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보령(2)
많은 곳을 다녀보지는 못했지만 어디를 가든 난 늘 주요 대중교통과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우리나라처럼 잘되어 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떤 도로를 택할 것인가 검색을 하다가 작년보다는 또 다른 도로들이 개통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고속도로를 거쳐 부여로 향하는 길도 시간과 비용의 차이일 뿐 새로 난 도로를 비롯하여 여러 갈래가 있었다. 각 코스의 공통구간 첫 번째 휴게소에서 내비를 켰다. 그곳을 나서면 어느 길로 가야 효율적인지 정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비가 가르쳐준 길도 갈림길까지는 정체되어 있었다. 부여까지 가는 내내 갈림길이나 합류지점에서는 짧은 정체를 보이기는 했지만 휴게소에서 허비되는 시간을 절약했음인지 예상시간에서 20분정도 늦게 목적지인 ‘백제문화단지’에 도착하였을 뿐 순간정체가 여정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백제의 옛 왕궁을 재현한 곳이라 했는데 내가 도착한 날 이틀 후부터 시작되는 백제문화제 준비로 주변은 어수선하였다. 넓은 내부를 편하고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는 ‘사비로열차’는 문화재 준비 때문에 운행이 중단된 상태여서 이용해 보지 못하였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넓은 주차장에는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지만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상식적인 질서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햇빛을 피하여 그늘에 주차하겠다고 타인의 보행에 불편을 주면서 주차금지구역에 주차하는 사람들.
부여는 시(市)가 아니고 군(郡)이다. 그런 선입견이었는지 아니면 돌아보고자 한 곳들이 모두 근접거리에 있어서 그런지 경주보다는 좁은 지역이라 생각되었지만 처음 접해본 부여의 첫 인상은 참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학교지역으로 자동차속도를 통제하는 곳이 많아 운전에 제약은 있었지만 대체로 목적지는 잘 찾아다녔다. 단지 내비에게 고란사 주차장을 물은 건 내 큰 실수였다. 내비가 주차장을 잘못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 주차하면 부소산입구 매표소를 지나 산 하나를 걸어서 올라야 낙화암 및 고란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비되고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힘에 붙인다는 것이었다. 그 산을 오르는 동안 나는 괜찮았지만 햇볕도 따가웠기 때문에 집사람은 많이 힘겨워했다. 오르다 힘들면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여러 곳 필요해 보였지만 오르는 내내 벤치는 발견할 수 없었다.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는 백마강은 황토색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지만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고려시대에 지었다는 고란사 지붕엔 비를 막기 위한 천막이 볼품없이 드리워져 있었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는 이 작은 절 지붕이 하루빨리 원형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강물에 반쯤 잠기어 운행하는 수륙 양용이라는 버스가 그 탁한 강물을 힘겹게 헤치고 있었다.
백마강 가운데서 바라보는 낙화암이 멋있다는 현지인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왔던 길을 다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주차장에 돌아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 고란사 나루터에 돛단배가 들어왔다. 여기서 승객을 태우고 낙화암을 지나 ‘구드래나루터’까지 운행하며 거기서 평지의 길을 10분정도 걸으면 내가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안내인의 말에 얼른 배에 올랐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선장의 육성 안내도 받고 반쯤은 물에 잠긴 시티투어 수륙양용버스의 모습도 바라보며 산을 넘을 때와는 달리 쉽게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분명 집에서 네*버로 검색할 때는 ‘고란사주차장’이 구드래나루터선착장 인근에 있었는데 스마트폰 내비에서는 같은 장소를 입력시켰는데도 불구하고 부소산입구 주차장을 알려준 때문에 산을 넘어야 했던 것이었다. 처음에 구드래나루터에서 고란사까지 왕복하는 배를 탔더라면 낙화암이나 고란사를 위하여 힘겹게 산을 넘지 않았어도 되었을 일이었는데라고 하소연하는 나에게 나 같은 사람이 가끔은 있었음인지 나루터 안내인 왈 “내비에 그렇게 입력하지 말고 ‘구드래나루터 주차장’이라 입력해야 된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 고란사에서 만난 부산에서 왔다는 나이든 부부도 내비에 나처럼 입력하였다가 내가 주차한 곳에 주차하고 산을 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부부는 나처럼 안내를 받지 못하였는지 내가 고란사를 둘러보는 사이에 어느새 강가로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오르고 있었다. 그러면 그 부부는 왔던 길을 되짚어 주차장으로 또 힘겹게 갔을 것이다. 고란사가 있는 강가 나루터에서 150m정도 오르면 고란사, 낙화암, 부소산으로 가는 저마다의 길이 나온다. 따라서 구드레나루터에 차를 주차하고 유람선으로 고란사에 내려 보고 싶은 곳을 보고 다시 고란사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는 왕복코스가 제격이라 하겠다.
구드래나루터에 내려 힘들이지 않고 찾아간 주차장 부근의 곰탕집에 점심식사를 위하여 들어섰다. 인터넷에서 가보라고 권고한 곳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야 했던 그곳의 문을 열자 생고기비린내가 먼저 반겼다. 주방이라면 몰라도 손님들까지 그 냄새를 맡게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고기의 싱싱함을 간접적으로 알리려 함이었을까?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가져다 놓은 김치 한 조각을 입속에 넣었다. ‘김치가 맛있어야 그 집 음식이 맛있다’라는 게 내 평소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인터넷의 현혹에 내가 또 넘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한 곰탕과 갈비탕이 나왔다. 긍정은 부정을 앞지르지 못하는 것인지 한 수저 뜨는 순간 내 친구가 “맛이 없다”고 했다가 어느 음식점 주인에게서 들었다는 말이 떠올려졌다. “맛이 없다가 아니라 내 입맛에는 안 맞는다고 해야죠”라고 했다던 그 말. 지난 1월 겨울바다를 보겠다고 찾아간 정동진의 유명하다던 ‘대게칼국수’가 맹물에 씻긴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도 인터넷 덕분이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계산을 하면서 “잘 먹었습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손님에게 내 카드를 받아든 사람은 ‘차려준 밥상 당연히 잘 먹었겠지’라고 생각하였는지 ‘안녕히 가시라’는 한 마디 말도 없었다. 벗은 신발 신기 어려워 구두주걱은 없냐는 물음에 없다는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부여에서 다시 인터넷 바보가 되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인터넷에 소개된 맛집을 찾을 게 아니라 현지에 가서 선택하라고 급히 권하고 싶다.
2024년 10월 1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pikUuQDfQo 링크
Emmanu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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