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선진국과 교통선진국

korman 2024. 8. 22. 12:50

엊그제 보름달

선진국과 교통선진국

“형님, 그 신호등이 필요한 거예요? 그거 없을 때는 알아서 잘 다녔는데 신호 때문에 아주 불편하네요.”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이웃들과 차 한 잔 같이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평소에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운전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친구가 요새 동네 학교주변 이면도로 사거리에 설치된 신호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전에는 알아서 다녔는데 이제는 신호등의 통제를 받으니 신호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불평이었다. “그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시설인데 좋은 일이지.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설은 많아질수록 좋은 일 아닌가? 운전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양보를 해야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은 우리보다 더해.” 라는 내 대답에 그 친구는 응답은 “뭐 우리가 왜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을 따라 합니까? 운전자의 불편함도 생각해야지.” 

학교 교문 앞이 아니라도 학교에서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 사거리에도 가로등과 X자 횡단보도를 설치해야 한다고 법이 바뀌었는지 동네 학교 주변에 노란색으로 칠해진 신호등이 여러 곳에 생겼다. 이면도로이므로 학교에서 가까운 사거리라 하여도 지금까지는 신호등이 없었다. 따라서 길은 자동차 위주로 운영되었으며 아이들도 자동차를 피하여 요령껏 길을 건너다녔다. 그러다 어떤 성질 고약한 운전자가 누르는 경적에 아이들이나 고령의 노인들이 몹시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런 이면도로에서 조차 자동차 운전자들은 늘 보행인들 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떤 전직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로 이야기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하더라도 간선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도 아닌 좁은 동네 이면도로인데 상식적으로 자동차보다는 보행자들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아 당연하고 ‘이제 선진국 중의 한 나라라고 스스로 광고하는 우리나라의 운전자들이라면 인식이 기존 선진국처럼 보편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친구에게 이야기 하려다 그냥 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사는 동네 이면도로는 왕복 2차선에 시속 30Km로 제한되고 학교 근처 외에는 신호등이 없다. 제한속도가 아니라도 길 양쪽에 불법주차차량이 늘 있으니 규정 속도를 지키기도 어렵다. 며친 전 운전을 하여 큰 길로 빠져 나가다 사거리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있어 일단 멈추었다. 나를 추월할 다른 차로가 없으니 나만 멈추면 뒤에 따라오는 차량들도 모두 멈추어야 하므로 때문에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없으면 위험이 없기 때문에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멈추어 주었고 내가 멈추자 보행인들은 길을 건너려고 차도로 두어 걸음 나오고 있을 때였다. 순간 내 뒤에 오던 외제차 한 대가 반대편 차로를 침범하여 빠른 속도로 나를 추월하고 나갔다. 내가 보행인들에게 길을 건널 수 있게 멈추었고 보행인들이 차도로 내려서고 있는 것을 그도 보고 있었을 텐데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중앙선을 넘었다. 순간 나는 당황하였으나 다행히 길을 건너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내차 앞에서 모두 멈추어 별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곳에 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는 일이 있으므로 그랬다면 별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인식은 언제쯤 보편화될는지.

얼마 전 서울시청 앞에서 나이든 사람이 몰던 차로 인하여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그 사고 이후에도 현재까지 날씨가 더운 탓인지 며칠들이로 인도로 혹은 길가의 가게로 돌진했다는 사고 소식을 많이 접하고 있다. 사고 운전자의 대부분은 65세 이상이 된, 우리사회에서 노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브레이크 대신에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시인한 반면 어떤 사람들은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사고들이 노인층의 인지능력이나 반사신경 등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노인층은 생각과 행동은 느려지는 반면 성격은 차분해지지 않고 오히려 급해진다.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에 대하여 대처하는 순간판단능력도 저하된다. 정상적인 운전을 하다가도 뒤에서 누군가가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려대면 순간 당황하는 것도 노인 행동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런 것들과 자주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가 관계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더불어 이런 고령자 사고 소식들을 접할 때 마다 난 언제 면허를 반납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도 도로에서 나는 요란한 경적소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소음기를 개조하여 거칠고 높은 엔진소리를 자랑하며 시도 때도 없이 동네 뒷골목을 누비는 젊은 친구들도 있다. 우리 운전자들은 경적을 매우 사랑하는 것 같다. 위험한 순간에 경적을 울리는 게 아니고 자기의 우선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마구 울려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주차를 하고 난 후 문을 잠그면 10여 번 이상의 경적이 자동으로 울리게 한 사람들은 어떤 차를 갖고 다닐까?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다른 사람들을 개의치 않는 그런 운전자들도 선진국의 운전자라 칭하여도 좋을지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 우리는 자동차를 소유하였다는 우월성을 보이고 싶은 것일까? 선진국 국민들과 교통선진국 국민들은 별개의 문제일까?

2024년 8월 2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EPvSGIOP7_M 링크

Il Mondo / Piano / Jimmy Fontana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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