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전북의 범종, 세상을 울리다

korman 2015. 5. 12. 17:59

맑고 깊고 은은한 종소리로 중생들 정화시키며 불국토 실현 염원
전북의 범종, 세상을 울리다.
2014년 09월 14일 (일) 이종근 기자 jk7409@hanmail.net

 

 

범종의 꼭대기에는 어느 종이라 할 것 없이 용 모양의 고리가 달려 있다. 중국 문헌인'오잡조(五雜俎)'와 '잠확류서(潛確類書)', '진수선(眞珠船)' 등에 따르면 용에게는 다양한 특성과 능력을 가진 아홉 마리의 아들(九龍子)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하나인 포뢰(蒲牢)는 울기를 좋아하였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지옥중생에게까지 부처님의 범음인 종소리를 전달하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로서는 포뢰의 목소리처럼 크고 우렁찬 종소리를 갖기를 염원했던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종 꼭대기에 용을 조각하게 된 것이다. 또 바닷가에 살던 포뢰는 고래를 특히 무서워했다. 지금은 통 막대기에 불과한 종을 치는 막대기(撞木)를 예전엔 고래 모양으로 깎아 사용했으며, 고래 경(鯨)자를 넣은 경종(鯨鐘)·화경(華鯨) 등을 종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한 것도 포뢰로 상징되는 종이 더 크게 울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편집자 주

선운사범종(전북 유형문화재 제31호)은 조선 후기의 범종으로 높이 103㎝, 입 지름 93㎝이고,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129㎝이다. 선 안쪽으로 글씨를 새겼는데, 조선 순조 18년(1818)에 다시 만든 것임을 알려준다. 이 종은 신라와 고려 종에서 보이는 유곽과 유두를 가지고 있지만, 용통이 없고 2마리 용으로 만든 용뉴, 몸체 가운데와 종 입구 위에 두른 횡선이 있는 조선 종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백장암소장범종(전북 유형문화재 제211호)은 실상사 백장암에 봉안되어 있으며 1743년에 조성됐다. 전체 높이는 64cm, 직경 42cm 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종 윗부분에는 천판이 둥글게 솟아있다. 천판에는 1마리의 용이 네 발을 천판 위에 굳게 디디고 S자형으로 몸을 휜 채 고개를 쳐들고 꼬리로는 힘차게 음통을 휘감고 정면을 향해 응시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명문엔 '中鍾重 五十斤 有司敬仁 掌務時宇 乾隆捌年 癸亥三月日 咸陽 安國庵'이라고 적혀 있어 이 종은 원래 함양(咸陽) 안국종(安國庵)의 범종으로 주조됐으며, 무게는 50근임을 알 수 있다.

옥천사소장범종(전북 문화재자료 제187호)은 조선종의 특징인 음통을 갖추고 있으며, 1728년 주조됐다. 유곽과 보살상의 모습등이 생동감있는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 특히 꽃을 든 보살상의 모습은 조선후기 전라도지역의 대표적인 주성장인 사인 비구와 같은 승려장인의 계열에 속하는 장인이 주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과 문양부분이 일부 마멸되기는 하였지만 초주년대(1623년)와 재주년대(1728년) 및 처음 봉안한 장소(龍頭山 龍壽寺)등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는 조선후기 범종의 귀한 자료이다. 안국사소장범종(전북 문화재자료 제188호)은 1788년(정조12)에 조성된 조선후기의 범종으로, 현재 무주 안국사 범종각 내 후면에 안치되어 있다. '乾隆五十三年戊申三月日 茂朱赤裳山安國寺大鐘改鑄重... 刻手 處性... 片手權東三 都片手李萬重...'이라고 적혀있어 1788년에 처성과 권동삼, 이만중이 옛 종을 안국사의 대종으로 다시 고쳐 만들었음을 볼 수 있다. 도편수 이만중은 고성 옥천사(1776년), 법주사종(1785년) 등, 편수 권동삼은 보천사종(1794년), 고창 선운사종(1818년) 등을 주조한 사장(私匠)으로서 이 종은 이만중에서 권동삼으로 이어지는 조선후기 사장계(私匠系) 주종장(鑄鐘匠)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 낙수정동종(보물 제1325호)은 일본인 다까하라 히미꼬 여사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소장해 오던 중 1999년 11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해 기증·반환한 것으로, 종을 매다는 용뉴 부분의 훼손이 있지만 하나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 형태와 문양 및 성분비율 등을 살펴볼 때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 초에 제작된 범종으로 생각된다. 부안내소사동종(보물 제277호)은 고려 시대 동종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종으로 높이 103㎝, 입지름 67㎝의 크기이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청림사 종으로 만들었으나, 조선 철종 원년(1850)에 내소사로 옮겼다. 한국 종의 전통을 잘 계승한 종으로, 그 표현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 걸작으로 손꼽힌다. 대복사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24호)은 신라 진성여왕 7년(893)에 창건된 남원 대복사 극락전 앞에 있다. 종의 어깨에 꽃잎을 세워서 장식하는 고려 종의 모습을 보이며, 55개의 각 꽃잎마다 소형좌상인 화불(化佛)을 하나씩 조각한 매우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 인조 13년(1635)에 만들었으며, 조선 초기 범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선원사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25호)은 남원 선원사 대웅전 안에 있는 높이 66cm, 입 지름 47cm의 조선시대 범종이다. 마멸이 심해 판독하기 힘들지만 '보현사중종(普賢寺中鐘)'이란 종 이름이 새겨 있다. 만든 수법은 거칠지만 문양이 다채롭고, 특이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화암사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40호)은 극락전 안에 있으며 전체 높이 140㎝, 몸체 높이 85㎝, 입 지름 70㎝으로, 종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도드라지게 장식한 문양이 있다. 내장사조선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49호)은 총 높이 80㎝, 몸체 길이 60㎝, 입 지름 50㎝로, 소형이지만 명문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동종은 내장사가 중건되자 전남 보림사에서 옮겨 왔는데, 일제시대 후기에 원적암에 은닉하였고, 한국전쟁 때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하였다. 개암사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126호)은 개암사 종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 89.0㎝, 입 지름 61.5㎝이다. 종의 윗부분에는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다. 종의 아랫부분에는 숙종 15년(1689)에 주조했다는 명문이 있어서, 범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당암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136호)은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 안에 있는 입 지름 50㎝의 조선시대 범종으로 종을 매다는 용뉴는 용이 네발을 종에 대고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다.

실상사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137호)은 실상사 경내에 있는 높이 123㎝, 입 지름 83㎝의 종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는 용이 종머리를 딛고 있는 형상이며,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은 간략화 된 용이 꼬리를 휘감은 모양을 하고 있다. 종에 새긴 글을 통해 조선 숙종 20년(1694)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송광사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138호)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높이 107㎝, 입 지름 73㎝의 종이다. 동종에 씌여있는 글을 통해 숙종 42년(1716) 광주 무등산 증심사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뒤 영조 45년(1769)에 보수했음을 알 수 있다. 안심사소장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205호)은 안심사 법당 내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6.25전쟁때 외부로 유출되어 충남 금산 보석사에 봉안하고 있다가 2004년에 안심사로 반환되었다. 종의 몸체 하단에 양각되어 있는 주성기(鑄成記)에 의하면 이 종은 1760년(건륭 25)에 고산 대둔사 안심사에서 조성됐으며, 무게는 370근 이고 백홍진, 유도용 등 장인에 의해 조성됐음을 알 수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