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동제범종 (금산군 금산면 출토)

korman 2016. 4. 16. 21:41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동제범종 (고려범종)

(금산군 금산면 출토 범종)


 

 

 

銅製梵鍾
[동제범종]
000434 / 000
금속(금속)동합금(동합금)
종교신앙 불교 의식 범종
국립1(國立1) 부여(扶餘) 부여(扶餘)


 

전형적인 고려시대 범종으로 上帶위의 立狀帶 일부가 파손된것을 제하면 완형을 갖추고 있다. 鍾體 정상부의 龍紐와 甬筒이 뚜렷하고 용관에는 마디를 두고 당초문을 전개시켰다. 頂上에는 작은 구슬을 돌렸는데 현재 1개가 결실되어 4개가 남아있다. 天板과 上帶가 접한 肩部에는 3각형의 立狀帶를 乳廓은 上帶에 붙여 4곳에 배치했으며 유곽대에는 가운데 돌기를 지닌 원형문을 양각하였다. 撞座에는 양손을 합장하고 구름위에 무릎을 꿇은채 앉아 있는 飛天 2구와 복잡한 형식의 花文 2개를 교차로 배치 하였다. 上帶는 연화당초문을 전개시켰다.

 

출처 : 부여박물관 홈페이지 2016년 4월 16일 현재

http://rms-se.museum.go.kr/data/code/homeSearchRelicDetail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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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 마수리 출토 범종(忠南 錦山 馬首里 出土 梵鍾)(2-43)


소 재 지(所 在 地) : 충청남도(忠淸南道)  립부여박물관(國立扶餘博物館) 

                      소장번호(所藏番號) 434號

연 대(年 代) : 14세기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27cm 유곽장(乳廓長); 5×7cm 종신고(鍾身高); 17.5cm

당좌경(撞座徑); 6.7cm 용통고(甬筒高); 9.5cm 하대폭(下帶幅); 2cm

용통경(甬筒徑); 2.3cm 종구경(鍾口徑); 16.5cm 하대폭(下帶幅); 1.7cm

종구경(鍾口徑); 1.5cm 유곽폭(乳廓幅); 1cm


1953年 5月 7日 충청남도(忠淸南道) 금산군(錦山郡) 금산면(錦山面) 마수리(馬首里) 306번

지(番地)에서 노영일씨(盧榮一氏)가 발견(發見)하여 국고귀속(國庫歸屬)되어 현재(現在)

립부여박물관(國立扶餘博物館) 소장번호(所藏番號) 434號로 등록보존(登錄保存)되어 오는 소

종(小鍾)으로서 이미 1960年 『고고미술(考古美術)』 1권(卷)5호(號)96)와 1967년 『연재고고논

집(然齋考古論集)』97)에 상세히 소개(紹介)되었다. 본 종(鍾)에 대하여는 재론(再論)을 피하면

서 단지 그 형상(形狀)을 간단(簡單)히 소개(紹介)하고자 한다. 용통(甬筒)과 용뉴(龍鈕)를

구비(具備)하고 있으며 용통(甬筒) 정상(頂上)에는 5개(個)의 소주(小珠)를 배치(配置)하고

용통외(甬筒外) 면(面)에는 보상화문(寶相華紋)과 연화문(蓮華紋)을 겸하여 조식하고 있다.

용뉴(龍鈕)의 용두(龍頭)는 크게 입을 벌리면서 양족(兩足)을 뒤로 뻗은 형상이나 좌족(左

足)에는 여의주(如意珠)를 장악하고 종정(鍾頂)의 천판주연상(天板周緣上)에는 중엽(中葉)의

3각(角) 입상화문대(立狀花紋帶)를 돌리고 있고, 이와 접(接)한 상대(上帶)는 1.7cm의 폭(幅)

을 설정(設定)하고 1cm정도(程度)의 구간(區間)을 정(定)하고 각(各) 구간(區間) 내(內)에는

인동문(忍冬紋)을 조식(彫飾)한 상태라 하였다. 또한 상대(上帶)의 아랫부분은 거치문(鋸齒

文)과 같은 문양대(紋樣帶)로 다시 조식(彫飾)한 것으로 상대(上帶) 전체(全體)를 돌리고 있

다. 상대(上帶)와 접하여 4개소(個所)에 설정(設定)한 유곽(乳廓)의 주문대(主紋帶)는 환문

(環紋)으로한 주문양대(主紋樣帶)이다. 또한 유곽(乳廓) 내부(內部)에는 화좌유(花座乳) 9유

(乳)를 배치(配置)하고 있으며, 종복(鍾腹)에는 원형(圓形) 2중연판(重蓮瓣)으로 된 2개(個)

의 당좌(撞座)와 운상(雲上)에 두광(頭光)과 보관(寶冠)을 구비하고 궤좌(跪坐) 합장(合掌)하

는 보살상(菩薩像)을 교대(交代)로 배치하였다.

또한 하대(下帶)에 이르러서는 상대(上帶)와 유곽(乳廓)의 문양(紋樣)과 달리 보상화문(寶

相華紋)으로 하였으나 부식이 심하여 문양(紋樣) 전모(全貌)를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이상으

로 볼 때 종(鍾)의 제작주조 연대 역시 양식과 수법상(수법상) 14세기에 속(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출처 : 1996년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