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중앙박물관 소장 을사명 범종(國立中央博物館 所藏 乙巳銘 梵鍾) (신수2047)

korman 2016. 3. 12. 23:34

을사명 동종


출처 : 이뮤지엄 2017년 2월 10일 현재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1100204700000#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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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명 동종


한자 乙巳銘銅鐘

영어음역 Eulsamyeong Dongjong

영어의미역 Bronze bell inscription of Eulsa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남천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장준식

[상세정보]

현 소장처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5

성격 동종

재질 청동

크기(높이, 길이, 너비) 62.3㎝[높이]|44㎝[너비]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중앙박물관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남천동에서 발견된 고려 후기의 범종.


[개설]

1966년에 제천에서 발견되어 백부영이 소장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동종이다. 중형에 가까운 큰 종으로 전형적인 고려 시대의 청동 범종이다.


[형태]

을사명 동종은 높이에 비하여 풍만한 종신(鍾身)을 지니고 있는데, 용통과 용뉴, 유곽 등 전형적인 한국 범종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용정(甬頂)에 5개의 구슬이 달렸으며, 견부(肩部)에 입상앙연문대(立狀仰蓮文帶)가 돌려 있는 등 고려 후기 종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상대(上帶)는 연주문선(連珠文線) 안에 뇌문(雷文)과 뇌두문(雷頭文)을 시문하였고, 하대에는 국당초문(菊唐草文)을 새겼다. 4개의 유곽(乳廓)마다 9개의 유(乳)가 있으며 유곽 사이에 보살 좌상을 배치되었다. 유곽 아래에는 당좌(撞座) 1좌씩 총 4좌의 당좌가 있다. 종의 전체 높이는 62.3㎝, 몸통의 높이는 50.3㎝, 구경은 44㎝, 두께는 3.8㎝이다.


[특징]

을사명 동종은 문양대 사이에 10행 77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제작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명문에는 발원자 및 발원문, 제작 시기[1185] 등이 기재되어 있다.


명문에 ‘지추밀원사호부상서상장군조처하원군부인등성수□천장국태민안급법계중생리고득락원이금종일부입중칠십근조성별장동정한정동량지유동심보살지용덕□산을사구월십칠일조(知樞密院事戶部尙書上將軍曹妻河源郡夫人等聖壽□天長國泰民安及法界衆生離苦得樂愿以金鍾一副入重柒拾斤造成別將同正韓正棟梁智儒同心菩薩之用㥁□山乙巳九月十七日造)’라고 쓰여 있다.


명문 내용에 의하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호부 상서 상장군(戶部尙書上將軍)을 역임한 조씨의 부인인 하원군부인(河源郡夫人) 등이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중생의 제도를 발원하기 위하여 을사년에 동종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발원자인 하원군부인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고려사(高麗史)』에서 찾아보면 조원정(曹元正)[?~1187]이다. 그는 1181년(명종 11)에 공부 상서가 되었고 1183년(명종 13)에 지추밀원사에서 추밀원부사로 승진하였다. 그가 호부 상서를 지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1183년(명종 13)부터 1187년(명종 17) 사이에 호부 상서를 역임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하원군부인의 남편 조씨를 조원정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을사년은 1185년(명종 15)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종의 양식적인 측면과 조원정의 활동 시기상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의의와 평가]

문양대 사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동종 제작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아울러 제작 연대도 기록되어 있어 고려 시대 동종 연구의 지표로 삼을 만하다.


