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호림박물관 소장 무인명종 [戊寅銘鐘]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19호)

korman 2008. 11. 23. 16:51

호림박물관 소장 무인명 청동종 [戊寅銘鐘]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19호)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19호

명 칭 청동 종 (靑銅 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点

지정(등록)일 2007.01.11

소 재 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152길 53 (신림동, 호림박물관)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상 세 문 의 서울특별시 관악구 문화공보과 02-880-3433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검색창 2017년 3월 18일 현재 (상세설명 없음)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219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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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췌 2014년 1월 27일 현재

 

 

 

상세설면 :

용뉴(龍鈕)의 용은 앞을 보고 있으며, 음통(音筒)은 간략하다. 천판(天板)의 끝은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로 장식하였다. 몸통의 상대(上帶)는 당초문(唐草文)을 바탕으로 한 화문(花文)으로, 하대(下帶)는 연당초문(蓮唐草文)과 연주문(連珠文)으로 장식하였다. 유곽대(乳廓帶)에는 아홉 개의 종유(鐘乳)가 있다. 몸통에는 천인상(天人像)과 당좌(撞座)를 배치하였다. 몸통의 일부에 공주(公州)의 기연원(祇淵院)에서 6근을 들여 무인년(戊寅年) 10월에 제작하였다는 내용을 기록하였다. 1278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銘文 : 公州地祇淵院 縣於小鐘同心 造成者香軀 慶元大明□之等 如願成就□□入 鐘六斤 匠人 朗鑒戊寅十月日

 

출처 : 호림박물관 사이트 2014년 1월 27일 현재

바로가기 : http://www.horimmuseum.org/museum/htm/relic02_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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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췌 2008년 11월 23일 현재

보완 2014년 1월 27일

 

무인명종 [戊寅銘鐘]

 

 

유형 : 유물

  • 시대 : 고려/고려후기
  • 성격 : 불구, 종
  • 소장처 : 호림박물관
  • 제작시기·일시 : 1278년(충렬왕 4)
  • 수량 : 1구
  • 재질 : 구리
  • 크기(높이, 길이, 두께, 너비) : 높이 25.0㎝
  • 관리자 ; 호림박물관
  • 정의 : 고려시대의 범종
  • 냐용 :

    높이 25.0㎝. 호림박물관 소장. 용뉴(龍鈕 : 종의 꼭지부분 장식)는 13세기에 제작된 일반적인 종들처럼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고 있으며 벌어진 입안으로는 보주(寶珠)가 표현되지 않았다. 용뉴 뒤에 붙은 짧은 음통(音筒)은 아무런 장식이 없이 간략화되어 의미없는 장식물로 전락되었음을 볼 수 있다.

    천판(天板) 외연에는 사각의 연판과 내부에 화문장식이 첨가된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가 높다랗게 솟아 있고, 이와 붙은 상대(上帶)에는 띄엄띄엄 배치된 화문과 그 사이를 당초문으로 연결시켰다.

    이와 달리 하대(下帶)는 화문 없는 연당초문(蓮唐草文)으로 장식하고, 그 하단부에 다시 1줄의 연주문(連珠文)이 첨가되었다. 상대 아래 붙은 사각의 유곽대(乳廓帶)에는 간략한 당초문으로 장식하고 내부에 간략화된 9개씩의 작은 종유(鐘乳)를 조밀하게 배치하였다.

    한편 종신의 앞뒤 두 곳에는 구름 위에 앉아 합장한 모습의 보살상을 장식하였다. 이들은 그다지 섬세하지 못하고 세부표현이 분명치 않지만, 머리 위에는 삼각형의 보관을 쓰고 두광(頭光)을 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보살상 사이를 번갈아 가며 원권(圓圈) 없이 연과(蓮顆)와 8엽의 연판문으로 장식된 당좌(撞座)를 앞뒤 두 곳에 배치하였는데, 이 역시 그 본래의 구실보다 장식적인 의미가 더욱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종신의 한쪽 여백면을 택해 7행 40여자의 오목새김명문을 기록하였다. 자획이 불규칙하여 판독되지 않는 글자가 일부 보이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같다.

    ‘公州地修(?)淵院□於小鐘同心慶元大明□之等如願成就之信入重六斤 匠人朗□戊寅十月 日(공주지수(?)연원□어소종동심경원대명□지등여원성취지신입중6근 장인랑□무인10월 일)’로서 공주의 수(?)연원이라는 곳에서 6근의 중량을 들여 무인년 10월에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무인년은 1218년과 1278년 가운데 용뉴와 음통의 간략화와 도식화된 세부문양 등으로 미루어 1278년(충렬왕 4)의 제작으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대고려국보전(大高麗國寶展)』(호암갤러리, 1995)

    [네이버 지식백과] 무인명종 [戊寅銘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2014년 1월 27일 현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4410&cid=1631&categoryId=1631

     

    2008년 11월 23일 발췌당시

     

    제목 : 무인명종
    설명 : 고려시대의 범종. 높이 25.0cm. 호림박물관 소장. 무인년은 1218년과 1278년 가운데 용뉴와 음통의 간략화와 도식화된 세부 문양 등으로 미루어 1278년(충렬왕 4)의 제작으로 추정된다.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천판(天板) 외연에는 사각의 연판과 내부에 화문장식이 첨가된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가 높다랗게 솟아 있고, 이와 붙은 상대(上帶)에는 띄엄띄엄 배치된 화문과 그 사이를 당초문으로 연결시켰다.

    이와 달리 하대(下帶)는 화문 없는 연당초문(蓮唐草文)으로 장식하고, 그 하단부에 다시 1줄의 연주문(連珠文)이 첨가되었다. 상대 아래 붙은 사각의 유곽대(乳廓帶)에는 간략한 당초문으로 장식하고 내부에 간략화된 9개씩의 작은 종유(鐘乳)를 조밀하게 배치하였다.

    한편 종신의 앞뒤 두 곳에는 구름 위에 앉아 합장한 모습의 보살상을 장식하였다. 이들은 그다지 섬세하지 못하고 세부표현이 분명치 않지만, 머리 위에는 삼각형의 보관을 쓰고 두광(頭光)을 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보살상 사이를 번갈아 가며 원권(圓圈) 없이 연과(蓮顆)와 8엽의 연판문으로 장식된 당좌(撞座)를 앞뒤 두 곳에 배치하였는데, 이 역시 그 본래의 구실보다 장식적인 의미가 더욱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종신의 한쪽 여백면을 택해 7행 40여자의 오목새김명문을 기록하였다. 자획이 불규칙하여 판독되지 않는 글자가 일부 보이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같다.

    ‘公州地修(?)淵院□於小鐘同心慶元大明□之等如願成就之信入重六斤 匠人朗□戊寅十月 日(공주지수(?)연원□어소종동심경원대명□지등여원성취지신입중6근 장인랑□무인10월 일)’로서 공주의 수(?)연원이라는 곳에서 6근의 중량을 들여 무인년 10월에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무인년은 1218년과 1278년 가운데 용뉴와 음통의 간략화와 도식화된 세부문양 등으로 미루어 1278년(충렬왕 4)의 제작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大高麗國寶殿(호암갤러리, 1995) 2008년 11월 23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