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한국 범종엔 만파식적의 호국 염원이

korman 2014. 12. 30. 18:17

종(鐘)이 없는 민족은 드물다. 불교가 전래된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 교회에서도 어김없이 종은 울려 퍼진다. 그 가운데서도 펄펄 끓는 쇳물에 아이를 던졌다는 에밀레종의 슬픈 사연, 새해를 타종식과 함께 시작하는 것 등을 볼 때, 우리 처럼 종에 대한 의미 부여와 관심이 남다른 민족도 많지 않을 것이다.

범종 연구가 곽동해(47) 동국대 겸임교수가 ‘범종, 생명의 소리를 담은 장엄’(한길아트)을 냈다. 안장헌씨의 멋진 사진을 곁들여 한국 종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한 아름 보여준다. 곽 교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구상 그 어디에서도 한국 종 만큼 독특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 외국 종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고유의 소리와 문양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한국 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것은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를 응용한 음통(音筒)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은 적군을 물리치고 병을 낫게 하며 물결을 가라앉히는 신비의 대나무 피리로, 신라 임금들이 보배로 삼았다. 음통은 한국 범종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구조물인데, 종의 몸체를 매다는 고리 부분에 굴뚝처럼 솟은 속 빈 원통형 부속품이다. 기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곽 교수는 음통의 구조와 만파식적의 설화가 부합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 한국 종의 백미로 꼽힌다.

만파식적은 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모양이 원통형이고 마디(죽절)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 범종의 음통 또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파식적 설화에는 동해의 용이 대나무를 지고 바다에서 육지로 힘차게 기어 나오는데, 이는 신라 범종(절에서 사용하는 종)의 용이 두 발을 앞 뒤로 벌려 몸통에 부착된 음통을 지고 있는 것과 부합한다.

이와 관련, 곽 교수는 “만파식적에는 나라의 안녕과 호국을 기원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며 “신라 범종에 음통을 설치한 것은, 종을 칠 때마다 만파식적의 염원이 온 백성에게 퍼져나가기를 소원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다소곳이 무릎을 모으고 향을 사르는 천인의 자태가 아름답다.

곽 교수는 책에서 한국 종소리의 특징, 즉 맥놀이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했다. 한국 종은 몸체의 두께가 고르지 않아 비대칭을 이루는데 이 때문에 타종 시 주파수가 다른 소리가 발생한다. 다른 주파수의 소리들이 서로 간섭하고 주기적으로 강약을 되풀이해 맥놀이 현상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장중한 음이 5~10초 정도 나타나고 다시 2분 가량 청아한 울림이 지속되다가 사라지는, 한국 종 고유의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의 종은 두께가 같기 때문에 주파수가 동일해, 맥놀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곽 교수는 책에서 한국 종의 시대별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신라 종에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정토세계를 염원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비천상과 함께 삼존불이 등장하고 부귀를 의미하는 목련이 등장한다.


성덕대왕신종의 음통. 한국 종에서만 볼 수 있는 음통은 호국의 염원을 담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종의 윗 부분 천판이 완만한 원호형에서 중국식 반구형으로 변모하는 등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16세기로 접어들면서 복고풍의 전통 양식이 서서히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17, 18세기에는 다시 활발하게 주종 사업이 이뤄지지만 19세기에 들면 정치적 혼란이 거듭되면서 종 양식 또한 쇠퇴한다.

책은 한국 범종에 대한 이 같은 개괄에 이어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 등 개별 범종에 대한 상세한 해설로 이어진다.

곽 교수는 “종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이상향이 응축된 조형 예술로서 문양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생각과 이상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 기사제공 한국일보

 

출처 : 불교닷컴 2014년 12월 30일 현재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