[참고문헌]

『제천시지』 (제천시지편찬위원회, 2004)

최순우, 「제천 발견 을사명 동종」(『고고미술』9-8, 한국미술사학회, 1968)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http://gsm.nricp.go.kr/)

[지식연계]

문화재청:을사명 동종


출처 : 디지털제천문화대전 2017년 7월 4일 현재

http://jecheon.grandculture.net/Contents/Index?local=je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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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소장 을사명 범종(國立中央博物館 所藏 乙巳銘 梵鍾)


 

      (을사)가 새겨진 장군 부부가 시주한 동종

  • 이명칭

    「을사」

  • 명동종

  • 한자명칭

    「乙巳」銘銅鍾

  • 국적/시대

    한국(韓國)-고려(高麗)

  • 출토지

    충청북도(忠

  • 淸北道

  • )-제천시(堤川市) 교동(校洞)

  • 재질금속(金屬)-동합금제(銅合金製)
  • 용도

    종교신앙(宗敎信仰)-불교(佛敎)

  • 크기

    전체높이 62.2cm, 지름 44cm

  • 소장품번호

    신수(新收)-002047-000

2015년 8월 28일 현재 상세정보 없음.

 

출처 : 중앙박물관 소장

품 검색 페이지 2015년 8월 28일 현재

http://www.museum.go.kr/program/relic/relicDetail.jsp?menuID=001005001003&relicID=7724&relicDetailID=24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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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명 동종


한자 乙巳銘銅鐘

영어음역 Eulsamyeong Dongjong

영어의미역 Bronze bell inscription of Eulsa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남천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장준식

[상세정보]

현 소장처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5

성격 동종

재질 청동

크기(높이, 길이, 너비) 62.3㎝[높이]|44㎝[너비]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중앙박물관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남천동에서 발견된 고려 후기의 범종.


[개설]

1966년에 제천에서 발견되어 백부영이 소장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동종이다. 중형에 가까운 큰 종으로 전형적인 고려 시대의 청동 범종이다.


[형태]

을사명 동종은 높이에 비하여 풍만한 종신(鍾身)을 지니고 있는데, 용통과 용뉴, 유곽 등 전형적인 한국 범종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용정(甬頂)에 5개의 구슬이 달렸으며, 견부(肩部)에 입상앙연문대(立狀仰蓮文帶)가 돌려 있는 등 고려 후기 종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상대(上帶)는 연주문선(連珠文線) 안에 뇌문(雷文)과 뇌두문(雷頭文)을 시문하였고, 하대에는 국당초문(菊唐草文)을 새겼다. 4개의 유곽(乳廓)마다 9개의 유(乳)가 있으며 유곽 사이에 보살 좌상을 배치되었다. 유곽 아래에는 당좌(撞座) 1좌씩 총 4좌의 당좌가 있다. 종의 전체 높이는 62.3㎝, 몸통의 높이는 50.3㎝, 구경은 44㎝, 두께는 3.8㎝이다.


[특징]

을사명 동종은 문양대 사이에 10행 77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제작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명문에는 발원자 및 발원문, 제작 시기[1185] 등이 기재되어 있다.


명문에 ‘지추밀원사호부상서상장군조처하원군부인등성수□천장국태민안급법계중생리고득락원이금종일부입중칠십근조성별장동정한정동량지유동심보살지용덕□산을사구월십칠일조(知樞密院事戶部尙書上將軍曹妻河源郡夫人等聖壽□天長國泰民安及法界衆生離苦得樂愿以金鍾一副入重柒拾斤造成別將同正韓正棟梁智儒同心菩薩之用㥁□山乙巳九月十七日造)’라고 쓰여 있다.


명문 내용에 의하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호부 상서 상장군(戶部尙書上將軍)을 역임한 조씨의 부인인 하원군부인(河源郡夫人) 등이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중생의 제도를 발원하기 위하여 을사년에 동종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발원자인 하원군부인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고려사(高麗史)』에서 찾아보면 조원정(曹元正)[?~1187]이다. 그는 1181년(명종 11)에 공부 상서가 되었고 1183년(명종 13)에 지추밀원사에서 추밀원부사로 승진하였다. 그가 호부 상서를 지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1183년(명종 13)부터 1187년(명종 17) 사이에 호부 상서를 역임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하원군부인의 남편 조씨를 조원정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을사년은 1185년(명종 15)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종의 양식적인 측면과 조원정의 활동 시기상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의의와 평가]

문양대 사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동종 제작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아울러 제작 연대도 기록되어 있어 고려 시대 동종 연구의 지표로 삼을 만하다.


