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경남 진주시 삼선암 범종 (삭실범종) (보물 1698호)

korman 2008. 4. 11. 00:03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21 진주 삼선암 소장 고려종

전형에서 벗어난 고려시대 이색 동종

 

흔히 표현되는 비천상, 보살상 생략

종신크기에 비해 상·하단 과장 표현

6개 연뢰 표현된 독특한 요소 인정

지방문화재서 보물 1698호로 승격

 

진주 삼선암 소장 동종 정면. 높이 64.2cm, 구경 37.6cm, 보물 제1698호.

이 범종은 지난호에 소개된 일본 토쿄(東京)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건통7년명(乾通七年銘: 1107년) 종과 마찬가지로 연곽(蓮廓) 안에 9개씩의 연뢰(蓮)가 표현되는 한국 종의 전형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건통7년명 종이 유일하게 한 연곽 안에 4개씩의 연뢰가 표현된 종이라 한다면 이 종은 그와 달리 6개만 장식되었는데, 두 종은 거의 유사한 시기에 만들어진 이례적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종을 소장하고 있는 진주의 삼선암(三仙庵)은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 820-3번지에 위치한 작은 절이다. 그러나 원래 이 종은 1951년 지금의 진주시로 소재가 바뀐 진양군(晉陽郡) 수곡면(水谷面) 토곡리(士谷里)의 마을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개간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고 황수영(故 黃壽永) 선생이 <고고미술(考古美術)>1권2호 합집본1권(合集本1卷·1979)에 ‘고려 청동 범종의 신례–기1(高麗靑銅梵鐘의 新例, 其一)’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바 있다.

 

종이 발견된 밭 주위가 원래 폐사지(廢寺址)였던 곳으로 파악되지만 주변 지역에 대한 정밀한 조사는 별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오랜 기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5호(1972. 2. 12 지정)로 지정되어 오다가 필자에 의해 이 범종에 대한 가치가 정밀 조사가 이루어진 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게 되어 현재 보물 1698호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범종의 외관은 고려 종의 양식적 특징을 잘 구비하고 있는데, 총고는 64.2cm이고 입지름이 37.6cm로서 크기 면에서는 중형 종 가운데서도 작은 편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옅은 녹색 빛이 감도는 삼선암 동종은 2단으로 이루어진 낮고 편평한 천판(天板) 위에 음통(音筒)을 휘감고 있는 한 마리의 용뉴가 머리를 숙여 입안에 있는 보주로 천판과 연결된 모습이다. 용의 머리 위로는 뿔과 갈기가 솟아있으며 뭉툭한 코앞으로 윗입술이 위로 말려 있다. 두 발 가운데 뒷발은 뒤로 뻗어 천판을 누르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 올렸지만 현재 발 앞쪽 부분이 반 이상 절단 탈락되어 정확한 형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11세기 범종 요소가 남아있는 천판과 용뉴 음통.

용뉴는 세장하면서도 여의주로 천판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에서 국립광주박물관 소장의 장생사종(長生寺鐘: 1086년)과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목 뒤로 연결된 음통은 가늘고 길게 솟아있는데, 대나무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줄기가 옆으로 갈라진 독특한 모습에서 연판문을 변화시킨 형태로 추정된다.

 

이러한 음통은 앙복련의 연판을 중첩 배치하거나 화문 등으로 장식한 고려 전기 종에 비해 어딘지 새로운 형식화가 이루어진 느낌이다. 독특하게 천판의 외연을 둥글게 돌아가며 구획을 만들었으나 고려 전기 종에서 자주 보이던 천판 외곽을 두른 연판문대는 생략되었다. 대신 띠처럼 주물 자국이 남아있으며 중앙으로 가면서 불룩이 솟아있다. 아마도 용뉴 부분을 따로 붙여 주조할 때 생긴 흔적으로 판단된다.

