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가을 이파리
포플러가 늘어선 가을의 신작로에
바람이 불면
대궐 기둥처럼 쭉 뻗은 몸뚱이에
고깔을 씌운 듯
하늘로 뾰족이 오른 가지의 이파리들은
바람에 파르르 소리를 내었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첫가지는
겹겹이 쌓인 먼지의 무게로
바람의 흔들림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엉겁된 세월의 겹겹이 처럼.
포플러가 늘어선 가을의 신작로에
바람이 불면
하늘과 닿은 꼭대기 노란 이파리는
몸뚱이를 차며 바람타고 날아
구름 속으로 숨을 듯 더 높이 올랐다.
흔들흔들 거리며 하늘을 떠돌다
신작로 끝 어느 들 모퉁이에 누어
햇볕 쪼이고 부스러지다
그 조차 먼지가 되었다.
영겁의 세월을 다 보낸 듯.
포플러가 늘어선 가을의 신작로에
비가 내리면
겹겹의 먼지에 바람조차 비켜간 이파리들도
가을이 가져온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갓길에 떨어져 빗속에 치이며
지러진 신작로 따라 흙속에 묻히고
탈색된 몸으로 빗물위에 떠돌다
냇물에 섞여 강으로 흘러
소용돌이 사이로 맴돌다 살아졌다.
돌고 돌다 살아지는 인생의 쳇바퀴처럼.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가 늘어선 도시의 아스팔트에
바람 불고 비가 내리면
묻힐 곳 없고 흘러갈 곳 없는
은행나무 노란 이파리들은
사람에 밟히고 차바퀴에 치이며
부서지고 찢어진 험한 그러나
먼지조차 되지 못한 몰골로
빗자루 끝에 매달려 청소차에 실렸다.
흔적 없는 세월이 되어 살아졌다.
책갈피 속의 포플러와 은행나무 이파리는
그래서
비오고 바람 부는 가을 저녁에
긴 인생의 자락을 이어주는
시간의 일기장이 된다.
2016년 11월 13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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