동의도 있고 ‘부자가 같은 주례를 모시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아들이 결혼할 즈음 뵈러 가려는데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내 과한 욕심이었지’라는 생각이 책 내용과 비교되었다. 그러나 내가 최종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할 때 그 분이 해 주신 말씀은 지금도 자식들이나 다른 절친한 젊은 친구들에게 이어주고 있다. “사회에 나가면 특히 남자들은 사람을 많이 사귀어야 해. 다 나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니까. 그러나 사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그가 겪어오고 몸담고 있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사귀어야 해”
2023년 6월 28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gCdjdLo-7-4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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