 

종신의 외형은 그 외형의 선이 상대(上帶)를 지나면서 불룩해지고 하부 쪽으로 내려가면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가 종구(鐘口) 쪽에 오면 갑자기 직선화된 모습이다. 이러한 종신의 외형과 아래쪽이 통통한 모습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녕4년명종(1058년)과 같은 11세기 종신의 외형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종에는 고려 종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종신의 비천상, 불 보살상과 같은 부조상(浮彫像)이 생략된 점도 매우 이례적인 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 시기 범종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천판 외연의 연판문대나 종신의 한쪽에 배치되는 위패형(位牌形)의 명문구도 생략되었다.

 

종신의 문양 가운데 그나마 두드러지는 부분은 상, 하대와 당좌 부분이다. 상대와 하대는 거의 동일한 문양으로 처리되었는데, 상대는 종신에 비해 지나치게 두터운 편이다. 상대에는 만개한 연화문이 시문된 반원권(半圓圈) 문양을 방향을 바꾸어 가며 연속으로 배치하였고 이 반원권 사이를 잎이 촘촘한 당초문으로 연결한 모습이다.

 

상대 아래 붙은 4개의 연곽은 역사다리꼴 형태이면서 다른 종에 비해 왜곡 현상이 심한 이유는 종신의 외곽이 급격히 부풀어진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나치게 커져 거의 종신 중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연곽대에도 상대와 동일한 반원권 연판문과 당초문이 시문되었고 하대 역시 동일한 문양 구성을 보이고 있어 동일한 문양판을 반복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곽 내부 연뢰는 둥근 자방 주위로 4엽과 간엽(間葉)을 둔 돌기 없는 납작한 모습으로서 그 숫자도 9개에서 6개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종신 하대 쪽에 치우쳐 커다란 당좌(撞座)가 앞, 뒤로 배치되었는데, 당좌의 중앙에 작은 연과(蓮顆)를 둔 자방(子房) 주위로 만개한 4엽의 연판과 연판 내부에 화려한 꽃술 장식이 첨가된 4엽의 활짝 핀 연화문을 시문하였고 그 사이마다 간엽(間葉)을 두어 이 전체를 연주문 원권(圓圈)으로 두른 모습이다. 다른 문양에 비해 당좌가 더욱 고부조로 처리되었고 세부의 표현도 섬세한 편이어서 이 범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명문을 기록하지 않아 정확한 제작연대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고려 범종은 지금까지 편년이 가능한 범종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가장 두드러진 양식적 차이가 바로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라 불리는 상대 위에 솟아난 장식대에 있다. 이 장식대의 유무를 중심으로 크게 고려 전기와 후기 종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그 시기는 대체로 10세기 중반부터 12세기 후반까지가 고려 전기이고 13세기 초부터 말까지를 고려 후기로 나누고 있다.

 

따라서 일단 삼선암 종은 아직까지 입상화문대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12세기 후반보다는 앞선 시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여기에 종신 상부에 입을 붙여 보주로 연결시킨 용뉴의 모습과 반원형을 이루며 높게 도드라져 있는 천판의 모습에서 오히려 11세기 범종의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고부조로 처리돼 섬세함이 돋보이는 당좌.

더욱이 건통7년명 종(1107년)과 마찬가지로 연뢰의 수를 단축시킨 새로운 변화의 시도는 이 두 종이 시기적으로 유사한 점을 시시해 준다. 종신의 일부에 약간의 구멍이 나있고 지하에서 출토된 관계로 약간의 손상과 부식이 남아있지만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이처럼 삼선암 종은 비록 종신에 비천상이나 명문은 남아있지 않지만 출토지가 확실하면서도 6개의 연뢰가 표현된 독특한 요소를 지닌 고려 12세기 전반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여음(餘音)

이 범종처럼 종신에 불보살상과 비천상 등의 부조상이 생략된 종이 몇 점 남아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 니가타현(新瀉縣) 사도가시마(佐渡島) 죠안지(長安寺)에 소장된 고려 종으로서 이 종과 형식적인 면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주조에 있어 장안사 종은 훨씬 뛰어난 기술적 요소를 보여주는 반면에 삼선암 종은 화려한 문양을 지녔지만 그 세련됨이 어딘지 부족하고 서툴다. 여기에 제작자도 전혀 기록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삼선암 종을 만든 장인이 당시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지방 장인 출신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불교신문3353호/2017년12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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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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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승격 2010년 12월 21일 보물 1698호로 승격)

