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중앙박물관 소장 강원도 횡성 출토 범종(江原道 橫城 出土 梵鍾)

korman 2016. 8. 16. 16:34

중앙박물관 소장 강원도 횡성 출토 범종(江原道 橫城 出土 梵鍾)





강원도 횡성 출토 범종(江原道 橫城 出土 梵鍾)(2-29, 3-24)
소 재 지(所 在 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연 대(年 代) : 13세기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64cm 종신고(鍾身高); 48cm 용통고(甬筒高); 16.5cm
용통경(甬筒徑); 4.5cm 상대폭(上帶幅); 3.3cm 유곽폭(乳廓幅); 3cm
유곽장(乳廓長); 8.5×7.5cm 당좌경(撞座徑); 7.5cm 하대폭(下帶幅); 4.8cm
종구경(鍾口徑); 42cm 종구후(鍾口厚); 3.3cm


1964年 4月 12日 강원도(江原道) 횡성군(橫城郡) 횡성읍(橫城邑) 교항리(橋項里)에서 고철
(古鐵) 수집작업(蒐集作業) 중(中) 발견(發見)되어 매장문화재(埋藏文化財)로 신고(申告), 현
재(現在)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소장번호(所藏番號) 신(新)1439號로 등록 보관되어 오는 출토품(出土品) 범종(梵鍾)이다. 중형종(中型鍾)에 속(屬)하는 본(本) 종(鍾)에 대
(對)하여는 이미 1965年 6月 『고고미술(考古美術)』6卷6號73)로 소개(紹介) 발표(發表)된 바
있다. 발표(發表) 내용(內容)을 소개(紹介)하면 출토(出土) 당시(當時) 범종(梵鍾)과 더불어
4점(點)의 토기(土器)도 함께 발견(發見)되었다 한다.
종(鍾)의 형상(形狀)을 보면 통형(通型)의 청동제(靑銅製) 고려(高麗) 범종(梵鍾)인데 총고
(總高) 64cm로서 소종(小鍾)은 아니다. 종정(鍾頂)에는 용통(甬筒)과 용뉴(龍鈕)를 가지고
있는데, 용두(龍頭)는 부릅뜬 눈과 쭉 뻗은 발 등(等) 웅건(雄建)한 수법(手法)을 보여주며,
입에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물고 발에도(현재(現在)는 1족(足) 결실(缺失)) 보주(寶珠)를
갖고 있다. 용통(甬筒)에는 전면(全面)에 용린(龍鱗)이 있고 그 정상(頂上)에는 4주(珠)가 있
다. 종뉴(鍾鈕) 상주연(上周緣)에는 단판(單瓣)의 입상연화문(立狀蓮華紋)을 돌렸으며, 상하
대(上下帶)에는 링형(菱形)의 주문(珠紋)을 같은 수법(手法)으로 새겼는데 하대(下帶)만은 상
부(上部)에 폭(幅) 1cm의 당초문대(唐草紋帶)를 양주(陽鑄)하였다. 상대(上帶) 바로 밑으로
사처(四處)에 유곽(乳廓)을 배치(配置)하고 당초문(唐草紋)을 돌린 안에는 12유두(乳
頭)(3×4=12)를 갖고 있는데 그 수(數)가 구두(九頭)인 통식(通式)과 상이(相異)한 점(點)이
주목(注目)된다. 당좌(撞座)는 원형(圓形)으로서 하대(下帶)에 근접(近接)된 윗 부분(部分) 4
처(處)에 배치(配置)되었으며 모두 자방(子房)을 가진 중판팔엽(重辦八葉)의 연화문(蓮華紋)
이 조식(彫飾)되었다. 종복(鍾腹)에는 좌상(坐像) 4구(軀)가 배치(配置)되었는데 이 상(像)들
은 모두 소형(小形)으로 동일(同一)한 형태(形態)인데 안좌(安坐)한 천수상(千手像)으로 보여
지며 양수(兩手)를 들어 머리 윗쪽에서 1봉(棒)의 선장(禪杖)(?)을 옆으로 길게 치켜들었고
다른 양완(兩腕)은 양쪽으로 벌리고 있다. 상호(相好)에 목(目)․구(口)․비(鼻) 등이 보이나
각부(各部)에 의문(衣紋)은 보이지 않는다. 종신(鍾身)에 비천(飛天)이나 혹(或)은 보살상(菩
薩像)을 배치(配置)하는 것이 통식(通式)으로 알려졌으나 이러한 형식(形式)의 범종(梵鍾)은
이례적(異例的)이라 하겠다. 또 1처(處)의 좌상(坐像)바로 옆에는 유곽(乳廓)처럼 방곽(方廓)
을 마련하고 당초문(唐草紋)을 새겼으며 그 안에는 명문(銘文) 등(等) 아무런 조식(彫飾)이
없는데 이러한 액곽(額廓)의 양식(樣式)도 흥미(興味)로운 일이다. 종구(鍾口)가 손에 닿는
촉감(觸感)이 두툼하면서 그 안으로는 점점 얇아지는 점(點)이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종(鍾)
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범종(梵鍾)의 고유(固有)한 형식(형식)이다. 배흘림이 심(甚)하지
않은 말쑥한 종신(鍾身)과 용뉴(龍鈕)의 수법(手法) 등(等)으로 보아 여대(麗代)의 우작(優
作)이라 하겠다. 출토품(出土品)이어서 종(鍾) 내외(內外) 전면(全面)에 청록수(靑綠銹)가 있
을 뿐 거의 완형(完形)이다. 반출물(搬出勿)인 토기(土器) 4점(點)은 모두 고려대(高麗代)의
것으로 추정(推定)되는데 그중 1점(點)은 고려(高麗) 청자(靑磁) 뚜껑으로 덮여 있던 흔적
(痕迹)이 확연(確然)하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청자(靑磁)는 발색(發色)이 좋은 편으
로 손잡이는 연(蓮)봉형이다.
이상(以上) 유물(遺物)의 출토지(出土地)는 사지(寺址)로서 이곳에서 이반(移搬)된 삼층석
탑(三層石塔)이 현재(現在) 횡성군청(橫城郡廳) 뒤편 ‘어린이 놀이터’에 재건(再建)되어 있으
며, 전문(傳聞)한 바에 의(依)하면 이미 알려져 있는 횡성출토(橫城出土) 청동제소종(靑銅製
小鍾)도 이 사지(寺址) 부근(附近)에서 출토(出土)된 것이라고 한다.


출처 : 1996년 국림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