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과 이야기

에밀레종의 전설

korman 2007. 11. 5. 08:47

국립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과 종각.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의 설화는 종을 만들 때 시주를 모으는 일반적인 모연(募緣) 설화와 달리 인신공양(人身供養)의 내용인 점에 주목된다. 어린아이를 넣어 종을 완성함으로써 종소리가 어미를 부르는 것 같다는 다소 애절하기까지 한 설화의 내면에는 성덕대왕 신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패와 어려움이 따랐는가를 은유적으로 대변해 준다. 

그러나 실제로 범종을 치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지옥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까지 제도하는 자비심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범종을 완성하고자 살아있는 어린아이를 공양하였다는 내용 자체가 조성 목적에 전혀 맞지 않아 더욱 의구심이 든다. 더욱이 성덕대왕 신종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상원사종과 유사한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었으며 미량의 납과 아연,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황, 철, 니켈 등이 함유되어 있었지만. 

결국 세간에 떠도는 바와 같은 인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인체의 성분이 70%이상 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조 당시에 사람을 공양하여 쇳물에 넣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종이 깨져 완성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과학적으로도 에밀레종의 유아희생 설화는 전혀 근거가 없는 전설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전설이 언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자료도 분명치 않다. 

우리나라 범종의 최대 걸작인 성덕대왕 신종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그것이 비록 전설이나 설화이던 간에 어디에서라도 남아있어야 할 것인데 그러한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한다. 아마도 조선 후기쯤 유림의 세력이 드높았던 경주 지역에서 불교의 인신공양을 범종에 결부시켜 종교적 폄훼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본다.

분명한 것은 성덕대왕 신종이라는 이 종의 이름을 명문 첫머리에 두어 일반적인 종과 달리 그야말로 가장 신성스런 종이란 점을 처음부터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된 명문에서 보이듯 일승의 원만한 소리인 부처의 말씀과 같은 종소리를 들음으로써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는 범종의 참 뜻을 성덕대왕 신종은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성덕대왕 신종이라는 어엿한 본명 대신 전혀 근거도 없고 왜곡된 별칭인 에밀레종으로 부르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발췌 :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④ 성덕대왕신종 (下)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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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야화] <20>에밀레종
여자아이 넣고 주조했다?
성분검사땐 ‘뼈’ 검출 안돼 · 역사학계도 “가능성 희박”
신형준 기자 hjshi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력 : 2007.11.05 00:25
 
 
 
 
 
지난 1일, 광주(光州)시민의 날 행사에서 금남로 1가에서 ‘민주의 종’ 타종식이 열렸다. 강원도 화천군은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을 추진하며 지난 달 30일 평화의 댐에서 착공식을 가졌다. 진리나 자유, 평화를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상징물은 주로 종이다.

우리 문화재 중 최고로 칠만한 종은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神鍾·일명 에밀레종)일 것이다. 국보 36호 상원사종(725년 제작)에 이어 두 번째(771년 제작)로 오래됐다. 종에 얽힌 전설이나 소리의 아름다움 등에서 다른 종을 압도한다. 그런데, 수십 차례 주조(鑄造) 실패를 거듭하다 여자 아이를 넣자 종이 완성됐다는 에밀레종의 전설은 사실일까?

1998년 국립경주박물관은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학술조사를 하면서, 종의 성분 분석도 했다. 의뢰를 받은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종 12군데에서 샘플을 얻어 극미량원소분석기로 성분 분석을 했다. 1000만분의 1 이상만 들어 있어도 성분 분석이 가능한 기기였다. 그 결과, 뼈의 성분이 되는 인은 검출되지 않았다. 성분 중 85%는 구리였으며, 주석은 14%였다. 당시 연구를 맡았던 신형기 박사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무조건 전설의 근거가 없다고 얘기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사람의 비중은 구리보다 가벼워서 설령 사람을 넣었더라도 ‘성분’이 위로 떴을 것이고, 제작 당시 이것을 ‘불순물’로 봐서 제거했다면 인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神鍾·일명 에밀레종)

역사학계는 지증왕이 죽었을 때(502년) 순장을 폐지시켰던 신라가 거의 3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종을 잘 만들려고 산 사람을 끓는 구리물에 넣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문헌 상으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지영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와 불교미술사학자로 활동 중인 성낙주 서울 중계중 교사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에밀레종에 대한 가장 오래된 우리 기록은 1935년 간행된 ‘조광(朝光)’ 1호에 민속학자 송석하 선생이 쓴 것이다. 함경도나 평안도 지방의 무당 노래(무가·巫歌)에 에밀레종 전설과 비슷한 구절이 있으며, 한말(韓末) 외국 선교사들이 채집한 설화 채록본에도 에밀레종 전설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만약 에밀레종 전설이 사실이라면, 8세기 후반 에밀레종을 만들면서 정말 사람을 넣었다면, 왜 1100여 년 동안 관련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이와 관련한 설화나 전설의 형태로 기록을 찾게 됐는지 의문인 것이다. 삼국사기는 물론, 불교 이야기를 많이 기록한 삼국유사에도 ‘에밀레종에 여자 아이를 바쳤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이 교수는 “통일신라나 고려 때의 에밀레종 전설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이 전설을 후대의 창작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07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