진주 삼선암 동종 (晋州 三仙庵 銅鍾) 

 

 

 

 

 

 

 

 

 

 

 

종 목 보물  제1698호
명 칭 진주 삼선암 동종 (晋州 三仙庵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10.12.21
소 재 지 경남 진주시 의병로111번길 17, 삼선암 (상봉동)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삼선암
관리자(관리단체) 삼선암

 

현재 삼선암 대웅전에 봉안된 이 작품은 원래 1951년 진양군(晉陽郡, 지금의 진주시) 수곡면사곡리(水谷面士谷里) 삭실 마을에서 한 농부가 사지를 개간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동종은 전체높이가 64.2cm이고, 입지름이 37.6cm로 그 크기는 중형의 속한다.


전체적으로 옅은 녹색빛이 감도는 삼선암 동종은 2단으로 이루어진 낮고 평평한 천판위에 음통을 휘감고 있는 단룡의 종뉴를 갖추었다. 동종의 종형은 외선이 천판 아래로부터 중ㆍ하단까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다가 종구에서 갑자기 내부로 꺾기고 있어 종복이 불룩한 모습을 나타낸다.

종신에는 다양한 도안을 장엄하였는데, 그 구성은 간결하다. 천판 바로 아래에는 연화당초문을 두껍게 부조하였으며, 그 아래로 4개의 연곽을 배치하였다. 연곽의 전체형태는 밑변이 더 긴 사다리꼴로 연화당초문과 연주문을 이용하여 연곽대를 구획하였다. 그 내부에 만개된 연뢰는 4개만을 간략하게 장식하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2개의 당좌를 배치하였는데, 당좌를 살펴보면, 중앙에 활짝핀 연꽃이 있고, 그 외곽으로 연주문을 시문하여 아름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마지막 하단에는 상단에 부조한 연화당초문과 동일한 띠 장식을 장엄하였다. 전체적으로 약간의 손상과 부식이 남아있지만 보존 상태는 매우 좋은 편으로 고려 종 가운데 출토지가 확실한 점에서 연구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비록 종신에는 비천상이나 명문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러한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이 삼선암 종은 고려 전기 양식을 잘 구비하고 있는 그리 많지 않은 고려 전기 종의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2016년 10월 30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1698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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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암 고려 동종

 

• 코드: cp0501b03401 

 

• 명칭 : 삼선암고려동종 

 

• 지정 : 시도유형문화재 55호(경남) 보물 1698호

 

• 조성연대 : 고려 13∼14세기 추정 

 

• 제원 : 전체높이 64㎝, 입지름 37.5㎝ 

 

• 소재지 : 진주 삼선암 

 

• 관리자 : 진주 삼선암 

 

• 설명 

 

이 범종은 1951년경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속칭 ‘삭실’에 있는 옛 절터에서 밭갈이하던 스님에 의해 발견된 후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재질은 청동이다. 

 

종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엎어놓은 항아리 형으로,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뉴가 있는데 현재 일부가 결손 되어 있다. 

 

음통은 용머리보다 더 높게 솟아 있으며, 신라 동종에서 보이는 반원권(半圓圈) 문양을 약식화한 것으로서 상대는 연꽃무늬를 겹쳐서 배치하였고 하대 역시 같은 형식으로 동일한 무늬를 넣었다. 상대와 직접 연결한 네 군데의 연곽은 꽃무늬로, 연곽의 테두리에는 점선이 돋을새김 되어 있어 조형미가 돋보인다. 연곽 안에는 4중의 연잎으로 형성된 연뢰가 6개씩 조각되어 있는데 보통 9개의 연뢰나 연좌로 표현한 것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대와 연곽 사이에는 당좌가 두 군데 만들어졌다. 넉 장의 펼쳐진 연꽃무늬가 시원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동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천상이나 보살상이 없는 점이 이 종의 특징이다. 몸체의 크기에 비해 상대․하대 부분과 연곽, 당좌 등이 과장될 정도로 크고 선명하게 표현되었지만, 전체적인 조형미는 잃지 않고 있다.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사찰 홈페이지>

