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범종의 용

korman 2008. 7. 5. 14:23

내소사 고려동종(보물 제277호)의 용뉴.
큰 얼굴에 허리를 고리 모양으로 구부린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부안21

 

 

우렁찬 종소리의 근원, 범종의 용


용은 장식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범종을 메달기 위한 목적으로 종 위쪽에 만들어 놓은 장치를 종뉴라 하는데, 대부분 용의 형상을 취하고 있어 용뉴라고도 한다. 그런데 종 위에 앉아 있는 용을 특별히 포뢰(蒲牢)라고 한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에 의하면 포뢰는 용의 또 다른 화현(化現)이다. 포뢰는 바다에 사는 경어(鯨魚 ; 고래)를 가장 무서워하여 그를 만나면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종은 그 소리가 크고 우렁차야 한다. 옛사람들은 포뢰 모양을 만들어 종 위에 앉히고 경어 모양의 당(撞)으로 종을 치면, 경어를 만난 포뢰가 놀라 큰 소리를 지르게 되며, 그래야 크고 우렁찬 종소리가 난다고 믿었다. 범종의 소리를 경음(鯨音)이라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포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범종 장식물이다. 범종 위에 포뢰를 앉히는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는데, 포뢰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인 [삼국유사] 권3 <탑상> 제4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조를 보면, “아래로 세 개의 자금종을 달아놓았는데, 모두 각(閣)과 포뢰가 있고 경어로 당(撞)을 삼았다”고 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의미 없는 둥근 통나무 형태의 당으로 종을 치고 있지만, 승주 선암사에서는 비늘문양이 뚜렷한 물고기 형태의 당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범종각에 매달려 있는 이 당은 물론 근세에 만든 것이지만, 그 형태에 있어서 경어 모양의 당으로 종을 쳤던 옛 전통의 희미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종이 울리면 돌아다니는 중들이 다 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은은히 염불하는 소리가 나는 듯 하였으니 그 중심체는 종에 있었다' 종은 절의 법구(法具)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승도들은 우렁찬 소리가 나는 범종을 제작하려 했고, 그 묘책으로 종 위에 포뢰를 앉혔던 것이다.

포뢰를 앉힌 범종 가운데 볼만한 것으로는 평창 상원사 범종, 부안 내소사 범종, 공주 갑사 범종, 양양 낙산사 범종, 화성 용주사 범종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상원사 범종은 현존하는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종이다. 용뉴의 머리는 매우 크고 몸은 음관(音管)에 붙어 있으며, 종의 정상에 발을 버티고 있다. 아래턱을 종 표면에 댄 채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 크게 놀라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다. 내소사 범종의 용뉴도 큰 얼굴에 허리를 고리 모양으로 구부린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갑사의 범종에는 하나의 몸에 얼굴이 두 개인 용을 앉혔는데, 윗입술을 위로 젖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이상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용뉴는 긴장된 자세로 버티면서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포뢰와 경어에 관한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참고문헌: 허균의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출처 : 부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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