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청림사 銅鐘이 내소사로 간 까닭

korman 2008. 7. 5. 14:28

내소사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보물 제277호로 지정된 내소사고려동종은 원래는 내변산 청림사에서 주조된었다. 종신 하단에 '靑林寺銘'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부안21

청림사 銅鐘이 내소사로 간 까닭...


보물 제277호 내소사 고려동종은 높이 1.03미터,
구경 0.67미터의 범종으로 고려시대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장엄하고 미려한 동종이다.
종신 하단의 撞座와 당좌 사이에는 前後 3種의 鐘銘과 鐘記가 있어.
주조년대 등이 명확하다.
이 명문들을 종합해보면,
이 종은 고려 고종 9년(1222년)에 청림사에서 주조되었고,
청림사 폐사 후 땅속에 묻혀 있다가 조선 철종 4년(1853)에
내소사로 옮겨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종이 내소사로 옮겨진 데에는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효산 스님한테 들어보기로 하자.
(1990년 전라북도 발행, ‘전설지’)

靑林寺는 변산 안의 상서면 청림리에 있었던 절로
변산의 4대사찰 중의 하나였는데 언제 불타 없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청림사 터에서 나온 동종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이 절이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절이란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靑林寺銘
扶寧邊山中有靑林
三韓前寺革古鼎今...(하략)

절이 있었던 터에는 청림리라는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
마을 한복판에 묘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 예전에 탑이 서 있었다하여
지금도 ‘탑거리’라고 부르고 있으며,
마을 남쪽 개울가를 ‘부둣거리’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마도 지난날 부도가 있었던 자리가 아닌가 한다.
옛날 청림사가 한창 번창하였을 때는
이 마을 입구의 큰길 거리에 ‘중장(僧市)’이 섰다고 전해지고 있다.
(<東國輿地勝覽>에는 靑臨寺로 기록되어 있음.)

아무튼 절이 불타버리고 절의 경내였던 자리에는 마을이 들어섰는데,
그때 대웅전 자리에는 지금 부안김씨 집안의 재실이 들어서 있다.
이 재실 지을 때 일꾼들이 지경을 닦느라고 땅을 파니
땅속에서 큰 종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종이 바로 보물 제277호 내소사고려동종이다.
이 때가 철종 4년(1853년),
그런데 종을 땅속에서 캐어 아무리 쳐봐도
도무지 소리가 나지 않는 벙어리 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궁리 끝에
종을 치면서 변산 안의 모든 절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개암동의 개암사!’

‘중계의 실상사!’

모든 절 이름을 다 부르며 쳐보아도 소리가 나지 않더니

‘돌개(石浦)의 내소사!’

하고 부르면서 종을 치니까 비로소

‘우웅...’

하고 맑고도 우렁찬 종소리가 변산 안에 가득히 퍼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종을 내소사로 옮겨왔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글쓴이 : 허철희  

 

출처 : 부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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