 

 

 

 

 

 

 

 

 

 

 

출처 : 한국컨텐츠진흥원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45&content_id=cp050100450001&search_left_men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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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1일 발췌

 

경남 진주시 삼선암 고려범종

(삭실범종)

(경남유형문화재 제55호)

보물 1698호로 승격

 

 

 

 

삼선암고려동종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5호 보물 1698호로 승격
소재지      진주시 상봉동(상봉서동) 878 (삼선암)
지정일자   1972년 2월 12일
규모         높이 64cm 구경 37.5cm (청동)
시대         고려시대

 

상세설명

범종은 수곡면 사곡리(水谷面 士谷里) 속칭 "삭실"의 옛 절터에서 경작중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수십년 전부터 삼선암(三仙庵)에서 관리하고 있다.
종의 상대(上帶)에는 연화문을 배치하였는데 일반적인 형식으로 연엽(蓮葉)을 나열한 것이 아니고 중변연화문 (重辯蓮花文)이면서 마치 원권(圓圈)안의 것이 반조각씩 보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암막새 기와를 반쪽 정도씩 지그재그로 열거해 놓은것 같으며 그 사이사이의 공간에는 연자(蓮子)를 시문하여 메우고 있으며, 하대(下帶) 역시 상대(上帶)와 같은 형식으로 동일한 문양을 넣었다.
상대 밑의 동체(胴體)에는 4개소에 유곽(乳廓)이 배치되었는데 상대에 연결되어진 방형 (方形) 유곽은 보상화문 (寶相華文)으로, 유곽의 맨 가장자리에는 점선이 양각되어 조형미를 돋보이게 하였다. 유곽 안에는 연엽(蓮葉)으로 형성된 6유(乳)가 각각 뚜렷이 표현되었고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다른 문양이 보이지 않는다. 2개소의 당좌(撞座)는 연자나열선(蓮子羅列線)의 원권 안에 주조되어진 연꽃으로 표시 하였다. 정상부의 용뉴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음통(音筒)이 용뉴보다 높이를 더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균형으로 보아도 그 조형미가 돋보이는 아담한 고려시대(高麗時代)의 범종이다.

 

출처 :  진주시 사이트 2008년 4월 11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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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9일 발췌

 

