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트로트를 부른다

korman 2016. 10. 21. 16:58




트로트를 부른다


가끔 저녁 무렵이 되면 트로트노래에 나오는 가사 같은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내리거나 막걸리 한 잔에 거나해 졌을 때는 더 그렇다. 학창시절에는 팝송과 통기타 노래에 취했었지만 그 때에도 막걸리 주전자를 두들기는 자리에서는 늘 눈물 젖은 두만강'이 내 18번이었다. 지금도 노래방 가면 메인 메뉴 중에 하나가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다. 왜경에게 독립운동가 남편을 잃은 아낙네의 애절한 울음소리에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표현한 가사라고 한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시대의 노래는 아니지만 굳이 남편과 나라를 빼앗긴 슬픔을 받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세대에서도, 아니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트로트 명곡으로 남아있다.


내가 트로트 가사를 쓰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는, 진자 이유는 곡을 쓸 줄 모르는 것이지만, 몇 줄 되지 않는 그 속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대부분의 트로트 가사는 후렴이 있어도 2절 정도가 보통이고 1,2절 모두 합쳐야 8~10여줄 정도 밖에는 안 된다. 한 줄에 들어있는 글자 수도 10~15자 정도이다. 그러니 한 줄 15자 가사에 5줄, 2절까지 있다고 하여도 150자를 넘지 않는다. 물론 글자들이 뜻을 구성하는 단어수를 따지면 글자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짧은 가사는 인생의 즐거움이나 애환을 모두 표출하고 있다. 그래서 난 늘 트로트 가사를 쓰는 사람들의 표현에 대한 함축능력에 놀라게 된다.


나도 가끔 그걸 써 보겠다고 커피 한잔을 놓고는 자판에는 손도 못 대고 장시간 빈 컴퓨터 모니터만을 들여다보며 커피만 홀짝거리는 때가 있다. 그러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이런 초등학생일기 같은 잡기를 긁적인다고 해서 시를 쓰거나 트로트 가사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하기야 문학인이라 불리는 분들이라고 해서 또한 모두가 시인이라 불리지는 않으니까 전문 문학인들도 시를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트로트 가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이 아마추어에게는 역도 선수가 중량을 올리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한편 시와 트로트 가사 모두 몇 줄 되지 않는 글에 삼라만상이 다 들어 있는데 시는 문학이라 불리면서도 트로트 가사는 문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지 그리 부르지 않는 것 같아 그게 궁금하다. 흡사 클래식 음악 하시는 분들이 대중가요와 거리를 두시는 것과 같은 현상인가? 요새는 성악하시는 분들이 대중가요도 많이 부르시던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켠으로 내가 즐겨 부르는 트로트노래의 가사들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뭔가가 튀어 나올 것 같은 착각에 벌써 커피를 두 잔이나 홀짝거렸는데도 그냥 이처럼 줄줄이 투덜대고 싶은 문구만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 머리에서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트로트 가사의 첫 자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끙끙거리며 세월을 흘리면 언젠가는 뭐가 이루어질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디 가서 공부하여야 하나? 아니면 인생을 더 살면 뭔가가 생각나려나? 더 살아도 이 머리에서 타령밖에는 뭐가 더 나올 게 있을까마는 그래도 15자 10줄에 인생의 깊이를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사는 동네의 오늘 저녁 날씨가 흐렸다. 하늘을 덮은 검은 구름에 밀려오는 바람이 길거리에 은행을 떨구고 있다. 동태찌개에 소주 한 잔 하기 딱 좋은 날이다. 지척에 잔을 맞댈 친구가 없으니 그 흔한 혼술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 술에 얼큰하면 한 줄, 아니 제목이라도 생각나지 않으려나 기대해 본다. 한 잔 술에 그걸 못쓴들 어떠랴. 내 인생 자체가 트로트인 것을.


트로트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가을저녁 스산한 바람이 트로트를 부른다.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을”.......


2016년 10월 21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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