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사과는 애쁠이다

korman 2016. 11. 10. 20:13




사과는 “애쁠”이다.


손녀들이 어린이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를 배운다고 자랑하면서 할아비에게 사과가 영어로 뭐냐고 물었다. “애플”이라고 하였더니 그게 아니라 “애쁠”이라 발음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우리말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얼 먼저 가르치는지 이해의 어려움을 겪었다. 내 조카네 아이가 3살 때부터 몇 년간 네델란드에 살아 영국영어가 유창하였다. 귀국하자 어미가 영어를 잊을까 염려되어 영어학원에 다니게 하였더니 학원에 다니며 아이가 영어를 하기 싫어하더라고 하였다. 이유인즉 선생님(한국인)이 아이가 말을 할 때마다 영어 어디서 그렇게 배웠냐고 발음을 모두 고치라고 매번 지적 하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고 하였다. 내 손녀에게서나 조카손자에게서나 의사소통을 위해서 영어를 해야 하는지 미국발음을 위해서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며칠 전 큰손녀 녀석이 막대기 한 개와 두 개가 적힌 종이쪽지를 할아비에게 자랑스럽게 내밀더니 읽어보라 하였다. 느닷없는 그림에 내 대답이 “뭐야? 막대기 그림야?”라고 물었더니 그 녀석 배를 잡고 웃으며 할아버지는 한자도 모르냐고 하였다. 그제야 그게 한자 一, 二라는 것을 눈치 채고는 손녀에게 읽어보라 하였다. “하나 일, 둘 이”라 읽었다. “두 이”가 아니라 “둘 이”로 가르친 모양이었다. 어디서 배웠냐니까 어린이집에서 배웠는데 내일은 삼,사를 배운다고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三과 四를 써 주었더니 훈을 물었다. '석 삼, 넉 사'라 알려 주니까 왜 ‘셋 삼’과 ‘넷 사’가 아니라 석,넉이냐 또 물었다. 이건 어찌 설명을 해야 하나? 외국인에게 우리말의 다양성을 가르치는 것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반 친구들이 모두 한글은 알고 있느냐 물었다. 그 녀석 대답이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직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한글에 대한 학교교육과 관련한 법 때문에 한글을 못 가르치는지 혹은 한글은 가정에서 교육시키니까 안 가르치고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우리말에 대한 발음조차도 어설픈 아이들에게 자국어와 자국문자는 뒤로하고 먼저 미국발음에 치우치는 영어에 이어 한자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외국어 교육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한자문화권의 국가인 만큼 적절한 한자교육도 중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초등학교도 아니고 어린이집에서 자국어와 자국문자에 대한 정체성도 만들어지기 전에 이런 것들이 필요한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한편 이런 모습이 혹시 학부모들의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한 그저 보여주기식 형식적인 교육의 단편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어떤 전문가들은 외국어의 조기교육을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적절한 때를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영어 교육은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쯤이 적절하다고 결론이 났는지 지금 그리 교육하고 있다. 한자는 중국어로 가르치는 게 아니고 우리말로 읽고 한자로 쓰는 것을 가르치니 한글 교육의 연장선상으로 보아도 좋을 듯싶다. 그러나 이것도 한글이 익혀진 후라야 좋은 게 아닐까. 많은 학부모들이 외국어나 외국 문자는 어릴 때부터 접하게 하여야 거부감이 없어지는 게 아니냐고 한다. 그건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렇다면 외국인 아이들이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우선 잘 어울리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그 아이들을 통하여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을 없앨수 있고 외국어도 자연스럽게 접하며 배운 말도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 많은 동네에 외국인들과 다문화 가정이 존재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중동에서 사업차 와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사람도 있고 러시아 쪽에서 와 있는 사람도 있다. 또한 동남아나 아프리카 쪽 사람들도 가끔 보인다. 하루는 동네 놀이터에서 중동 쪽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부모는 어느 나라 사람이던지 아이들 교육이 우선인 모양인지 그 부부는 나에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법에 의한 차별이 아니라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였다. 어린이집에 후진국아이나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오면 우리 학부형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서구의 백인아이가 들어오면 어찌 생각할까?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아이가 국제화되기를 원한다. 나 또한 내 손주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서구 선진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국제화라고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UN에 파견된 모든 국가 및 민족들과 편견 없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도록 가르치는 것이 국제화가 아닐까? 또한 ‘애쁠’만을 강조하는 것이 참 영어교육인지도 생각해 봐야 하겠다. 그런데 어느나라 발음이 ‘애쁠’야? 필리핀 발음인가? 내 경험으로 오리지날 미국인들도 ‘애플’하면 잘만 알아듣던데.


2016년 11월 10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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