폐사지/삭실범종

-->▲ 1951년 수곡면에서 출토돼 진주 삼선암에 소장된 삭실범종.<사진출전:진주의 뿌리>

스님은 떠나고 절은 폐허가 됐다. 그러나 중생을 구제하던 삭실 옛 절의 종소리가 천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삭실범종'은 사곡리 삭실마을 뒷산 텃밭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사곡범종(士谷梵鍾)'이라고도 부른다. 삭실범종이 발견된 것은 로마시대의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이 발견된 것처럼 아주 우연한 일에서 비롯됐다.
1951년 당시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삭실마을의 옛 절터에서 이 마을의 대성가문인 진양 하씨의 한 가난한 농부가 천여년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던 삭실범종을 발견하면서 이 종은 세상에 알려졌다.
발굴된 범종은 엿장수의 손을 거쳐 진주 삼선암에 보관되었는데 다시 대아고로 옮겨졌다가 또다시 삼선암에 옮겨져 현재는 이곳에서 계속 보관되고 있다.
삭실범종을 발굴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당시 이 마을의 한 농부가 가세가 매우 곤궁하여 가난에 굶주리고 있었다. 그는 농사지을 땅을 찾아봤지만 웬만한 땅이라도 다 주인이 있고 소작인들이 있었다.
사실상 한국전쟁 중이어서 그런지 밭 한 뙈기라도 더 붙여 먹을려는 소작인들이 너무 많은데다 경작할 만한 공한지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경작하고 있어 결국 농사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폐사지로 눈길을 돌렸다. 단지 폐허가 돼 쓸모없는 땅으로 버려진 옛 삭실의 절터만이 그가 농사지을 수 있는 유일한 땅이었던 셈이다.
결국 그는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은 절터를 밭으로 일구기 시작했다. 파손된 기와장을 일일이 옮기고 돌을 치우고 하면서 한참 일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땅속에서 아기 울음소리 같은 기이한 소리가 들려와 곡괭이질을 멈추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농부는 소리가 들리는 그곳을 조심스럽게 파 보았더니 대나무 모양의 음통이 보이고 다시 더 파내려 가니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뉴가 보였다. 그는 좀 더 열심히 파보았다. 마침내 고려초기의 삭실범종이 나왔다. 높이 64㎝, 구경 37.5㎝인 고려초의 청동범종이었다.
얼마나 땅속의 어둠에 갇혀 있었는지 모르지만 태양에 드러난 삭실범종의 모습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러나 배고픈 식솔들이 떠오른 농부는 이 종을 돈 몇푼 받고 그만 엿장수에게 팔아버리고 말았다.(지금도 이렇게 했다가는 문화재관리법 위반으로 당장 처벌받게 된다.)
발견되자마자 엿장수의 손수레에 실려간 범종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고물상에 팔려 구리로 녹여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진주 삼선암의 신도들이 급히 쌀 한 섬을 구해가 엿장수에게 주고 종을 가져옴으로써 삭실범종을 간신히 찾아올 수가 있었다.
이 삭실범종은 그후 1960년 황수영 박사가 고려초기의 중요한 범종으로 평가해 고고미술지에 발표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1972년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삭실범종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삭실범종을 보기 위해 종을 보관하고 있는 상봉서동 878번지에 있는 삼선암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구나 삭실범종을 훔치려는 문화재털이범들도 눈독을 들여 한 때 이 종은 사기꾼의 농간으로 도난 당한 일도 있었다.
따라서 이곳 삼선암 주지스님은 진주시의 허가를 받지 않은 방문자에게는 삭실범종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
실례로 범종연구가이며, 한국기계학회 회장인 염종하 교수가 삭실범종을 실사하러 왔는데, 삼선암에서 퇴짜를 받고 돌아갔다가 다시 시청의 소개로 겨우 범종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삭실범종은 비록 삭실에서 출토됐지만 보관장소가 삼선암이기 때문에 '삼선암 고려동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출처

블로그 > 상승불멸 불사조

원본

http://blog.naver.com/phoenix336/10016250450

사진: 진주문화원

2007년 12월 29일 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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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3일 발췌

 

 


삼선암고려동종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55호 (진주시)
보물 1698호로 숭격
 
명     칭 삼선암고려동종(三仙庵高麗銅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1972.02.12
 
소 재 지 경남 진주시  상봉서동 820-3
 
시     대 고려시대
 
소 유 자 삼선암
 
관 리 자 삼선암
 
상 세 문 의 경상남도 진주시 문화관광담당관실 055-749-2053
 
 
일반설명 | 전문설명
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옛 절터에서 발견된 종으로, 총 높이 64.0㎝, 입 지름 37.5㎝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여의주을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인데, 현재 일부가 결손되어 있다. 종의 윗부분 띠에는 연꽃무늬를 겹쳐서 조각하였다. 아랫부분 띠 역시 같은 형식으로 동일한 무늬를 넣었다. 몸체에는 4곳에 유곽이 배치되었는데, 윗부분 띠에 연결하여 만든 정사각형의 유곽은 꽃무늬로, 유곽의 맨 가장자리에는 점선이 양각되어 있어 조형미가 돋보인다.

유곽 안에는 연잎으로 형성된 6개의 유두가 뚜렷하게 표현되었고, 유곽과 유곽 사이에 다른 문양은 없다. 2곳의 당좌는 바깥쪽에 연이은 구슬무늬를 돌리고, 중심은 4중의 연꽃으로 표시하였다.

