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개천절 일기

korman 2016. 10. 4. 17:29




개천절 일기


며칠 날씨가 흐리더니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다. 그리고 오늘, 개천절 아침에는 흰 구름이 둥실 떠 있는 맑은 하늘로 바뀌어졌다. 아직 어딘가에는 비가 내리고 있는 곳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의 날씨는 어제 비가 오며 먼지까지 훑어 내려 아주 상쾌했다. 오늘이 우리민족에게 하늘이 열렸다는 개천절이라 그런 모양이다. 아직 흐리거나 비가 오는 곳에 사시는 분들은 당신 동네만 하늘이 열렸냐는 댓글이 달릴 수 있겠지만 어쨌건 참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어디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후회가 될 것 같은 가슴이 시원해지는 날씨기도 하였다.


아침의 그 하늘을 바라보며 베란다 난간에 태극기를 걸었다. 평소에 때만 되면 내거는 태극기지만 요새는 4살 난 외손자 녀석이 아빠가 자기집에 태극기를 달면 매번 그 즉시 영상통화를 걸어와 “할아버지 태극기 달았어요? 보여주세요.”하는 통에 그 녀석 애비 보다는 먼저 서둘러 걸어야 한다. 태극기를 걸고는 인터넷을 열었다. 개천절에 대한 백과사전을 한 번쯤 읽어야 될 것 같아서였다. 한창 할아비 상식과 지식의 밑천을 테스트하고 있는 큰손녀가 점심때 온다고 예고하였기 때문에 대답할 준비가 필요했다.


개천절 기념식 중계방송을 보았다. 올해가 단기 4349년이라고 간판에 크게 쓰였다. 벽에 결렸거나 탁자에 놓여있는 달력을 보았다. 단기를 표기한 달력은 하나도 없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단기(단군기원)를 찾으면 “한민족의 첫 번째 나라인 고조선(古朝鮮)의 시조 단군 왕검(王儉)의 즉위년(卽位年)을 기원(紀元)으로 한 연호(年號)(두산백과)”라 나와 있다. 또 개천절을 찾으면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두산백과)”이라고 적혀있다. 현재 전 세계는 서기를 기준으로 소통되고 있다. 이슬람권에서 조차도 서기를 사용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력을 병기하고 일본에서는 지금 왕의 연호인 평平성成을 아직 사용하고 있다하며 불교에서도 서기와 더불어 불기를 병기하고 있는데 단군께서 고조선을 세운, 우리민족에게 하늘이 열린 날(開天)의 연호, 단기는 1년에 한 번 개천절 기념식의 간판에만 올라야 하는지, 달력 한 귀퉁이라도 적혀질 수는 없는 것인지 기념식을 보는 내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서기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가 된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을 되뇌이면서.


자전거를 타겠다고 아빠를 조르는 손주들의 자전거를 차에 실어 자전거길이 있는 큰 공원으로 보내고 청명한 하늘을 또 한 번 올려다보면서 집사람과 버스를 탔다. 결혼하고 인천에서 35년을 살아왔으면서도 내고장에서 가장 크다는 ‘모래내시장’ 구경은 한 번도 하지 못하였기로 집사람에게 거기나 구경 가자고 하였더니 선뜻 따라 나섰다. 병원을 오락가락 하느라 조금만 움직여도 쉬 피로를 느끼기는 하지만 이제 체력을 회복하는 중이니 대중교통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생각되었기 때문에 버스를 택하였다. 집사람이 버스를 탄지는 벌써 1년이 되었다. 집에서 좀 먼데 있는 시장이라 버스 타는 시간이 길어지자 멀미가 난다 하였지만 그런대로 잘 버텼다. 시장입구에 내려 한참이나 정류장 벤치에 앉아있는 것으로 멀미는 해소되었다.


사람 냄새나는 구경은 역시 시장이 제일이다. ‘구월시장’이라는 역시 큰 시장까지 옆에 붙어 있어 중앙로를 따라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느릿느릿 걷기만 하여도 한참 걸렸다. 두 시장을 합치면 넓이로만은 서울 남대문 시장에 버금가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요새는 재래시장도 잘 정돈되고 비가림도 되어 있어 구경과 통행에 불편한 것이 없다. 내가 사는 동네의 골목을 이어가며 형성된 작은 시장만 보다 큰 곳에 나오니 정신은 없었지만 35년을 살면서 처음 이곳에 왔다는 게 집사람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서울 오래 산 사람들이라고 모두 남대문시장에 가보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시장에서 가장 좋은 건 큰돈 안 들이고 먹을 게 많다는 것이다. 오뎅+떡볶이+순대 혹은 튀김 세트 7,500원이라 적힌 곳이 있었다. 난 순진하게 둘이 왔는데 한 세트만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주인아주머니 허락 하에 한 세트만 시켰다. 테이블에 놓여진 그 양이 두 세트 주문하였으면 하나는 그냥 놓고 나올 뻔 하였다. 둘이서 저녁 참 잘 먹고 돌아오는 길에 배부르다고 한 정거장 전에 내려 배 꺼지라 걸었다.


오늘 내 개천절 일기다.


2016년 10월 3일

단기 4349년 개천절에

하늘빛