[참고문헌]

『제천시지』 (제천시지편찬위원회, 2004)

최순우, 「제천 발견 을사명 동종」(『고고미술』9-8, 한국미술사학회, 1968)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http://gsm.nricp.go.kr/)

[지식연계]

문화재청:을사명 동종


출처 : 디지털제천문화대전 2017년 6월 22일 현재

http://jecheon.grandculture.net/Contents/Index?local=je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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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을사명 범종(國立中央博物館 所藏 乙巳銘 梵鍾)


소 재 지(所 在 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연 대(年 代) : 1185年(명종(明宗) 15年, 을사(乙巳))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62cm, 종신고(鍾身高); 49cm, 용뉴고(龍 高); 11.5cm,
각통경(角筒徑); 3.5cm, 상대폭(上帶幅); 3.5cm, 유곽폭(乳廓幅); 2cm,
유곽장(乳廓長); 13.5×15cm, 당좌경(撞座徑); 9.5cm, 하대폭(下帶幅); 4.5cm,
구경(口徑); 43cm,


본(本) 종(鍾)은 1966年 6月 24日 충북(忠北) 제천군(堤川郡) 제천읍(堤川邑) 남천동(南泉
洞) 64번지(番地) 거주(居住) 백부영씨(白富榮氏)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제출된 재명(在銘) 고려(高麗) 동종(銅鍾)이다. 1981年 『고고미술(考古美術)』第9卷 8號46)에 소
개된 내용(內容)을 보면 종(鍾)은 대체로 신장(身長)에 비해서 풍만형(豊滿形)을 지닌 중형(中
形)에 가까운 큰 종(鍾)으로 한국(韓國) 범종(梵鍾)의 통식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으며 다음
과 같은 10행(行) 77자(字)의 명문(銘文)이 비천(飛天)과 구대문(口帶紋) 사이에 각명(刻銘)
되어 있어서 주목(注目)된다.

 

이 명문(銘文)에 따르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호부상서상장군직(戶部尙書上將軍職)을 역
임(歷任)한 조모(曹某)라는 사람의 처(妻) 하동군부인등(河東郡夫人等)이 국태민안(國泰民安)
과 중생(衆生)의 제도(濟度)를 발원(發願)하기 위(爲)해서 을사년(乙巳年)에 조성(造成)했다는
내용(內容)이 되는데 『고려사(高麗史)』를 들추어 보면 조씨중(曹氏中)에 이에 비정(比定)할 만
한 열역(閱歷)을 지닌 인물(人物)은 조원정(曹元正)이 있을 뿐이다. 그는 명종(明宗) 11年 공부상
서(工部尙書)가 되었고 동왕(同王) 13年에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에서 추밀원부사(樞密院副
使)로 승진(昇進)되었으며 동왕(同王) 17年 7月에는 모란복주(謨亂伏誅)되었다. 이보다 앞서
조원정(曹元正)은 정중부(鄭仲夫) 난(亂)때의 훈공(勳功)으로 낭장(郞將), 장군(將軍)으로 역
천(歷遷)된 바 있으므로 비록 호부상서(戶部尙書)의 열역(閱歷)이 기록(記錄)에 안 남아 있다
해도 명종(明宗) 13年으로부터 17年 7月에 이르는 사이 어느 시기(時期)에 호부상서(戶部尙
書)도 역임(歷任)했을 가능성(可能性)은 족(足)히 있었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상(以上)과 같이 조씨(曹氏)를 조원정(曹元正)에 비정(比定)해 볼 경우 을사년(乙巳年)은