고려 후기 동종의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음통이 용뉴보다 높이를 더하고 있음에도 전체적인 균형으로 보아, 오히려 그 조형미가 돋보이는 아담한 고려시대의 범종이다.
문화재관리청 2007년 6월 3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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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암(三仙庵) 범종(梵鍾)

 

 

 

소재지(所在地) : 경상북도(慶尙北道) 진주시(普州市) 상봉서동(上鳳西洞) 88
연 대(年 代) : 12세기 경
지정번호(指定番號) : 경상북도(慶尙北道)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第55號 보물1698호로 승격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65cm 종신고(鍾身高); 44cm 용뉴고(龍鈕高); 10cm 용통경(甬筒徑);
3.5cm 상대폭(上帶幅); 6cm 유곽폭(乳廓幅); 13cm 유곽장(乳廓長); 14.5×14cm
당좌경(撞座徑); 12.5cm 하대폭(下帶幅); 7cm 구경(口徑); 38cm 종구후(鍾口厚);
2.6cm


本 종(鍾)은 1951年경 경상남도(慶尙南道) 진양군(普陽郡) 수곡면(水谷面) 토곡리(土谷里)
일명사지(逸名寺址)에서 발견(發見)되어 진주시(普州市) 상봉서동(上鳳西洞) 소재(所在) 삼
선암(三仙庵)에 보관(保管)되어 왔다. 그러다 1973년(年) 봄 대아고등학교(大亞高等學校) 박
물관(博物館)으로 이전보관(移轉保管)되어 오다가 다시 삼선암에 보관되어 있다. 本 종(鍾)
에 대하여 처음 소개된 것은 1960年 『고고미술(考古美術)』 1卷 2號에 간단하게 소개된 바
있다.30)
종(鍾)의 형상(形像)을 살펴보면 종(鍾) 전체(全體)는 중종(中鍾)에 속(屬)하는 것으로 천
판상(天板上)에 있는 용뉴(龍鈕)와 용통(甬筒)은 간소하게 처리되어 있으나 현재(現在)는 용
뉴(龍鈕) 부분(部分)이 결실되어 없다. 상하대(上下帶)의 문양(紋樣)은 신라(新羅) 범종(梵
鍾)에서 보이는 반원권(半圓圈) 문양(紋樣)을 약식화한 문양대(紋樣帶)로서 연지문(連枝紋)
반원내(半圓內)에 중판화문(重瓣花紋)으로 주문대(主紋帶)를 이루고 있다. 특히 하대(下帶)의
밑 부분(部分)과 유곽(乳廓)의 외주(外周)에는 연주문대(連珠紋帶)로 처리하였으며, 유곽(乳
廓) 內에는 사중판화문좌(四重瓣花紋座)된 유좌(乳座)를 6개(個)만 배치한 것이 다른 고려종
(高麗鍾)과 비교하여 특이한 점(點)이다. 2個의 당좌(撞座)는 외주(外周)에 연주문대(連珠紋
帶)를 돌리고 중심(中心)에 26과(顆)를 갖춘 자방(子房)을 중심(中心)하여 4중판화문(重瓣花
紋) 당좌(撞座)로 되어 있으며 비천(飛天)과 보살(菩薩) 등은 본(本) 종(鍾)의 종복(鍾腹)에
서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전체적(全體的)으로 보아 종신(鍾身)의 크기에 비하여 상대(上帶)․하대(下帶)․당좌(撞
座)․유곽(乳廓) 등의 처리는 과대하게 표현(表現)된 것이 종신(鍾身)의 비례와 맞지 않고
있다. 그러나 本 종(鍾)의 제작(製作) 수법(手法)과 문양(紋樣) 처리 등은 여러 가지 점을 고
려하여 볼 때, 13∼14세기경으로 추정한 것보다31) 역시 1,2세기가 앞서는 12세기경의 작품
(作品)으로 보는 견해와 동일하게 본다.

 

출처 :

1996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 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동현金 東 鉉)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