명종(明宗) 15年(1185)에 해당(該當)되나 양식상(樣式上)의 문제(問題)도 있으므로 이같은 비
정(比定)은 보류하여 둔다.
이 종(鍾)의 각부(各部) 양식(樣式)을 살펴보면 우선 상대문(上帶紋)은 상하계선(上下界線)
을 연주문(連珠紋)으로 돌린 방간대(方間帶)에 뇌문(雷文)과 운두문(雲頭紋)을 교호(交互)로
양주(陽鑄)한 것이며 유대문(乳帶紋)은 연당초문(蓮唐草紋), 구대문(口帶紋)은 국당초문(菊唐
草紋)이 각기(各其) 양주(陽鑄)되어 있다. 뇌문(雷文)과 운두문(雲頭紋)을 종대대(鍾帶紋)에
이렇게 섞어 쓴 예(例)는 삼천사(三川寺) 골 출토(出土) 동종(銅鍾) 구대문(口帶紋)에서 그 예
(例)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구대문(口帶紋) 전체(全體)가 뇌문대(雷紋帶)로 되어 있는 속
에 3개소(個所)의 방격(方格)안에만 운두문(雲頭紋)을 넣은 것이다.
비천(飛天)은 4개소(個所)의 유곽(乳廓)사이의 동부중(胴部中) 하부위(下部位)의 운좌(雲座)
위에 합장단좌(合掌端坐)한 보살형(菩薩形)을 양주(陽鑄)했으며 당좌(撞座)는 각(各) 유곽(乳
廓) 직하(直下)의 종신(鍾身) 중하부위(中下部位)에 복엽연화문(複葉蓮華紋)을 양주(陽鑄)한
것이다. 이 연화문(蓮華紋)의 연방(蓮房)이 육판화형(六瓣花形)으로 된 것이 특색(特色)이며
이러한 당좌(撞座)의 예(例)는 지대사년명종(至大四年銘鍾)에서 볼 수 있고 정풍이년명소종
(正豊二年銘小鍾)의 경우도 그러하다. 종견(鍾肩)에 둘러세운 검두형(劍頭形) 입화(立花)에는
앙연(仰蓮) 위에 국륜(菊輪) 하나씩을 배치(配置)한 도문(圖紋)을 개개(個個)에 양주(陽鑄)했
으며, 용통(甬筒)은 상대문(上帶紋)과 같은 운두(雲頭)와 뇌문대(雷紋帶)를 3단(段)으로 돌려
양주(陽鑄)하고 그 정부(頂部)에는 5주(珠)를 장식했으나 그 하나는 흠락(欠落)되어 있다. 용
뉴(龍鈕) 조각(彫刻)은 종(鍾) 전체(全體)의 표현기법(表現技法)에 비(比)하면 매우 웅혼(雄
渾)한 솜씨를 보였으며, 특히 사조용족(四爪龍足)에 매친 힘이나 높게 돌출(突出)되어 있는
두 눈의 특출(特出)한 표현(表現) 등(等)은 종신(鍾身)에 비(比)해 월등의 차(差)가 있다고 보
여진다. 종(鍾)의 정부(頂部)에는 상흔(傷痕)으로 보여지는 환공(丸孔)이 15개소(個所)나 있으
며 종신(鍾身)에도 주조(鑄造)때의 실수로 보이는 작고 큰 구멍이 몇군데 뚫려 있다. 그러나
평정양평(坪井良平)씨는 『조선종(朝鮮鐘)』해설문(解說文)에서 을사(乙巳)를 고려(高麗) 명
종(明宗) 15年으로 규정(規定)지은 점과 명문(銘文)에 나타나는 인명(人名)의 문제(問題)와 종
(鍾)의 양식상(樣式上)의 여러 문제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문점을 제시하면서 명종(明宗)
15年(1185)으로 보는 것은 앞으로 좀 연구 후에 규정(規定)지어져야 된다고 하고 있다.

 

출처 :

1996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 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동현金 東 鉉)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